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문제
루이는 8시 30분부터 2시까지 학교에서 생활했다. 1시 55분까지 학교 앞으로 가서 루이를 기다리다 보면 얼굴이 익은 부모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곤했다. 간혹 플레이 데이트라도 한 친구의 부모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며, 소위 말하는 스몰토크를 하기도 했다. 루이가 학교에 간 지 6개월이 지날즈음부터 나도 학부모들의 스몰토크에 끼게 됐다. 더는 뉴비가 아니었다. 이 기쁨도 잠시,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학교에서 루이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어로 좋고 싫은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고 아이들과 플레이데이트도 곧잘 했다. 일단, 루이는 학교 가는 걸 너무 좋아했다. 아침에 루이가 늦잠을 자면, 나는 큰소리로 "그럼, 오늘 루이는 학교 쉰다고 선생님께 말해야겠다."라고 소리쳤다. 그러면 루이는 눈을 비비고 벌떡 일어나 학교에 갈 거라며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아니야, 루이는 오늘 피곤하니까 학교 쉬어도 돼."라고 말했다. 루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학교에 갈 거라고 울먹였다. 루이는 누가 봐도 학교를 즐기고 있었다. 오랜 팬더믹으로 놀이터에 갈 수도, 또래 친구 집에 놀러 갈 수도 없었기에 루이는 친구가 제일 그리웠던 것 같다. 루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랬기에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학교 생활은 어땠어?"
하교 후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는 항상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면 루이는 한결같이 "Good."이라고 답했다. 또 어느 날에는 "Very good."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하기도 했다. 육아 유튜브를 즐겨보면서 나는 내 질문이 너무 광범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유명한 육아 유투버는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오늘 학교에서 루이는 뭘 했을까?"
"기억이 안 나."
루이는 언제나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바꿨다. 외아들을 둔 엄마의 집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들의 입을 기어이 열겠다는 집념으로 육아 유튜브를 열심히 시청했다.
"오늘 학교에서 가장 재밌었던 건 뭐였어?"
이 정도 질문이면 아무리 루이라도 답을 하겠지 싶었다. 근데, 루이도 만만치 않았다.
"All."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는 아들을 협박하는 방법 말고는 루이의 일과를 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우리의 대화는 조금 달라졌다.
"오늘 학교 어땠어?"
"Good."
"오늘은 뭘 배웠어?"
"기억 안 나."
"제일 재미있는 건 뭐였어?"
"All."
여기까지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루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루이 옆에 앉았다. 그럼 루이는 텔레비전을 봐도 되는지 묻는다. 그럼,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루이에게 말한다.
"텔레비전 보고 싶으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
이런 식으로 아이의 일상을 확인하는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항상 우아하게 아이와 대화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 motherhood를 보내고 싶었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아무리 육아 고수라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어쨌든 협박으로 나는 루이의 학교 일상을 조금, 듣게 됐다. 어떤 육아 유투버나 육아 고수의 조언보다, 조금 비겁하지만 협박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자주 이 방법으로 루이의 학교 생활을 엿듣는다.
"엄마, 근데. 아이들에게 나랑 좀 놀아달라고 말해주면 안 돼?"
그때 루이는 1층과 2층 중간 계단에 앉아있었다. 하교 후에 간식을 먹고 2층으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루이는 내게 여러 번 비슷한 부탁을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루이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보다 루이가 어떤 태도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지를 충고했다.
"친구들은 루이랑 놀아주는 게 아니야. 함께 노는 거지."
나는 꽤 괜찮은 엄마인척 하고 싶었고 그래서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기억되고 싶었나보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쿨한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쿨하면서 우아한 엄마 말이다. 그런데 그다음 루이의 말은 나를 쿨한 엄마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A가 다른 친구들에게 나랑 놀지 말라고 해."
A는 루이보다 한 살 위로 루이가 노는 그룹의 리더 같은 아이였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너랑 안 놀아?"
루이는 가끔은 함께 놀지만, A가 자꾸 다른 친구들에게도 놀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나는 매일 루이의 놀이 상대를 확인했다. A와 다른 아이들이 같은 행동을 계속하는지 같은 것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일이 꽤 오래전부터 루이에게 일어났음을 알았다. 루이는 그게 따돌림인지도 몰랐다.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 행동으로 옮길 순간이었다. 우리는 교장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내 약속을 잡았다. 그 사이 네덜란드에서 왕따가 어느 정도 선까인지를 확인했다. 과잉대응으로 루이가 학교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루이가 속한 그룹 전체의 아이들이 이 일에 연루돼 있었다. 처음에는 한 아이가 시작해 전체 아이로 퍼진 경우였다. 무리 중에 한 아이인 M이 새로운 얼굴인 루이가 자신의 그룹에 끼는 게 싫어서 그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행동력이 있는 A에게 루이와 놀기 싫다고 말해왔다. 갈팡질팡하던 A는 결국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루이와 놀지 말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른 거였다. 학교는 역시 이 일에 소극적이었다.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문제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루이가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로서 아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강하게 어필했다. 교장과 학년 담당 선생에게 이 일이 생각보다 심각해질 수 있음을 알리는데, 두 번의 미팅이 더 필요했다. 두 달에 걸쳐 여러 번의 미팅 후에 학교는 이 일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 일을 알리는 걸 거부했다. 아이들의 부모까지 자신들이 교육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M과 따돌림 문제가 아닌 그 아이의 행동 문제로 미팅을 가진 후 자연스럽게 루이의 이야기를 꺼내겠다고 말했다. 루이와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주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전교생이 따돌림예방 교육을 받았고 루이 학년은 '낯선 개구리' 이야기로 타지에서 온 친구를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이 모든 교육 후에 학교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려줬다. 이미 일어난 일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 의견을 귀담아듣고 따돌림 문제가 더 커지지 않게 노력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