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지난번에 소개한 피터 W 뮬린(이하 피터 뮬린) 부가티 외에 미국 내 유일한 시트로엥 수집가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예쁘고 귀여운 차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시트로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차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2CV, 자동차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DS(지금의 DS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차), 트락숑 아방, SM, GS, 아미 등이 대표적이다. 유압 섀시(하이드로릭 섀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자동차 회사이기도 한데 유압 서스펜션을 비롯해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압 브레이크와 유압 클러치를 가장 먼저 개발해 상용화한 곳도 시트로엥이다.
부가티 컬렉션을 기대하고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을 찾았지만 이곳에서는 부가티 대신 미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시트로엥 특별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트로엥과 푸조, 르노는 한때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큰 재미를 못 보고 철수했고 현재도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굉장히 어려운 메이커들이다. 온갖 차들이 다 돌아다닌다는 미국에서 프랑스를 차를 보려면 박물관에나 가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피터 뮬린의 시트로엥 컬렉션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트로엥의 명차들이 가득하다. 우주선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은 플라비니오 베르토니 디자인의 DS를 비롯해 전후 유럽의 경제 복구 최전선에 있었던 HY78(H밴), 고성능 B 세그먼트 시장을 연 슈퍼미니 아미, 전륜구동의 표본이라 불린 트락숑 아방도 모두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는 시트로엥의 실험 정신이 가득했던 GS와 SM, M35 프로토 타입이다. 이번에 소개할 차는 시트로엥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M35 프로토 타입과 올해 55주년을 맞은 GS와 SM이다.
M35 프로토 타입은 아미 8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실험용 차이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267대가 생산된 쿠페로 아미의 전위적인 디자인을 계승했다. M35 프로토 타입은 시트로엥 컬렉터들이 가장 눈독 들이는 모델 중에 하나인데 생산 대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공식 판매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모델들은 소수의 시트로엥 VIP 고객에게만 인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M35 프로토 타입을 제외한 아미 시리즈는 1961년 처음 등장해 1978년까지 생산된 나름 장수 모델이다.
불어로 친구를 뜻하는 아미(Ami)는 시트로엥의 간판스타인 2CV의 후속으로 개발되었다. 농업 국가였던 프랑스의 농부들이 밀짚모자를 쓴 채로 타고 내리기 편하게 설계된 2CV는 달걀을 싣고 비포장을 달려도 깨지지 않는 차로도 유명하다. 아미의 또 다른 별명은 3CV로 2CV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프랑스 소형차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아미는 여러 버전을 내놓았다. 그중 M35는 수평대향 엔진 대신 로터리 엔진이 탑재된 모델인데 시트로엥은 로터리 엔진의 특허가 마쓰다에 팔리기 전 아미를 통해 소형차 시장에서 로터리의 활용성을 타진했다. 여기에 소형차 최초로 유압 서스펜션을 탑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터리 엔진은 합리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시트로엥이 기대한 만큼 효율을 내지 못했고 결국 M35 프로토 타입은 시험작으로 끝났다.
탄생 50주년을 맞이한 GS, SM
GS와 SM은 시트로엥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차종이다. 1968년 오르시 패밀리로부터 마세라티를 인수한 시트로엥은 고급차 외에 마세라티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럭셔리 GT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마세라티의 엔진을 탑재한 차가 SM이고 개발부터 출시까지 무려 14년이 걸린 베스트셀러가 바로 GS이다. GS는 여러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1989년 개봉한 주윤발 주연의 첩혈쌍웅(The Killer)에서 주인공 소장(주윤발)의 선배인 풍강(이호인)의 애차로도 등장한다. 1970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16년 동안 모델 변경 없이 생산된 GS는 4가지 수평대향 4 기통 공랭식 엔진을 기반으로 4 도어 패스트백, 5 도어 해치백, 5 도어 왜건, 3 도어 밴 등 다양한 버전을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GS는 시트로엥의 황금기와 몰락기를 함께 한 모델이기도 하다. 소형차와 중형 고급차 사이에 자리를 잡은 GS는 인기를 누렸지만 출시 4년 만인 1974년 시트로엥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명맥이 끊길 뻔했다. 다행히 프랑스 외에도 칠레,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스페인, 남아프리카, 태국 등에서도 생산되면서 그 명맥을 이었다.
GS에도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로터리 엔진 탑재 모델이 있었다. 1973년 발표된 GS 바이로터라 불리는 이 모델은 당시 프랑스의 자동차 세금 기준이 직렬엔진이나 V형 엔진 보다 로터리 엔진이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등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중동발 오일쇼크가 터지고 연비가 좋지 못했던 GS 바이로터는 873대만 생산되고 단종되었는데 뮬린은 그중 한 대를 보유하고 있다. 당시 GS 바이로터의 판매가격은 일반 GS 모델보다 70% 비쌌다.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경제성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한 비운의 모델이기도 하며 미국에서는 판매되지 않았다. 실패하긴 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 공식적으로 판매된 시트로엥의 로터리 엔진 모델이라는 점이 GS 바이로터의 가치를 말해준다.
1970년에 등장한 시트로엥 SM은 마세라티의 V6 엔진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반대로 마세라티는 시트로엥의 유압 시스템을 사용하기도 했다. 마세라티의 매락과 콰트로포르테 2는 시트로엥의 유압 섀시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캄심의 여러 장치도 시트로엥의 유압 섀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SM은 미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모델이다. SM은 처음 미국에 상륙한 1972년 미국 모터 트렌드가 주관하는 올해의 차에 선정되었으며 고성능 전륜구동 GT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초기 성공에도 불구하고 SM의 미국 수출은 1974년 갑자기 중단된다. 수입 첫 해 6개의 헤드라이트가 미국 법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트로엥은 헤드라이트를 4개로 줄인 모델을 미국에 수출했다.
미국 수출형에는 헤드라이트 플라스틱 커버도 삭제되었는데 이것도 미국 법률 때문이었다. 재규어 E 타입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헤드라이트 커버를 삭제한 버전을 미국에 수출했다. 이후 1974년 미국 내 5마일 범퍼 의무 규정에서도 면제를 받지 못했고 적법성 논란에 시달리던 유압 서스펜션도 결국 불법으로 구분되면서 시트로엥은 SM의 미국 수출을 중단한다.
SM의 독특한 전면 디자인과 반쯤을 가려진 뒷 타이어, 뒤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보디 스타일은 투박하고 거친 미국차들과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뮬린의 SM은 암스테르담의 첫 오너를 시작으로 세 번째 주인이 풀 리스토어를 진행했다.
1974년 파산한 시트로엥은 1975년 푸조에 인수되었다. 1975년 푸조는 마세라티를 매각했는데 이와 함께 SM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SM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시트로엥과 마세라티의 유작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도 있었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운동성은 당대 라이벌들을 압도했다.
피터 뮬린 외에도 SM을 사랑한 유명인은 상당히 많다. 코미디언이자 클래식카 수집가인 제이 레노를 비롯해 구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 롤링 스톤즈의 베이시스트 빌 와이맨, U2의 아담 클라이튼, 콜드 플레이의 가이 베리맨,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도 SM을 소유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은 지난 2024년 2월 10일 문을 닫았다. 2023년 9월 설립자인 피터 뮬린이 세상을 떠난 여파인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아쉬움을 나타냈다. 개인적으로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의 소장품이나 큐레이팅은 지금까지 다녀 본 자동차 박물관 중에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