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직장인의 미국 취업기 -3-
공항을 나오자 따뜻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침에 보스턴 집에서 나올 때만 하더라도 추웠는데 여기 텍사스는 아직은 더운 모양이다.
제주도나 LA 공항에서 내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스틴에는 부동산투자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왔다.
한 달 전, 조별과제로 분주한 과방에서 친구 한 명이 잠깐 시간이 되냐고 물으면서 나를 다른 옆방으로 불렀다.
그 친구는 다음 달에 오스틴에서 부동산투자대회가 열리는데 혹시 관심 있냐고 물어봤다.
대회의 특성상 건축, 개발, 재무 등의 성격이 섞여 있어 각각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섭외했는데
숫자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제안했던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좋은 기회일 것 같았고,
제안해 줘서 고마웠다.
그렇지만 바로 덥석 물기에는 나도 자존심이 있어 궁금하지도 않은 몇 가지 질문을 했고,
그제야 같이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해 6명이 MIT를 대표해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대회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목요일 오후 7시에 문제가 출제된다.
6개의 자산을 보유한 가상 부동산 포트폴리오와
가상 투자 기회 3건이 주어진다.
현재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6개 자산에 대해서는 보유할지 매각할지 결정하고 (Hold-sell Analysis)
투자 기회에 대해서는 투자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Investment Decision)
매각 시점, 투자 시점 등도 결정해야 하며,
결정에 따라 3년 치 현금흐름을 피피티로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오스틴에 가서는 그 피피티를 토대로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피피티는 제출 이후에 수정이 안 되며, 기한은 일요일 오후 7시까지였다.
예선전이 있고, 본선에 진출한 팀들 중에서 금상, 은상, 동상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부동상 모의 투자대회인 셈이다.
어느 팀플이 그렇듯,
우리도 72시간 동안 많은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일요일 기한까지 제출은 했고,
나는 먼저 오스틴을 구경하고 싶어 혼자 조금 일찍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에 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Honorable Mention'이라고 하는,
우리말로 하면 장려상 비슷한걸 수상했다.
장려상은 결승전에 진출하지 않고 끝나는데, 똑같은 내용으로 또 한 번 발표하지 않아도 되어서 내심 좋았다.
우리 팀 에이스 역할을 했던 친구가 바로 옆에서 너무 아쉬워해서 티는 내지 않고 조용히 좋아했다.
이 대회는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확신의 계기가 되었다.
부동산은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전통자산과 달리 ‘대체투자’로 분류된다.
작은 시장은 결코 아니지만 기업금융에 비해서는 비주류인 것 같다.
전통자산도 아닌 부동산 시장에서,
이렇게 큰 대회가 열리는 것부터 해서,
이 대회에 오겠다고 미국 전역의 20개 이상의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스틴으로 와서
경쟁하고 교류하는 것이 멋있고 부러웠다.
미국에서 왜 일하고 싶어?
가끔 사람들이 물어봤다.
이해를 못 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대답이 간단하지 않다.
유색인종으로 유리천장도 분명 존재할 것이며 (아시안들의 유리천장은 Bamboo Ceiling이라고 한다.)
친구나 가족들도 없어서 외로울 수 있다.
금전적으로는 페이가 높을 수 있으나 그만큼 물가도 높고,
나처럼 미국에서의 경력이 없는 경우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 그만큼의 디스카운트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를 하는 입장에서도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는 여기서 짧게라도 일해보고 싶다는 확신의 계기가 되었다.
미국병에 걸려서 남의 나라 찬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확연한 시장 규모와 인프라의 차이가 느껴졌고,
여기서 일을 하게 된다면 이러한 기회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닌가 싶긴 하지만,
한국 사교육 시장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을 넘어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
공부를 제외하고는 성장할 수 있는 시장도, 활동할 수 있는 시장도 제한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자유시간이다.
미국은 전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지만 텍사스는 처음이라 팀 친구들과 오스틴 동네를 구경했다.
오스틴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의 텍사스 안에서는 그나마 진보적인 도시이며,
코로나 이후 인구 유출이 있었던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의 풍선효과의 영향인지
인구가 증가하고,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갔던 6th Street 은 바와 음식점들이 붐비는 ‘핫 플레이스’였다.
친구들이랑 6th Street을 구경하고 있는 도중 이메일이 하나 왔다.
얼마 전 학교 채용 게시판을 통해 지원한 회사였다.
지원해 줘서 고맙고 Screening Call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텍사스에서의 마지막 밤이고, 대회가 끝난 홀가분함을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빨리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로 들어가 이메일에 답장을 쓰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