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 박정환 VS 신민준 (6)
AI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시점은 16년 3월에 펼쳐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부터이다. 이전부터 그쪽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 세계가 AI기술에, AI산업 발전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고, 누구나 챗GPT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프로기사들은 모두가 AI를 사용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바둑 AI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한국 프로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AI는 '카타고'라는 오픈소스 AI이다. 카타고는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심지어 바둑TV 등에서 띄워주는 'AI 승률 예측'역시 카타고에게 맡기고 있다. 카타고가 오픈소스 AI 중에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한 이유는 '집 차이'를 정량적으로 계산하도록 설계되고 훈련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지금 몇 집 차이'를 계산할 수 없다. AI 역시도 '확률적으로 이렇다'라고 알려줄 뿐이다.) 한마디로 '인간 프로기사의 눈높이에 딱 맞춰준 AI'라고 평가할 수 있다.
최고의 바둑 AI인 중국의 '절예'는(중국 국대 전용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2점 접고 이긴다. (약 13집 정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지면 AI와 대국을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초월자를 상대로 핸디캡을 받고 꾸역꾸역 버텨보는 연습이 만만찮은 상대와의 정면승부를 준비할 때 도움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카타고를 선생으로 삼느냐 절예를 선생으로 삼느냐 역시 큰 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프로기사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AI를 사용해 바둑을 연구한다.
1. 자신이 둔 바둑 또는 자신이 연구한 기보의 평가를 AI에게 맡긴다.
- 이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대국을 하거나 기보연구를 할 때는 반드시 상당한 양의 수읽기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다음 AI의 추천수와 판단 등을 보면 자연스럽게 내 판단과의 차이점이 보인다.
2. 초반을 AI와 함께 연구하며 자신에게 맞는 포진을 찾는다.
- 바둑에는 '절대적 정답'이 없지만, 초반에는 어디에 둬도 나쁜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나한테 가장 잘 맞는' 포진이 무엇일지 찾기 어렵다. 나는 '잘 맞는 거 같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좋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니 초반을 연구할 때는 AI에게 즉각적으로 답을 얻거나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모든 경우를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굳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그냥 고수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3. AI와 대국을 한다.(형세가 확실히 기울 때까지)
- AI에게는 최고의 선수들이 2점 깔고 대국을 해야 승산이 있을까 말까라고 했지만, 어차피 2점 깔고 두는 대국은 정상적인 대국이 아니다. 그렇기에 절대 이길 수 없더라도 핸디캡 없이 대국하는 것이다. 이 훈련은 대개 3~60수 정도 두다 보면 형세가 크게 불리해진다. 그다음 AI에게 피드백을 받아보면 내 운영이 어디서 부족했는지,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즉 이 방식은 '넘을 수 없는 벽'을 뛰어넘는 시도를 계속 반복해서 자신의 약점을 알아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방법이지만, '이기는 훈련'이 아니기 때문에 이 패턴에 너무 익숙해지면 사람을 상대할 때도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쪽으로 경직될 수 있다.
한때 바둑이 AI에게 '점령'당하면 '사람 대 사람의 바둑을 보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퍼진 적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AI가 최고수라고 해도, 결국 바둑 승부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바둑을 즐기기 때문에 그런 승부가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바둑 AI는 인간의 바둑을 한 단계 이상 진화시켰고, 형세를 알 수 없어 답답했던 바둑팬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바둑처럼 AI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키는 결과를 만들기 바란다.
<24-25 하나은행배 슈퍼매치> 4강전
(흑)박정환(백)신민준
6보 (70수~87수)
<실전진행1>
신민준이 70쪽으로 손을 돌리자 바둑TV 박정상 해설자가 놀란다. "아.. 손을 뺐네요? 하변 늘면(71) 어떻게 할지(안 보이는데).." 박정환 역시도 끝난 후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곳이 이 장면이었다. "하변에 한 점 살려 나오면서(71) 타개하는 과정에서 성공하면서 우세를 잡은 것 같다"(박정환) 신민준은 71로 살려 나오더라도 72,74로 나가면 된다고만 생각한 것일까. 흑이 75,77로 하변을 뚫고나가자 백이 확실히 곤란해졌다.
70으로는 <참고도1>1,3으로 끊어가야 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 먼저 공격적으로 나가서 상대가 하변을 살릴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은 방어였다.
<참고도1-1> 흑은 1~7로 우변 집을 크게 짓게 된다. 하지만 백도 2~8까지 중앙에 벽을 쌓을 수 있다. 흑도 중앙을 타개하려면 골치 아프다.
<참고도1-2> 흑1이 맥점으로 백은 6,8로 물러나야 한다. 13까지 부분적으로는 흑이 잘 된 모양. 하지만 14로 좌상귀 흑을 공격하면 하변 흑 대마와 엮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갔다면 흑도 어려웠을 것이다. (AI추산 백 승률 59%)
77까지 빠져나오자 70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지금 와서 끊자니 하변에서 너무 크게 당할 것 같다. 하변을 두자니 흑이 중앙을 이으면 70은 헛손질이 된다. 위기 상황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민준은 큰 고민 없이 다음 돌을 뽑아들었다.
<실전진행2>
78로 하변을 공격하는 건 사람 심리상 당연하다. 81로 받기 전에 79로 하나 젖혀두는 것이 중요한 수순. 85로 잇고 87로 빠져나와서는 백이 한 것이 없다. 아직 차이가 큰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박정환이 틈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추격이 꽤나 어려울 것 같다.
단수를 이은 83은 당연해 보이지만 약간 아쉬운 수였다. 그냥 <참고도2> 흑1로 이었다면 백이 2로 따낼 때 3,5를 교환한 다음 7,9로 살 수 있었다. 백도 2에 두지 않고 잡으러 갈 텐데, 그러면 굳이 한 점을 살릴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