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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2

위기

by Sarah Hwang

부모님의 불화에서 내가 가장 괴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의 잘못을 내가 직접 따지고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너네 아빠는 첫째인 너를 제일 무서워하니 네가 아빠의 인연을 끊고 잘못을 따지면

분명히 후회하고 굽히고 들어올 것”이라는 게 엄마의 요구였다.

아빠는 비록 배우자와의 관계를 똑똑하게 유지시키는 능력은 부족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우리 셋 남매에 있어서는, 다정하고 따듯한 아빠였다.

나는 엄마가 그럴 때마다 엄마의 아바타가 된 것처럼,

아빠에게 모질게 말하는 내가, 그 상황이,

자식에게 상처받는 아빠를 보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이혼을 권했다.

부모님이 싸우는 그 상황이, 그 분위기가, 그 짜증과 고함이,

죽도록 견디기 힘들었고, 어른들의 싸움에 내 의견을 일일이 말해서

깊이 관여하는 그 상황이 그렇게나 싫었다.


한 번만 권했던 건 아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교 가서도,

두 분이 싸울 때마다 이혼을 권했고, 엄마는 몇 번이고 정말

이혼을 할 것처럼 아빠에게 퍼부었었다.


“애들도 너랑 살지 마라고 한다. 네가 인간이냐?
생활비를 한번 제대로 갖다 줘보기를 해,
내 마음을 네가 편안하게 해 주기를 해, 말주변머리도 더럽게 없고,
내가 니 같은 인간이랑 어디를 다니고 무슨 말을 하겠노?”


아빠는 엄마의 무시와 괄시로 몹시 괴로워했고 가만히 듣고 있을 아빠도 아니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모를 싸움은 어떻게 끝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싸우고 또 지나가고의 반복이었다.




위기


두 분의 싸움은 내가 결혼한 후 몇 년이 지나, 아빠의 외도로 극에 달했다.

외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배우자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행동이다.

그런데 내가 본 아빠의 외도는 알 수 없는 복수심이 있어 보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어, 동생과 잠깐 얘기한 적이 있었다.

동생도 같은 관점으로 보았다.

아빠의 외도는 분명 잘못되고 용납이 안 되는 사실이지만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는 심증을..

딸로서, 같은 여자로서 엄마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아빠의 외도는 두 분의 몇 년 치의 싸움이었다.

남편과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나는,

한 번은 엄마가 너무 힘들어해서 일주일 휴가를 내고

친정인 대구에 간 적이 있었다.


전화 너머로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무도 없어서 곧 쓰러질 것 같았고,

나는 7살인 아이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한국에 다녀온 것이다.

엄마가 힘들 때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첫째 딸이

그렇게 먼 길을 왔으니,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미국에서 온 사실을,

그것도 아빠 바람 때문에 여기 먼 길을 왔다는 것을,

엄마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아빠가 바람나서 첫째 딸이 미국서 나왔다고..

주위에 말하고 또 말하고 다니셨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리고 그때의 아빠를 기억한다.


아빠는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셨고,

그걸 보고 엄마가 많이 통쾌해하셨다.

엄마와는 죽을 듯이 싸우는 아빠지만,

나한테 만큼은 미안해하고 면목없어하는 아빠에게 차마 외도를 따져 물을 수 없었다.

아빠는 진정으로 내게 미안해하셨고,

이일로 가정과 직장이 있는 내가 미국서 한국까지 온 사실에,

그 모든 상황을 일일이 내게 전달한 엄마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렇게 이혼할 거라고, 이혼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하던 엄마가

아빠의 외도로 드디어 이혼을 할 줄 알았다.

이번에는 꼭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30년간의 두 분의 싸움처럼, 이번에도 엄마는 이혼을 못하고.. 아니 안 하고,

그렇게 폭풍 같던 싸움을 하고 또 지났다.


엄마에 따르면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아빠가 이혼을 안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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