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물림 4

Karma (카르마)

by Sarah Hwang

결혼 후 지금까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민 온 지 첫 몇 년은 그저 보고 싶어서 생각하고,

그 후엔 엄마 말마따나, 나 혼자 미국 와버려서

엄마 힘들게 하고 내 식구만 잘 사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생각났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생각나고,

내 아이가 이쁘면 엄마 생각이 났다.

남편이 다정하면 엄마 생각이 나고,

커피를 마시면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커피를 제일 좋아하신다.


회사에서 힘들면 엄마 생각나고, 일이 잘되어도 엄마 생각이 난다.

이런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해서.


엄마 생각이 나,

문득 전화를 하면 그때도 화와 짜증은 여전히 있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 분위기, 말투에서는

너무 힘들고 왜 이제야 전화를 했고

엄마 생각을 조금도 안 하고 너 밖에 모르는 나쁜 년이라고

그 모든 게 말하고 있다.


말과는 달리 괜찮치 않은 엄마를 알기에

나는 더 길게 말을 하고 싶지 않는다.


엄마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키워드,

“아빠 때문에, 남동생 때문에, 나빠지는 부동산 경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엄마는

기분 좋게, 가볍게, 밝게 전화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투명스럽고 짜증 섞인 말투와 단답형의 대답은

안부를 묻고 살갑게 대하는 나를 바닥까지 소모시키고

그렇게 흐지부지 전화를 끊게 된다.


그렇게 끊으면 엄마 마음도 좋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좋은 옷과 음식으로 본인을 그나마 돌보신다는 것이다.


나와의 전화에서만 그렇게 대하고

다른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나 친절하다.


그들을 엄마 정신의 배터리로 쓰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전화를 한번 더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등,

엄마에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해 신경 쓰려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은 쓰이지만 전화해서 묻고 기분 풀여 주려 노력하지 않는다.




-Karma, 카르마 -


40년 넘게 겪은 엄마의 화와 짜증은

앞으로의 나의 삶에 있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큰 숙제이자

내 대에서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는

결혼한 지 10년 즈음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즈음 분명히 깨달은 것은,

내 대에서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시험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생 통째의 방향을 가를수 있는 사건과 기회로

나를 반드시 시험하게 되어 있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카르마를 이어가는, 또는 끊어내야 하는 숙제인지 모른 체,

내가 봐 왔던 대로, 내가 익숙한 대로,

내가 아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엄마와 다를 바 없는 삶으로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몇십 년 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원래 인생이란 힘들고 고통스러운 거라고..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엄마를 비난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이, 너도, 그 딸도, 다 똑같다고…


-계속-



Aggimom 블로그 다른글 보기

금손남편의 작품세계

20년차 부부 남편이야기

keyword
이전 06화대물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