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시애틀을 떠나 도착한 곳은 깁슨의 고향 내슈빌.
이곳의 날씨는 시애틀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웠다.
원래 미국 일정은 모두 자동차로 움직이려고 했었는데 시애틀에서 내슈빌까지 자동차로 5일이 넘게 걸린다.
쉬지 않고 왔을 경우가 그렇고 돌아가는 일정, 기름값, 숙박비까지 생각하면 비행기를 선택한 것이 현명했다.
내슈빌에서는 하루를 있었지만 숙소가 우범우범스러운 곳에 있어서....
하루 자고 바로 켄터키 볼링그린으로 이동해 내셔널 콜벳 뮤지엄 방문.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 소소한 것들을(?) 모아 소소하지 않은(?) 것들을 콘텐츠로 만드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다.
무엇보다 콜벳이 가진 상징성과 정통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에서 느낀 것은 그런 것들 이상이다.
인터넷이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미국인들은 인물에 대한 감사함을 늘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곳에도 크고 작은 기부자들과 발룬티어들이 가득했으며 로비에 있던 차들이 출고될 때는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배웅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싱크홀까지 콘텐츠로 승화시키며 시뮬레이터를 만드는 코쟁이형의 센스와 재치는 우리가 따라가기 정말 힘든 부분이다.
근처에 있는 서킷에서 가서 거금 315 달러를 내고 C8을 타고 4 랩 정도 돌았고 나오길에 있는 아츠 콜벳이라는 중고차 상점도 꽤나 볼만했다.
렌터카는 포드 에코 스포츠 사륜발이였는데 예전 잡지사 시절 비교 시승 때 포드에 대한 평가(?)를 '극악의 연비'라고 써서 대행사에서 항의를(?) 한 적 있다.
지금은 몇몇 빼고 기자들이 대행사나 마케팅팀에 설설 기는 분위기라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그때 편집장이 내 편을 들어주며 수습해 주셨다.
역시 포드는 '극악의 연비'다.
시애틀에서 타던 쏘울 부스터가 엄청 그리웠다.
미국 중남부는 엄청나게 덥다.
내슈빌은 그나마 덜 했지만 멤피스는 연일 화씨 100도를 넘는다.
땅에서 오는 지열까지 합치면 체감온도는 40도가 넘는다.
습도는 생각보다 높지 않지만 습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엄청 덥다.
멤피스는 개인적인 일정이 있다.
3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의 고종 사촌 친척들을 만나러 왔다.
시애틀 혈맹이자 내가 정말 정말 아끼고 늘 도움 받는 Samuel Chang 덕에 찾게 된 친척들이다.
맴피스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체크인을 하고 친척 형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갔더니 가족은 역시 가족인가 보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얘기만 들었지만(형님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에게는 아저씨 되는 분은 두 번 정도 뵀다) 딱 보고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형님인데 형님은 이미 65세였고 자식들(조카들)은 분가해서 손주가 둘이다.
멤피스에서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가족애나 그런 부분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닌데 이제는 다 커서 가족을 꾸린 조카들도 보고 싶고 손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좀 더 일찍, 좀 더 여유 있을 때 찾아 올 걸이라는 후회가 앞선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BB킹이 녹음했던 선스튜디오는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 중이다.
예전 녹음실을 그대로 보존해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는데 이들이 가진 콘텐츠의 퀄리티와 양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입담 좋은 도슨트와 여기저기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소품, 거기에 얽힌 스토리와 멤피스 블루스와 롹큰롤의 역사는 띄엄띄엄 알아 들어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근처의 엣지 모터 뮤지엄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큐레이터이자 제네럴 디렉터 리처드의 설명도 설명이지만 '오리지널에 언제든 달릴 수 있는 러닝 컨디션만 전시한다'는 박물관 방침, (그래서 거절당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개조한 폰티악 GTO(?)의 얘기를 듣는 순간 모두가 잠시 숙연해짐) 처키 모터스의 공장을 그대로 이용한 구성 등은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가득했다.
제네럴 디렉터 리처드와 신나게 떠들다 잠깐 중단하고 그는 우리는 쇼룸의 한 콜벳 앞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C2 콜벳의 시동을 걸었는데..... 사운드가 진짜 기가 맥혔다.
잠깐이었지만 그는 시동을 끄면서 우리랑 같이 휘발유 타는 냄새를 맡으며 즐거워했다.
'너도 이 냄새 좋아하는구나'
'당근이지 카가이면 당연히 좋아하는 냄새지'
전혀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잠들어 있는 그의 저택 그레이스랜드는 입장료가 좀 비쌌지만 그야말로 입장료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다.
처음에는 그레이스랜드 맨션이나 볼 줄 알고 설렁설렁 갔는데 들어가서 무려 5시간을 보냈다.
인간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든 것(그 많은 것들을 다 보존하고 있다는 게 더 대단한)과 7월에 개봉 예정인 영화 엘비스의 세트장까지 볼 수 있었다.
영화 엘비스의 세트장은 며칠 전 다녀온 선스튜디오의 내부를 재현했는데 실제와 싱크로가 거의 100에 가깝다.
선스튜디오를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미쳤다는 것 외에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일부만 공개된 그레이스랜드 맨션, 엘비스의 자동차, 바이크 컬렉션을 비롯해 출생증명서, 병역 관련 서류, 군복, 무대복 등등 전시품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가 그야말로 감동에 감동이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병역 면제 시행을 반대하는 입장이 더욱 강력해졌다.
이곳에서 테슬라나 전기차를 볼 수 없다.
시애틀을 떠나 테슬라를 봤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딱 한 대 봤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게 전부다.
시가 총액이 어쩌고, 미국 내 판매량이 어쩌고 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실제 와 보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캘리포니아 중심의 서부에서 대부분 판매되는 테슬라만 보고 시대가 바뀌었다 대세는 전기차다 하는 인간들 치고 미국이나 일본 자동차 시장 제대로 아는 놈 없다.
뼛속까지 카가이인 엣지 모터 뮤지엄의 리처드가 쇼룸에 전시된 테슬라 로드스터 프로토타입과 모델 T를 설명하며 '두 차는 혁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전기차가 대세가 되려면 아직이다 최소한 멤피스에서는 말이다'라고 얘기했다.
멤피스는 도로가 거의 서킷이다.
흑인들이 많은 동네(전체 70%가 흑인)라 그런지 오늘만 사는 친구들이 많다.
사실 멤피스 일정은 개인적인 일정이 중심이라 무리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맘모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만류했던 일정이기도 하다.
내가 할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지만 거부할 수 없고 머나먼 길을 돌아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멤피스에 와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점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베스트 5에 들어갈 정도로 값어치를 책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오프라인 콘텐츠와 경험,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문화(요즘 자동차 업계에서 문화 운운하면 거의 사기꾼인데...) 가진 힘을 믿는 꼰대스러운 사람이다.
인터넷에 아무리 정보가 많다고 하지만 직접 보고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무리 빨라지고 편리해졌다고 해도 근본과 정통성에 대한 부분은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이번에 크게 느꼈다.
반면 직접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남기는 것 외에 실제 보고 경험한 것들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늘 고민이다
더군다나 '사진 고자' '동영상 고자'라는(다른 곳은 고자 아님) 것까지 생각하면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돈지랄'로 치부하면서 '저 새끼 먹고살만하네' 하면서 수군대겠지만 글쎄다.... 내가 그런 사람들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거 아니어도 신경 쓸 일 많고 배울 것도 많고 할 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