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로!-
첫 직장에서 해외 파트로 배속되어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가장 큰 장점이자 삶에 영향을 끼쳤던 것 중 하나는 해외 출장이었다. 입사할 때부터 내심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였지만, 입사한 첫 해에 바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오후, 파트장이신 K 차장님이 할 얘기가 있다며 불러서 앞에 앉히고는
말씀하셨다.
K 차장님은 건설업의 텃밭, 전통 시장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에서 오랜 근무를 하신 분이었고, 그만큼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회사의 다른 해외 시장에 대해서도 무척 애정이 강하신 분이었다.
사무실에서나, 술자리에서나 앞으로는 회사의 해외 비중이 점차 커질 것이고, 나를 포함한 주니어들은
여기서 더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라 호언장담하시곤 했다.
가정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을 보고 자라지만, 회사에서는 여러 상사들을 보고 그 면면들을 배우며
사회인이 되어 간다. 다혈질에 때로는 무섭게 혼내는 K 차장님이셨지만, 동시에 해외를 겪을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여기에 사람을 배치하는 추진력이 뛰어난 분이시기도 하였다.
지금도 쓰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해외 출장은 2인 1조의 소위 '가방 모찌'로 몇 번 상사를 따라다니며 배우는 것이 관례였다. 다만 당시만 해도 비싼 항공권, 호텔비, 비자 요금 등의 사유로 출장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가급적 1인 출장이 장려되는 분위기여서 기회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화상 회의가 활성화된 지금은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중동 2개국의 여러 업무가 걸린 출장이어서, 2인 출장 계획이 승인이 났고, 여기에 맞춰 해외 출장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갔다. 여권을 제출해서 비자를 받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하고...
해외 여행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 단위의 노는 계획이 일로 대신 채워지고, 이 또한 보고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지 지사나 현장이 있는 국가인 경우에는, 이 계획에 맞춘 차량과 기사 지원 요청까지 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어릴 때 동남아, 대학생때 중국, 일본 정도만 여행으로 겪어본 나에게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부터가 두려움과 설렘의 시작이었다. 아직은 사회 초년생이어서 월급 중 생활비와 식비를 세세하게 따지고 관리할 때여서, 비행기에서 밥을 2번이나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기도 했으나,
실제 비행기를 타고 난 다음에는 '아 이래서 이코노미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겼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출장에 대한 모든 예약과 계획이 세워진 다음부터는 가서 해야 할 일, 만나야 될 사람들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직원 한 명이 10시간 이상의 비행이 필요한 국가로 출장을 다녀오려면, 항공권, 호텔, 출장 수당까지 대략 500만원~1,000만원 내외의 비용이 든다. 이에 따라 출장 계획서, 출장 보고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고, 당시 재직하던 회사의 문화로는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는 날 출장 보고(최소한 초안)가 완성이 되어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보다 한 템포 빠르게 머리 속에 해야 할 일, 결과가 정리되어야 한다고 K 차장님은 여러 차례 강조하셨고, 첫 출장은 '아 그렇구나'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후에는 단독으로 쉬운 출장도 몇 번 겪으면서 점차 어려운, 장기간의 출장도 다닐 기회가 있었다. 이 때쯤에는 흡사 말년 병장이 휴가를 나갔다 복귀하듯, 일요일 저녁에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여 목~금쯤 한국에 돌아오는 출장 스케쥴이 직장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였다.
사람에 따라서 집을 떠나는 출장 자체를 싫어하거나 육아 등의 부담때문에 피하는 직원들도 분명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비행기를 타서 못 만나본 사람들과 안 해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고, 이게 쌓여갈수록 계단식으로 시야가 트인 부분이 분명 있었던 듯 하다.
국가별로 출장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시리즈로 다룰까 합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