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사고 1
* 연재 글을 일반 글로 올려서 다시 올립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건 순전히 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였다. 지금도 나는 작은 소리에 민감하고 타인의 작은 움직임에도 움찔거린다. 사고 이후 우리는 각자 자신의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고 여전히 그러고 있다. 다행인 건 이 사고가 우리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라는 거다. 이 다행이라는 말이 너무 이기적이라 가끔 내가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믿지 않는 신에게 감사한다. 이 사고를 겪은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사건이 일어난 건 부활절 휴가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휴가 후에 아이들이 처음으로 학교에 나갔을 때였다. 나는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고 소설을 고치고 있었다. 구름이 짙고 어두운 날이었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고 있어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휴가 후에 피로감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밖은 유난히 조용했다. 그때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내 헬기 소리가 들렸고 멀었던 앰뷸런스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오랜만의 작업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아 그 모든 소리를 무시했다. 잠시 후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하나 떴다. 마리였다. 마리는 루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매키의 엄마였다.
'너희 집 쪽으로 앰뷸런스가 갔어. 헬기도 그쪽으로 갔고. 나는 지금 출근을 하고 있어서 갈 수가 없어. 아무래도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네가 가까우니까 한 번 밖을 살펴줄래?'
나는 일어나 블라인드 틈으로 밖을 살폈다. 그때까지도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겼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헬기였다. 그다음으로 학교 앞 차도에 선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보였다. 나는 뭔가 잘못된 걸 알았다. 겉옷만 걸치고 무작정 학교로 달렸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몇 사람만 있을 뿐 학교 앞은 조용했다. 학교로 뛰어들어갔다. 여느 날과는 다른 분위기가 학교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 학교 후문 쪽으로 향하는데, 널브러진 플라스틱 놀이기구 같은 것들이 보였다. 뭔가 행사를 하다가 급하게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구급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아이가 누워있었는데, 구급 대원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누운 아이의 몸에 하얀 천 같은 것이 덮여있었다.
'우리 아이일까? 우리 아이면 어쩌지?'
휴대전화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건물 안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루이와 그 친구들이 유리에 바짝 서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매키는 손가락으로 루이를 가리키며 자기들은 안전하다는 표현을 했다. 마리에게 우리 아이들은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서둘러 보내고 나니, 일이 생긴 아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이기적이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그전보다는 많은 사람이 나와있었다.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를 물었다. 그들도 나처럼 아는 게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들보다 많이 알았다. 나는 무선 하는 경찰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물었다. 그가 내게 말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는 게 없다고 사무적인 답을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에 몸이 젖는 것도 잊고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 기다렸다.
누군가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했다. 물? 아이들이 학교 앞 인공 바다에서 놀았던 걸까. 그러기엔 날씨가 아직 추운데, 같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이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을만한 다른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방이 물이었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빠질만한 곳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후 들것을 들고 구급 대원이 나왔다. 학교 선생님이나 교장은 함께 나오지 않았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아이를 언뜻 봤는데, 갈색 피부였다. 나는 그 아이가 대번에 누구인지 알았다. 술리였다. 루이 친구의 동생이었다. 나는 바로 경찰에게 그의 부모에게 연락이 됐는지를 물었다. 부모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했다.
나는 무작정 아이의 집으로 달렸다. 대문을 두드리며 모나(술리의 엄마)를 불렀다. 이내 경찰이 도착했고 모나가 그들이 경찰이라고 말하는 순간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모나의 남편은 수리남 출신의 이민자로 형제가 열한 명이나 됐다. 나는 딱 한 번 그녀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집 안에 창살을 치고 밖에서 보이지 않게 창문에 어두운 색 선팅지를 발라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게 했다. 이건 네덜란드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안이 다 보이게 커튼을 열어 놓는다.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 훔칠 것도 없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자신들은 감추는 게 없다는 이유라고 들었다.
어쨌든 그때, 모나 가 앞문을 사용하지 않는 사실이 떠올랐다. 현관 쪽에 많은 짐이 쌓여있는 걸 본 기억이 났다. 나는 뒷문으로 가서 모나를 다시 불렀다. 뒷문과 앞문을 왔다 갔다 하길 십여 분 만에 모나 가 짜증 섞인 얼굴로 이층 창문을 열어젖혔다.
"너 빨리 학교에 가야 해!"
그녀의 시선이 학교 앞 앰뷸런스에 닿았다. 모르지만 그 뒤에 헬리콥터도 봤을 거다. 그녀는 뒷문으로 나와 차를 몰고 학교로 갔다. 그때까지도 술리는 의식이 없었다. 인공호흡을 하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이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나가 도착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술리의 호흡이 돌아왔다. 앰뷸런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학교에 일이 생겨 아이들을 빨리 데려가라는 거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학교 선생인 마리안과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나는 그녀를 안아줬다.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정말 괜찮을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중얼거렸다. 이내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술리가 물에 빠졌다고 말했다. 술리의 형인 칠리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무구한 그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놀람도 잠시, 우리는 이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야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