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치가 비상수준입니다.
내가 나인 걸 증명하는 일이 왜이리 힘들까? 요즘 가장 답답한 부분이다. 자기소개서를 쓰더라도 왜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졸업하고 나서 1년여간은 무엇을 했는지, 꿈을 포기한 것이 아쉽지는 않은지를 고려하며 작성해야한다니. 사실 헛웃음이 가장 많이 나온다. 이 일을 왜 하게 되었냐니. 먹고 살아야하니까 하지. 세상천지 어떤 사람이 일하는 걸 좋아하겠냐며 마른세수를 벅벅 한다. 글을 쓴다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작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일도, 팀 전시 서문과 동료의 글을 피드백하는 일도 한번도 어려웠던 적이 없는데. 아, 그래서 대학원도 공모도 인턴도 다 떨어진건가, 내가 생각이라는 걸 너무 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뽑아줄 이유라는 게 없기 때문에? 한심하기 짝이없는 내가 자꾸만 낯이라는 걸 들고 다니는 것 조차 뜨거워서 자꾸 눈물이 바보처럼 난다. 이럴때 마음놓고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어디다가도 털어놓을 수가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가, 야무지지 못해서 신물이 난다.
요즘 취업을 위해 기본베이스로 ITQ OA master을 준비하고 있다. 좀 더 잘 알아보고 그냥 컴활2급만 딸 걸 싶지만, 이미 신청하기도 했고 OA master 따고 컴활 2급을 따든 1급을 따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다른 거 따고 말고. 하니까. 빠른 판단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과정이지만, 그 기저엔 ‘내 판단이 맞을까? 이게 틀린 판단이었으면 어떡하지?’라고 빈번히 불안해진다. 딸칵거리며 열심히 허둥지둥 50분을 세워두고 기출문제들을 열심히 푸는 수 밖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다. 그저 부족한 경력(인턴, 공모전, 전공직무연관성)등을 채우기 위해 2-3개 어쩌면, 4-5개의 자격증들을 준비하는 것. 그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현재로서의 유일한 일이다. 이렇게 하면 내가 좀 더 뽑을 만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런 저런 불안 속에서 요즘은 '난 뭐 백수인데 뭘..'이라는 말이 말 끝마다 뒤따라오는 버릇이 생겼다.
근 한달 동안 막내딸의 비위라도 맞춰주듯 아빠가 늘 내가 좋아하던 먹거리를 사오시고, 해주시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오도록 계속 이끌어주신다. 마치 똑똑한 고래들이 인간이 바다에 들어오면, 자꾸 자신의 몸을 사용해 수면 위로 올려주듯. 아빠한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지만, "(26살먹고 버젓한 직업 하나 없어서 아빠 고생만 시키는 백수 딸한테 잘해줘서)고마워.." 인지라 아빠한테 영 말도 못 붙이고 있다. 그러다 어제 저녁 아빠가 저녁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가루 너 원래 대학원 가려고 했잖아. 대학원 가서도 2년 지나면 너 취업때문에 걱정하는 건 똑같아. 그러니까 지금 대학원 기간이라고 생각해. 까짓꺼 취업시장 힘들면 1-2년 준비 하면 되는거지. 그러니까 자꾸 너 백수라고 하지마." 아빠는 분명하게 자기 딸이 스스로를 자꾸 갉아먹으니 속이 아프셔서 그런 걸테다. 아빠 마음도 알지만, 어떡해. 남들처럼 대기업은 못가도 또 작가로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빨리 취업해서 아빠가 내 걱정 안했으면 좋겠는데. 자식이 마음고생 하지 않길 바라는 여느 부모님의 마음처럼, 여느 자식의 마음도 다 똑같다. 이제는 부모님이 그만 고생하셨음 한다는 것.
아빠를 위해서라도 백수라는 말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은 이제 집에서 금지해야겠다. 내뱉는 말이 곧 생각이 되듯, 스스로를 미워하다 보면 스스로를 더는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게 된다. 아마 자기소개서가 쉽사리 써지지 않는 이유도 동일하겠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간단한 포인트라도 눈에 밟혀 크게 굴릴 수 있겠어? 이번주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지닌 것들의 깨끗한 마음가짐과 유연한 탄력성을 회복하도록.
(글을 쓰며 좀 바보같이 또 훌쩍거린 관계로 웃기게 마무리하겠읍니다.)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 혼자가 아닌 나, 서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