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d mehldau - don't be sad
주말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주먹 막 한 우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건조하더니, 그래서 사람들 눈물 쏙 빼가더니 뒤늦게 비가 울었습니다. 비가 울 때, 더 울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슬플 때 도리어 울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어느 다른 몸보다 영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울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분명 어디선가 눈물이 새고 있을 겁니다. 땀을 흘리거나 침을 뱉거나 혹은 평소보다 화장실을 자주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꽤 똑똑해서 눈물 사용법을 아주 잘 터득했습니다. 천운영 작가는『그녀의 눈물사용법』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당신의 영혼은 눈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울 만한 일에 울 수 있는 사회는 연약한 세상일까요? 차창을 후드려 패는 비눈물이 투명한 몸을 내던지는 걸 보면서 그의 자유낙하를 부러워합니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우는 대신 화를 냅니다. 나는 그러한 이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울고 싶은 마음과 화내는 것들이 결국에는 슬픔으로 성장하는데, 그렇게 슬픈 지경까지 자라게 된 눈물과 화는 쉽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너무 많이 자라 버린, 그런 슬픔들입니다. 세상은 온통 웃자란 슬픔들의 밭입니다. 이 세상이 열심히 각종 슬픔을 성심성의껏 키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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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까지, 친구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밀조밀하고 조금은 홍조가 오른 얼굴에서 눈만 바라보며 이야기하다 보니 갑자기 그냥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친구는 많이 울어 본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헤어진 직후, 천천히 혼자 걸으며 음악을 들으며 많이 울어 본 내 친구의 눈을 생각합니다.
많이 울어 본 눈이 눈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가 나를 바라볼 때 한결 진심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척박한 환경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갖은 설움과 슬픔의 뒷마당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마음의 뒷마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은 세상이 함부로 가꿔 비탄의 열매를 따가도록 허락하지 않을 최후의 텃밭입니다. 그 결과가 꼭 분노와 슬픔이 아니어야 할 지키고 싶은 감정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느릿한 걸음마로 진행되는 피아노 리듬과 은근하게 부는 조슈아 레드맨의 테너 색소폰의 뒤를 잇는 나직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슬퍼하지 않으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 걸 아나 봅니다. 나는 많이 울어 본 눈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합니다. 음악이 그렇게 이끕니다. 음악은 세상에게 이용당하지 않아야 할 사적인 감정을 향해 발을 끌며 걸어가게 합니다. 사적인 감정은 배출될 땐 격렬하게 쏟아져 나오지만 그 속으로 들어갈 땐 은근하고 느립니다. 이 속도를 견디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자기의 슬픔까지 걸어가지 못하고 마음의 뒷마당을 방치하기도 합니다. 브래드 멜다우의 이 음악은 자기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견뎌내게 합니다. 모두가 이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직한 음악이 내 친구의 눈동자 안에서 울립니다. 친구는 많은 날들을 참고 인내하는 데 사용했으며 어금니와 턱뼈가 맞물리도록 슬픔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울었습니다. 나는 이 눈이 가진 눈물의 이력을 대충 알고 있어서 거기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인지, 내가 고른 음악인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웃을 때 생기는 주름과 인상 쓸 때 생기는 주름을 모두 한 번씩 현악기가 긋고 지나갑니다. 이 음악은 내내 눈에 머무릅니다. 눈가에 남은 온갖 주름과 그늘을 떠오르게 합니다. 맑지 않았던 날을 견뎌낸 내 친구의 눈동자가 지는 벚꽃같이 화사하게 부서져 내렸습니다. 나와 함께 대화하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어쩐지 마음이 촉촉해진 것 같은 이 기분은 어찌 된 일일까요?
슬픔에 솔직할 수 있는 사회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아서 함부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슬퍼하지 말아. 많이 울어 본 눈을 가진 사람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가만가만한 걸음으로 자기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입니다. 많이 울어 본 눈을 닮은 희고 깨끗한 꽃을 따며, 어쩔 수 없이 눈은 영혼과 밀접해서 영혼이 눈동자에 머물며 눈꺼풀을 쓰다듬을 때, 부디 울 만한 적절한 음악이 그를 도와주기를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