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io Bosso - Trio No.2
어제 우산을 잃어버렸습니다. 빗방울이 아직 마르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산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많은 빗방울도 잃어버립니다. 우산 없이 어설픈 비를 맞으며 걸어가다 점점 비가 드물어지는 것과 지나치게 장엄한 하루의 끝이 붉은 해의 잔재 쪽에서 부글부글 끓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루 내내 가려져 있던 해가, 잃어버렸던 해가 돌아오지 못하고 비장하게 저물었습니다.
On Ezio Bosso - Three Drawings about missed steps (Trio No.2)
잃어버린 우산이 어디에 덩그러니 놓여있는지 압니다. 남산 아래,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 정류장에 두고 왔습니다. 낡고 값싼 우산이라 아무도 탐내지 않아 그대로 놓여있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이유로 나도 굳이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우산이 하찮아도 잃은 것은 잃은 것입니다. 나는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나를 찾아오는 무서운 상상을 합니다. 낡은 우산은 아까워하지 않았지만 만 원권 지폐를 잃어버렸을 땐 굉장히 상심했습니다. 또 가방에 달려 있던 인형이나 귀걸이 따위의 자잘한 물건들도 있었습니다. 금방 잊어버리고 사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은 나도 누군가에게 잊히고 잃어버려진 존재같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나를 바라볼 표정을 내가 하고 있어서 거울 보기가 무섭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은 얼굴이 없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 등장하는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사람도 얼굴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사람에게서 잃어버려진 것들은 더욱 희미하고 얇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너무 얇고 희미해서 이제는 그들이 어떤 표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얼굴이 두렵습니다. 그것이 내가 놓쳐버린 기회이거나 어쩌면 희망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작은 모면과 기쁨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내게 지어주었던 가냘픈 미소를 몇 떠올립니다. 급하게 산 편의점 출신의 비닐우산이 내게 주었던 뽀송한 감각이나 많은 메모를 하며 내 손의 땀을 견뎌주었던 검은 볼펜의 노고를 무시한 채 살았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풍경입니다. 톨스토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존재하는 것은 순간'이라면, 모든 것은 순간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도 마찬가지로 순간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순간은 모두 풍경입니다. 종일 내리던 비에 대항하여 펄펄 끓던 해의 한 서린 붉은 속내로 떨어져 내린 오늘 하루처럼 말입니다. 나는 저것이 내가 잃어버린 풍경의 복수심인 것 같아 조금 무섭고 웅장한 기분이 듭니다. 적어도 그 풍경을 지금 목격한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됩니다.
Ezio bosso의 음악은 잃어버린 얼굴을 자꾸 마주하게 합니다. 희미하고 얇은 얼굴들이 중첩되어 첼로의 선율만큼의 빠르기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나는 우산이나 물건에서 떠나 본격적으로 잃어버린 풍경의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비가 오는 4월은 늘 그렇듯이 잔인합니다.
사느라 바빠서 잃어버린 순간의 초상을 보십시오. 우리 이웃들의 비탄과 형편없는 몰골과 감정 없이 점점 얇아져 가는 얼굴이 멈춰 서서 삭아갑니다. 또한 순간의 선택에서 배제당한 당신 자신의 진정한 속뜻의 낯을 보십시오. 그렇구나, 의 대답 아래 깔려 있던 아닌데, 의 진심과, 세상이 그러하다는 당위가 지워버린 마음의 상을 보십시오. 흐릿한 얼굴과 그 아래의 몸짓을 보십시오. 굳어버린 페인트의 질감을 가진 뻣뻣한 몸짓을 보십시오. 잃어버린 풍경이 당신을 기다린 시간의 흔적을 보십시오.
절규나 혹은 잃어버려진 존재답게 지나치게 움츠러든 포즈와 컴컴한 배경을 보십시오. 컴컴한 하늘을 보십시오. 램브란트의『야경』이 실은 밤이 아니라 낮이었던 것처럼, 실은 컴컴하지 않았던 풍경을 보십시오. 찬란했던 순간을 검게 만든 당신의 눈을 깜빡이십시오.
우산을 놓고 온 버스 정류장을 기억합니다. 서로에게 아무 관심 없이 서 있던 탑승객이 우르르 몰려 타던 순간 우산이 잃어버려지고 있던 풍경을 기억합니다. 우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입니다. 우산을 같이 쓰고 다니던 즐거웠던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의 말린 어깨와 코트가 팔랑거릴 때 안에서 풍기던 따뜻한 향수 냄새를 기억합니다. 지금은 안부를 묻지 않은 그의 얼굴을 상기하려 애씁니다.
우산을 들고 다니며 핸드폰까지 손에 쥐고 바쁜 척하느라 하반신만 간신히 본 환승역의 계단들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의 젖은 신발들, 운동화 끝이 물을 빨아들인 무거운 몸을 퉁퉁, 힘겹게 쳐대며 나와 발을 겹치지 않으려 애쓰던 그 걸음의 얼굴은 보지도 않앗습니다. 우산을 손목에 걸고 보지 않고 지나친 많은 바깥 풍경의 이야기는 다소 직관적입니다. 함께 했던 많은 순간의 초상은 빛을 잃어 검게 타 버린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내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풍경입니다. 음울하고 서글프게 잠식해 들어가는 첼로와 피아노의 마지막 음이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갑니다. 내가 잃어버린 풍경은 모두 다 꺼져 들어가고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순간은 없습니다. 검게 덧칠한 얼굴이 두껍고 까마득하게 우주로 변해 사라집니다.
그러나 음악을 다시 트는 순간, 허전한 손 안에 있어야 할 잃어버린 우산의 감촉과 비가 사라진 저녁에 애끓는 노을 속으로 모든 잃어버린 순간을 집어 던지며 그리움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장 먹먹하게 만드는, 모든 잃어버린 풍경의 희미한 얼굴을 어루만집니다.
Trio No.2 "Three Drawings About Missed Steps"
Ezio Bosso 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더블베이시스트, 지휘자로 천재로 평가받던 뮤지션이었지만 2011년 뇌종양 수술 후 신경퇴행 질환으로 더이상 연주하기 어려워졌으며 2020, 코로나 합병증과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4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