저번주 글의 마무리처럼 흘러가,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봤다. 아무렴 완전하게 회복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고 그저 마음 편안하게 지금 현재 나를 받아들이고 예뻐하다 불쌍히 여기기도 하며 애정을 쌓았다. 멋도 모르는 겨우 남의 얼굴과 옷차림을 보곤 사랑에 홀라당 빠져서 천진난만하게 설치기는 그렇게 쉬운데 말이지. 왜 사람은 스스로를 자꾸만 못살게 구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사람이 제 스스로의 행동거지들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점에 있어서 깨나 성선설의 증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거나 말거나. 누군가에게 또 사랑에 빠지듯 성악설을 기가 막히게 말하는 이방인의 현란한 솜씨에 홀라당 넘어갈 수도.
나를 예뻐하기 위해 한 행위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샤워하고 로션 발라주기'였다. 생각보다 얕잡아봐서는 안 되는 행위다. 안 그래도 없는 에너지를 뺏어갈 만한 차분한 인디 밴드 송 보다, 너무 많아 흘러내리듯 쏟아지는 템포의 팝송을 화장실 문을 꼭 닫고 튼다. 온 사방이 타일로 이루어져 끊임없이 반사되는 리듬큐브. 그 안에서 따듯보다 좀 더 따땃한 물을 힘껏 받아내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 혹은 열대우림의 캄캄하고 튼튼한 몬스테라를 닮은 잎사귀처럼 기분 좋은 상태를 계속해서 증대시킨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놀림도 상상치 않고 리한나의 백댄서라도 된냥. 그렇게 하루 최초의 우울을 깨끗이 씻겨내리고, 남은 흔적들도 타올로 마무리 한 다음에서야, 로션타임에 들어서게 된다.
로션을 점심시간에 김밥 60줄을 말고 있는 직원이 김 등에 참기름 칠을 하듯 바쁘게는 안된다. 그렇게 바르면 기분 좋아진 나에 사랑스러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3살 배기 아이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듯, 섬세하고 꼼꼼하지만 약간 조물조물 마사지하기도 하고, 뽀송해진 스스로를 보며 사랑스러운 시선을 투영하는 온 과정을 지나야 한다. 그렇게 샤워를 마치고 나면, 부끄럽지만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덮을 때의 모멸감,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의 얄팍한 기억력에 분노하기, 자소서를 쓰다가 꽉 막히는 듯한 숨 등, 끊임없이 달성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져오는 실패라는 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다.
취준을 하다 혹은 어떤 종류의 분노, 상실, 두려움이 지배했을 때도 가족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로 달려가 울자. 그리곤 우는 얼굴을 보며 내심 돌아가신 어른이 토닥토닥 안아주는 상상도 눈을 질끈 감고 해 본다. 그렇게 다 씻어버리곤 씩씩하게 할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청해보고 싶다.
A. 네! 좀 해봤습니다. 사실 이제 막 스타트 선에 준비하고 있는 듯한데, 스스로 판단한 적성에 따른 직무 몇 가지와 경력기술서를 작성했고, 입사하기 위한 스펙 준비에 대한 감이 부족해 모교 취업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놀라운 점은 모교 취업지원센터도 취업 컨설턴트 분들의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태였다는 것. 게다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용플러스복지센터도 전화 시, 10-30분 대기가 기본이었다. 현 취업시장이 불불불경기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몇 분 기다리다 연결된 고용플러스복지센터 상담원 분은 생각보다 딱딱하셨고(어쩌면 스스로 취준생이라는 생각에 너무 많은 따스함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형식적인 안내를 담아 1분도 채 되지 않아 끊겼다. 고용플러스복지센터를 직접 방문해 제도 신청, 상담, 자소서 첨삭 등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난 다음 브런치에 제대로 후기를 남겨볼까 하고, 다음 주에 기록할 수 있는 부분은 모교 컨설턴트를 통한 취업상담이다. 모쪼록 여태껏 납부한 8학기의 등록금과, 조형 1관에 지박령처럼 눌러앉은 그간의 정을 생각해 컨설턴트의 능동적인 도움을 기대하고, 나 또한 여러 질문 리스트를 작성해 꼬치꼬치 물어볼 예정이다.
*경력기술서를 작성하며.
정보를 찾아보니 신입이지만, 1-2년 이상 한 알바 두 가지 정도를 경력기술서로 작성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맞는지 아닌지는 실질적으로 그 풀에 뛰어들어봐야 알겠지만은. 그래도 일단 매달 돈을 받으며 잘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을 해봤고, 알바를 하며 겪었던 문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겨두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정성스레 적었다. 그리고 팀 프로젝트, 전시서문작성, 대학생연합봉사동아리, 학생회 등의 경험도 꼼꼼하게 적어놨다. 적고 나니 자격증 두어 개를 채우고, 포트폴리오만 꽤 괜찮게 만든다면 얼추 해볼 만도 싶겠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싶다!
경력기술서는 알바장소명/기간/담당업무/문제상황/해결하기 위한 과정/그로 얻은 결과 순으로 작성했다. 마찬가지로 경험도 비슷하게 작성했다.
그리고 또.. Figma 툴 연습을 시작했고, ITQ 연습도 당연히. 거기다가 토익스피킹 책도 샀답니다.
비만 백 년 동안 내리는 곳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세상이 망하기 직전이야 정말로 그렇겠지. 사람 사는 곳에 가끔 홍수도 나고, 햇살 한 줌 없이 캄캄하더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금세 또 꽃도 피고 발바닥이 솜뭉치 같은 네발친구들도 태어나 걸어 다닌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내가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는 곳은 없다. 돌아갈 곳과 안길 곳은 있어도, 내 인생 모든 선택과 결정을 누구에게도 넘겨줘선 안된다. 그 사실을 너무 까먹고 있었는 것. 그리고 강해지기로 결심한 것. 드디어 홀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과정을 잘 이행해 온 스스로에게 오늘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좋아하는 도라 브루더 중 한 부분을 인용하고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등개불 신호처럼 호소를 띄운다. 불행히도 이 신호가 검은 밤을 밝혀줄 수 있을까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겠다.
-파트릭 모디아노, 도라 브루더 中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는 전 편의 바보이반적 태도와도 원초적으로 닮아있는 것을 넘어 하나로 도달하는 지점이다. 일평생 어쩌면 이름 없는 이로 살아가다, 화석연료 즈음이 될 나일테지만. 늘 행복하기 그지없는 희망이 찾아온다는 믿음 하나로 세상을 꾸려나가고 싶다. 저번주를 바탕으로 회복된 나의 자긍심, 자긍심에 뛰따라 오는 편안함, 의지가 모쪼록 오래 불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을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