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에 초등학교
네덜란드는 네 살이 되면 학교에 간다.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으면 학교에 보낸다. 만약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서툰 아이라면 이를 훈련해서 보내 달라는 공문을 받기도 한다.
네 살은 일종의 0학년으로 1학년 입학 하기 전에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에 속한다. 조부모나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때는 다섯 살에 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다섯 살부터는 의무 교육이라 꼭 학교에 보내야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홈스쿨링이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루이가 세 살 때부터 학교를 탐방했다. 집 앞에는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었고 근처에는 대여섯 개가 있었다. 대부분 전통 방식의 초등학교 과정이었고 한 곳이 창조적 학교로 특별한 시간표가 없이 아이들의 자율성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창조 학교에 루이를 보내기로 했다. 루이가 다니는 학교는 몬테소리와 전통 방식의 중간쯤 되는 새로운 형식의 학교였다.
일단,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루이에게 마음껏 뛰어놀면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아이에게 더 유익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두 번째는 전통 학교에 비해 상담이 원활했다. 전통 학교는 우리와 상담에서 영어 쓰기를 주저했고 약속을 계속 뒤로 미뤘다. 코로나 시기여서 학교 투어를 온라인으로 했는데, 모든 과정을 네덜란드어로 진행했다. 외국인인 우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러는데, 들어가서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이 부분은 나중에 큰일을 겪고도 창조 학교에 남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 보통 학교들이 상담 시간을 15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비해 루이의 학교는 한 시간 이상을 내줬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다 할 수 있게 해줬고 필요하면 추가 미팅을 잡아주기도 했다. 부모와 교사 간의 이해와 해결책을 찾으려는 모색이 미팅의 주된 목적이라는 것도 학교를 신뢰하게 된 이유였다.
전통 학교에 반해 창조 학교는 루이의 입학에 적극적이었다. 아이들의 개별성을 토대로 수업이 진행되는 것도, 아이가 아침에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하루의 계획을 스스로 짜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네살 짜리 사내아이가 자기 계획표를 짤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선생은 그날 아이가 할 큰 틀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아이에게 순서를 정하게 한다. 그날 만약 아이가 읽기와 쓰기, 블록을 해야 한다면 이 순서를 아이가 정할 수 있을 뿐, 이걸 안 하고 학교가 끝나지는 않는다. 또 그룹으로 해야 하는 수업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 함께 수업을 듣는 식이었다.
학교는 내게 일주일 정도 루이와 함께 학교에서 생활하는 걸 제안했다. 화장실 사용, 학교생활 적응 같은 것들에 적응할 때까지 엄마인 내가 학교에서 루이를 돌보길 바랐다. 네덜란드어를 못 하는 루이만을 돌보기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어쩌다 보니 총 2주 동안 루이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 학교의 규율은 생각보다 더 자유로웠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나를 새로 온 선생으로 생각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9시 30분에서 12시 30분까지 원하는 시간에 간식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교실 안에 점심을 먹는 테이블에서 먹거나 날씨가 좋으면 운동장에 앉아서 먹을 수 있다. 배가 고프면 가방을 들고 테이블에 앉거나 운동장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룹의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루이가 함께 껴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야 했다. 선생이 새로운 친구를 아이들과 섞여 놀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루이가 처음 배운 네덜란드어가 "Ga weg.(저리 가.)" 였으니 말해 뭐할까. 원활한 적응을 위해 선생이 개입할 만도 한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게 선생의 이유였다. 엄마로서는 거의 따돌림 수준이라 걱정이 됐는데, 학교는 루이가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들고 적응하길 바랐다.
아이들은 아침에 크롱(아이들은 교실에 원형으로 앉는다)에 모여 초에 불을 켜면서 명상을 한다. 성냥을 만질 수 있는 아이는 다섯 살 생일이 지난 아이들뿐이다.
루이 학교는 유닛으로 학년이 나뉜다. 보통 전통 학교는 그룹으로 나뉜다. 1그룹에서 5그룹까지 있고 졸업을 하면 시험 결과에 따라 그에 맞는 중.고등학교를 간다. 하지만 루이 학교는 1유닛에서 4유닛까지 있고 각 유닛에는 3살 정도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 함께 생활했다. 예를 들면, 유닛 1은 유치반이고 유닛 2는 4세에서 6세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했다. 유닛 3은 6세에서 9세초반까지의 아이들이 유닛 4는 9세에서 11세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 식이었다. 각 아이는 자신의 재량에 따라 다음 유닛을 갈 수 있다. 느린 아이는 조금 느리게 가고 빠른 아이는 조금 빨리 다음 유닛으로 넘어간다.
이런 제도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아이들은 정말 밝다. 창조적으로 놀이를 연구하고 만든다. 하지만 공부적인 면에서 보면 내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루이는 네덜란드어를 못 했기 때문에 초보 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친구도 사귀고 생일 초대도 받는 걸 보면서 나는 루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의사소통도 되는 것 같았고 이웃들도 모두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사실, 우리 아이가 언어에 천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여기서 루이의 언어에 대해 말해야겠다. 어쨌든 루이는 세 언어로 시작했다. 폴란드, 한국어와 영어였다. 나는 꾸준히 루이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썼고 라파엘은 주로 영어를 썼다. 코로나 전에는 폴란드에 자주 가서 루이가 폴란드어를 알아들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루이의 언어는 영어로 좁혀졌다. 일단 라파엘이 재택근무를 했고 우리는 24시간 함께 있었다.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는 게 불안하던 시기라 짧은 산책 외에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세 살이었던 루이는 자연스럽게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였다. 나는 루이가 한국어를 하는데,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꾸준히 한국어를 쓰고 있기도 했고 시키면 곧잘 맞는 물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하며 언어는 크게 흔들렸다. 이 이야기는 후에 다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루이는 학교를 정말 좋아했다. 외동이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출이 자제 되던 시기를 거치면서, 루이가 정말 원하는 건 친구였다. 루이는 학교에서 보내는 다섯 시간을 조금도 앉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블록 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 말고는 운동장에서 모래를 파거나 흙 위를 뒹굴며 놀았다. 학교에 다닌 이후로 멀쩡한 옷이나 양말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일찍 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멀리 보는데, 아이들이 줄지어 운동장에서 구르고 있었다. 깔깔 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 안에 가득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루이도 그 안에 있었다. 얼마나 많이 굴렀는지 옷이 다 흙투성이였다. 루이는 벌떡 일어나 다시 줄로 가서 구를 준비를 했다. 나는 얼이 빠져 아이들이 흙으로 자신을 마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 옆에는 바깥 놀이 지도 교사도 있었다. 내가 그녀를 봤을 때, 그녀는 양손을 들어 으쓱 했을 뿐이다. 그녀의 그 행동이 내게 "Welcome to Nederlands."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