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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09화

LifeBGM | 하루에 대하여

Giovanni Mirabassi - Gracias A La Vida

by Ggockdo




하루, 낮과 밤, 오늘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하루, 낮에도 밤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활활 타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늘의 생동에 대해 생각합니다. 하루는 짧으며 길고 지난하며 또한 순식간이며 모든 감각과 의견을 군말 없이 수용합니다. 하루는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만 하루를 곱씹습니다.

어떤 이는 하루가 너무 아까워서 (시간과 하루는 조금 다릅니다.) 하루치 분량의 사랑에 인색하게 굴고, 쓸데없이 마음 쓰는 일 없이 하루를 아껴 잘 살았다, 뿌듯해하다 갑자기 돌연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또는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겠노라 선언하고 하루를 가득히 살았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애써 외면한 뒷맛이 텅 비어 있어서 잠깐씩 울컥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늘 만족을 모릅니다. 결코 꽉 차지 않습니다.


온전한 하루는 없고 나와 하루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도 아닌데, 오늘이 또 하루가 되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오로지 순간과 현재로만 존재하는 하루를 또 맞이했다 떠나보내야 하는 수십 번의 이별이 어찌 상실이 아닐 수 있을까요. 나는 오늘도 하루를 상실했습니다. 어제도 상실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루를 온전히 가지는 방법을 오늘도 연구합니다. 고정되지 않는 하루를 떠나보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꽃을 떠나 보낸 자리에서 열매를 수확해 단 맛, 화사한 힘을 얻는 것같이 떠나보낸 하루의 자리에 부디 다른 하루를 위한 빨간 열매가 크게 맺히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다른 하루를 위한 기대만이 하루를 온전히 가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기대하기 위해서 낙엽을 씹으며 미련 없이 떠나는 하루를 순순히 놓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on Giovanni Mirabassi - Gracias A La Vida


하루는 삶 자체입니다. 하루살이, 날벌레의 삶만이 아닙니다. 하루는 그저 산다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기대와 상실의 연속일 뿐입니다. 때로 산다는 것은 살아가는 주체와 그다지 큰 연관성 없이 흘러갑니다. 심장이 아무리 뛰어도 영혼은 죽을 수 있고 연달아 헐떡거려도 마음은 그만큼 뛰어주지 않습니다.

나와 삶의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사람은 모두 삶을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냉담한 관계 앞에서 살-ㅁ (살- : 동사에 명사형 전성어미 -ㅁ의 역할을 별도로 부여한 형태의 단어) 쪽으로 부지런히 따라잡기 위해 『게으른 국가대표 산책선수의 훈련일지』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하루를 걷는 산책선수들입니다.


하루를 걷는 산책선수의 페이스메이커는 역시 음악입니다.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 삶에 감사하라는 이 겸허한 음악을 들으며 걷는 일은 지나치게 장엄하고 정숙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쿠바 리듬이 합세한 이탈리아-프랑스 피아니스트인 지오바니 미라바시의 선율로 들으면 약간만 서글퍼질 뿐, 적당한 삶과 하루의 간극만큼 살짝 하루에서 떨어져 산책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걸으며 저절로 쿠바 해변의 물거품과 소박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하루에도 있다는 것을 목격합니다. 삶에 감사하는 하루는 경건하고 멈춤과 쉼이 있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순간입니다.


그저 살아내는 하루가 감사하는 하루입니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잠시 먹먹하게 걷는 거리의 사람들 아래로 부지런히 삶이 뒤쫓아가는 순간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하루는 내가 따라가야 할 삶이 아니라 삶이 나를 따라오는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하루는 저렇게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옵니다. 내가 굳이 하루와 오늘에 대하여 집요하게 굴지 않아도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 눌어붙어 조용히 따라옵니다. 그 광경은 아주 은밀하고 깊게 스며들어서 떨쳐내지 못합니다.


길을 곧지 못합니다. 잘 다려놓은 아스팔트도 굴곡져 있습니다. 세상 모든 길이 그렇고 하루도 절대 시원스럽게 곧게 나 있지 않습니다. 리듬도 그러합니다. 리듬은 곧지 않습니다. 쿠바 퍼커션은 절대로 정박을 고수하지 않고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하루도 곧지 못합니다. 수십 번 감정이 뛰놀고 정기적인 파도마저 포말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저 곧지 못한 길과 걸음이라서, 하루의 걸음을 리듬으로 만들어 줍니다. 왼쪽에는 심장이 있어서, 양 쪽의 장기배치가 달라 사람의 오른쪽과 왼쪽은 무게가 다르고 절대 고정된 균형을 맞출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걸어도 어딘가는 살짝 먹는 박자로 절룩이는 사람의 몸이라서, 저 곧지 못한 하루를 리듬으로 만들 수 있나 봅니다.


곧지 못한 하루와 굴곡진 길이 구불거리며 산책합니다. 우리의 산책은 명상도 아니고 평화롭지도 않지만 그것이 살-ㅁ 자체임을 음악이 말해줍니다. 그래서, 고맙다며 은근한 흥겨움을 얹어줍니다. 감사는 고요하지 않고 정적이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더욱 고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활발하며 끊임없이 부산스러운 움직임 가운데 있습니다.

음악은 코러스의 화음으로 정리됩니다. 하루는 코러스입니다. 사는 것은 나이며 오늘과 낮과 밤과 살-ㅁ은 나를 위한 화성으로 부르는 코러스입니다. 하루는 나와 상관없이 굴지만 내가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따라붙습니다. 결코 내가 하루를 한가득 품에 안을 수는 없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루는 나입니다. 내가 그저 살아가는 한 하루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밀려들 것입니다. 하루가 밀물과 썰물로 쓸려 나갔다 밀려옵니다. 이것은 이별과 상실이 아니라 서로의 궤도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신호.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에서 서로의 부지런한 페이스메이커로 순순히 하루의 영광을 서로에게 돌립니다.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Gracias A La Vida는 본래 Mercedes Sosa의 보컬곡입니다.

오늘 LifeBGM은 프랑스로 망명한 이탈리아 재즈 피아니스트 Giovbanni Mirabassi 지오바니 미라바시가 쿠바에서 연주한 버전으로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앨범은 없지만 youtube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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