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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앤 페라리

영화 속 자동차 

by 자칼 황욱익 Feb 25. 2025

자동차 영화는 많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만든 레이스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죠.

국내에서 레이스 영화가 성공한 사례는 없으며, 외국에서 흥행했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요인에는 문화적인 특성, 문화적인 이해가 깔려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자동차는 시대 상을 함께 해 온 동반자였지만 한국에서 자동차는 그저 부를 과시하는 소비재 정도로 밖에 인식이 안 되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 롤스 로이스, 벤틀리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의 판매량이 가장 많은 곳이 한국입니다만 우리에게는 그에 맞는 문화나 역사, 전통이 없습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등장해 부를 과시할 때는 어김없이 고급 자동차가 빠지지 않으며, 주식 사기꾼들은 고급급 자동차로 순진한 사람들을 낚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죠.  


각설하고 저는 이 영화를 각각 다른 사람들과 20번 정도 봤습니다. 

포드 앤 페라리라는 국내 제목은 직관적인지만 르망의 주 무대가 되는 유럽에서는 르망 66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레이스 영화라고 보기 조금 어렵습니다. 

치열한 남자들의 삶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열정과 도전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선 영화의 고증은 굉장히 충실합니다. 

해외 자료에 따르면 1966년 당시 르망 경주장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 캘리포니아의 개인 트랙을 세트장으로 만들어 촬영했다고 합니다. 

막바지의 배경이 되는 피트월의 재현은 그야말로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습니다. 

시비를 비롯한 스폰서 간판이 모든 걸 말해 주죠. 

반면 레이스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만 그 안에 많은 걸 함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역시 호들갑은 이탈리어 만한 언어가 없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간간히 눈물을 흘렀는데요 켄 마일즈의 굴곡 있는 삶과 그를 다시 달리게 만드는 캐럴 쉘비의 노력, 자동차 분야에서 정말 쓸데없이 성과와 보여주기만을 추구하는 비열한 숫자쟁이들이 적절하게 배합되었습니다.

당시 포드의 의사결정 과정(지금의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에서 숫자쟁이들의 얄미움도 훌륭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자동차는 아니지만 2018년에 24시간 카트 내구 레이스에 출전했던 경험 덕에 더욱 몰입감이 높았습니다. 

상황도 제가 24시간 카트 레이스에 출전했을 때와 비슷했고요 24시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죠. 


맷 데이먼이 연기한 캐럴 쉘비는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인물입니다. 

르망에서 우승한 미국 레이서, 쉘비 코브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면서도 돈만 쓸 줄 아는 무능한 사기꾼, 연예인과 놀며 즐기는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자신의 브랜드조차 지키지 못한 얼간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이죠. 

영화에서는 매우 열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 무능함과 사기성이 살짝살짝 드러납니다.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는 매우 뛰어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 묘사나 아들인 피터에 대한 애정, 부인인 몰리의 적극적인 응원 등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무엇보다 몰리가 켄의 상황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모습은 부러움 그 자체입니다. 

아들 피터와의 끈끈함은 아마 이 땅에 사는 아들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이스 우승 후 아버지의 트로피를 들고 잠든 피터의 모습도 감동입니다. 

아버지의 레이스를 앞두고 르망의 코스를 직접 그리는 피터나(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죠) 코스를 설명해 주는 켄 마일즈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한 바퀴를 돌면 3분 30초가 지난다..... 24시간 중에' 

깨알 같은 디테일(포드 GT는 레드존이 7000 rpm, 페라리 330 P3는 그 보다 높은 8000 rpm)도 훌륭했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매우 뛰어납니다. 

사실 르망을 알고 1966년 당시의 상황이나 포드가 왜 르망에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를 알면 더 재미있지만 영화에서 모든 부분이 설명됩니다. 

켄 마일즈의 사망 후 캐럴 쉘비가 차를 사러 온 고객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한 시간도 안 몰아보고 좋고 나쁨을 평가하다니....'

이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수 없이 많은 (그러나 내용은 비슷하거나 30km도 안 되는 단체 시승 행사 후에 등장하는 시승기 ) 시승기가 쏟아지는 지금의 한국 자동차 언론계의 상황과도 비슷하고요.

모든 장명 하나하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차를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레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상징하는 바도 매우 큽니다. 


'7000 rpm 너머에는 어딘가 그런 지점이 있다 모든 게 희미해지는'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제대로 멈추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달릴 수 있나?' 

'내가 약속한 건 레이스였어 우승이 아니라' 

요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직접 영화를 보시기를 강추합니다. 

실제 내용에 기반했지만 켄 마일즈를 부각하기 위해(영화의 극적 연출을 위해) 여러 부분이 각색되었다고 합니다. 

켄 마일즈의 정보가 생각보다 없는 이유는 그의 성격에 있는데 영화에서처럼 과격하고 직설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외부 노출을 꺼렸다고 합니다. 

켄 마일즈와 대립각을 세우던 포드의 부사장 비비 역시 영화에서처럼 켄 마일즈를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해요. 

이 부분을 찾아보셔도 굉장히 재미있을 겁니다.

 

어찌 되었던 불꽃 같이 살다 간(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남자의 모습은 다방면으로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참고로 엔초 페라리는 첫 째 아들인 디노가 사망한 후 경기장을 찾는 일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 날도 경기장에는 오지 않았고요.

페라리가 피아트 산하로 들어간 건 몇 년 후인 1969년입니다 

몇 가지 각색된 부분이 있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 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개봉했다 금방 내려간 수작 페라리는 1957년이 배경이고 이 영화는 그로부터 9년 후인 1966년 르망에서 페라리를 잡기 위한 포드의 여정을 그렸습니다. 

제가 최고로 뽑는 레이스 영화인 러시 더 라이벌은 1976년이 배경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페라리가 주인공 내지는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합니다. 

세 영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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