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조절
신호등이 천천히 숨을 고르듯, 초록빛에서 붉은빛으로 그 표정을 바꾼다. 마치 세상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려는 듯, 그 짧은 순간 동안 거리는 잠깐의 정적에 휩싸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다. 신호등이 바뀌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손에 쥔 작은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부유하는 작은 별과도 같다. 한걸음, 또 한걸음. 무심하게 발을 내딛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저마다 손안의 작은 빛이 그들에게 세상의 전부인 양, 눈앞에 펼쳐진 현실보다 더 생생한 무언가를 좇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순간,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속삭임, 도로 한편에서 이름 모를 길고양이가 느긋하게 몸을 말아 잠든 모습, 지나는 아이가 손을 흔들며 건네는 해맑은 인사. 그리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 너무 바빠 잊고 있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
우리는 늘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멈춰서면,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호등이 반짝이며 속삭이듯 우리의 걸음을 붙잡아 두는 것은, 단순한 교통의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한 번쯤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라는 작은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춰보자. 주위를 둘러보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껴보자. 바쁜 걸음을 늦춘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