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멤피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직항이 없어 중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한다.
멤피스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이라 가깝네 했는데 시차가 두 시간.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 타고 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늦은 시간에 어디 갈 곳도 없고 창밖 넘어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모습은 잠깐 스치듯 지났다.
공항에서 졸다 깨다 담배 피우다 자판기랑 싸우다 보니 아침 5시.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심심한 건 둘째치고 먹을 게 없어서 쫄쫄 굶으며 아침을 기다렸다.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자판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폐로는 이용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
몇 시간을 멍 때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대합실 내 유인 카지노에 물어보니 바로 잔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래된 도시이자 관광지로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예전에도 한 번 스쳐 지나갔는데 이번에도 비슷하다.
이틀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일은 동네(이들은 이 근처를 베이라고 부른다) 카가이들이 모인다는 와인딩을 다녀오고 루시드에 들렀다 오토비노에 간 게 전부다.
마음 같아서는 더록에 나오는 언덕길도 가보고 싶고 금문교도 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그다지 연이 없었다.
렌터카는 빨간색의 코롤라가 나왔다.
제타를 렌털할 수 있는 특가 이벤트가(가격도 나름 합리적) 나와 바로 예약했는데 렌터카 업체를 신뢰한 내가 문제였다.
이들은 제타가 없다고 다른 차를 주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결정된 게 코롤라.
남은 일정이 장거리에 빡쎈 구간이 좀 있다는 걸 안 렌터카 회사는 별의별 핑계를 대며 업그레이드하거나 추가 요금을 내라고 종용했다.
'사막을 지나게 되면 엔진이 작아 에어컨이 시원찮지 않고 장거리 주행은 아무래도 V6 엔진이 좋을 것 같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업그레이드를 종용하는데 듣다 듣다 짜증이 나서 '나 한국 모터 트렌드에 기고하는 자동차 칼럼니스트야 차에 대해서는 너보다 많이 알아'했더니 바로 코롤라를 내주었다.
코롤라하고는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LA, 샌디에이고, 출라비스타, 애리조나의 투싼을 거쳐 피닉스 공항까지 1,800km 이상을 이동한다.
멤피스부터 처음 이용한 달러 렌터카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회사다.
어찌 되었든 카플레이도 안 되는 깡통 코롤라를 받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쏘울 부스터만큼 편의 장비가 많은 것도 아닌 딱 있을 것만 있는 코롤라는 타면 탈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값은 갤런 당 시애틀이 5.55 달러 부근, 멤피스는 4.55 달러 정도인데 샌프란시스코는 7달러 아래는 찾아보기 힘들다.
코롤라는 cvt라 연비도 좋고 움직임도 적당하고 실내 공간도 나쁘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무려 14시간 동안 에너지 드링크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못 먹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지인을 만나 오후부터 저녁까지는 와인딩 로드를 돌아다니고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산호세에 있는 루시드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회사다.
한국에서는 시가 총액이 어쩌고 주식이 어쩌고 하거나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데 그런 기사 쓰는 놈들 여기 와서 제대로 좀 보고 빡쎄게 취재도 하고 했으면 좋겠다.
루시드는 자기들 방식대로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주차장에는 직원들이 타고 다니는 별의별 차가 다 있었고 사내 카즈 앤 커피도 열리고 직원들끼리 어울려 서킷을 다니거나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직원도 많이 늘어났고 양산도 나쁘지 않으며 앞으로의 계획도 ceo의 주댕이로 먹고사는 그 회사랑은 차원이 다르다.
안타깝게 루시드를 탈 기회는 없었다.
여러 가지 회사 내부의 사정이 있어서인데 R&D 센터를 둘러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이 불가한 곳이 대부분이라 사진으로 남기는 건 가망 고객 이벤트와 오픈 스튜디오뿐이지만 R&D 센터에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로터스 섀시 엔지니어 출신인 ceo가 cto까지 겸하고 있고 R&D 센터에서 직접 렌치를 잡는 일이 자주 있고 왔다 갔다 마주치는 일도 자주 있다고 한다.(2022년의 얘기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의 파워가 쎄다 보니 일반적인 전기차 회사들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우연히 들른 오토비노에서는 딱 3대만 만들어진 페라리 250 유로파 쿠페 비냘레를 볼 수 있었다.
루시드에 있는 지인이 알려 준 오토비노는 스토리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도착했을 때 문이 닫혀 있었는데 청바지에 노동자 풍의 아즈씨가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다
지나가다 들렀다고 하니 1분만 기다리면 안쪽 투어를 시켜 준다고 했다.
오토비노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는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100% 러닝 컨디션인 이곳에 있는 차들은 두 개의 공간에 보관 중인데 한쪽은 작은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공사 중이라고 했다.
암튼 그 아즈씨는 이차 저차 설명해 주셨는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오토비노의 오너였다.
'난 일 하지 않아 이곳은 그냥 주차장일 뿐이지'
그는 차 한 대 한 대를 설명해 주면서 리스토어 상태나 개조 상태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투로) 설명해 줬는데 내가 유독 자세하게 보고 있던 콜벳 C2 스팅레이를 가리키며 '그 차는 값어치가 없는 개조차야 오히려 니 뒤에 있는 500이 훨씬 나아'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이곳 외에 2 군데의 스토리지를 더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쪽에 더 좋은 차들이 많다고 했다.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와인과 자동차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일 하지 않는(?) 공간을 흔쾌히 이방인에게 보여 주고 레몬색의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를 타고 떠났다.
그는 떠나는 나에게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 즐거운 여행하길 바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또 보자고' 했는데 마치 원래 알고 있던 친구에게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난주부터 한국 영사관에서 오는 문자에는 샌프란시스코 지역 치안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많다.
차털이도 많고 현지인의 얘기를 들어 보니 주변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차를 털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 있는 모텔은 정말 예쁜 정원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도 많고 북적였겠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줄어들고 객실도 절반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
물가가 비싼 동네에서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다음 일정은 장거리 로드트립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 늦은 오후나 저녁 때는 LA에 도착해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