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 앞에서 울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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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나는 생일 초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을 눌러 담았다.
작은 불꽃이 켜질 때마다,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살아낸 모든 계절을 떠올렸다.
첫 아이의 첫 생일.
초대장은 한 달 전, 먼 곳으로 미리 발송되었지만
그 사람도, 그 가족도 오지 않았다.
기다림조차 받지 못한 자리에, 침묵이 앉아 있었다.
잔치는 친정 식구들과 가까운 친척들로 가득 찼다.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당당히 입장했다.
비록 혼자였지만,
그 누구보다 떳떳했다.
“저는 부모로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의 생일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어릴 적부터 나를 알던 친척들이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너는 그런 애 아니야.
너는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못 해서 혼나긴 했어도,
남을 속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정직한 아이였어.”
그 말에, 오래도록 꾹 눌러 참고 있던 울음이
가슴 한가운데서 서서히, 천천히 피어올랐다.
한 사람의 말이, 무너져 있던 나를 다시 일으켰다.
그날, 아기는 잔칫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두리번거렸다.
그 고개짓 하나하나가,
혹시 아빠를 찾는 건 아닐까 싶어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무너졌다.
그렇게, 아빠 없는 파티는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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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진짜 생일 당일.
그 사람은 집 앞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기를 만나 생일을 축하하겠다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만남엔 다른 목적이 깃들어 있다는 걸.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자리하자마자 그는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변호사에게 제출할 ‘증거 자료’를 만들기 위한 자리라는 걸.
그래서 나도 몰래 녹음을 시작했다.
이제는 나와 아기의 인생을
그 사람 손으로 다시는 조작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별거 전날,
자신의 부모가 욕한 건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는 말했다.
“그건 네 망상 아니야?”
“우리 부모님은 너를 괴롭힌 적 없어.”
“넌 지금 착각하는 거야.”
그의 말은 준비된 대사 같았다.
변호사의 메모를 외워온 사람처럼,
하나도 감정이 없었다.
그 짧은 6분 동안,
그는 아이에게 한 마디 따뜻한 말도 없이
자신과 부모의 잘못이 없다고만 반복했다.
그리고 아기는,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낯선 아저씨가
엄마에게 소리 지른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기는 격렬하게 울었고,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 울음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말을 배우기 전의 절규였다.
나와 아기의 인생이 또다시
그 사람의 ‘증거 수집’에 쓰이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더러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뻔뻔하게 웃었다.
이 모든 것을, 부모로서의 의무라고 말하듯.
처음엔
“아빠를 못 알아봐서 무서운 건가?” 생각했지만,
가끔은 문득,
그 울음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왜 이제야 나를 보러 왔어요?
왜, 나는 항상 기다리기만 해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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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끝으로
우리는 법정으로 향했다.
이혼 소송이 시작됐다.
그 사람은 녹음으로 무언가를 증명하려 했고,
나는 내 상처로 또 한 번 칼에 베였다.
진짜와 가짜, 사랑과 조작이 뒤섞인 채
법원의 시계는 돌아갔고,
나는 마음을 다해,
아기의 삶에서 독을 걸러내는 일을 시작했다.
그 사람의 반박서엔
나는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적혀 있었다.
‘우울증 약물중독자로 양육이 불가하며,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그 약은,
결혼 전부터 그 사람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춰졌던 그것이,
이제는 내게 ‘모성의 자격이 없다’는 낙인을 찍고 있었다.
그가 숨긴 건 약봉지가 아니라, 그의 과거였다.
인생이, 이렇게도 비열하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분노했다.
그가 책임지지 못한 삶의 결과를
우리 아기의 이름에까지 전가했다는 것에.
사건번호 옆에 ‘사건본인 ’이라 적힌 우리 아이의 이름을 보며,
나는 숨이 막혔다.
태어나자마자
어른들의 죄값을 함께 짊어지게 된 아이.
이 아이의 삶을 끝내 도구 삼고야 마는 이 현실에,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지워지고
우리는 이제
‘원고’와 ‘피고’로만 불렸다.
사랑의 폐허에서, 법정의 문턱까지.
나는 누구보다 처절하게
이 관계의 시체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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