認(인)과 선택
내게 다행인 것은 그렇게 내 앞을 막고 나를 시험하는 순간,
그 사건이 펼쳐지는 찰나에서 그것이 인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 아… 여기서 짜증이 나는구나"
" 아… 이 부분에서 화가 올라오는구나"
" 아… 우리 엄마도 이런 생각이겠구나..”
화와 짜증이 올라오고,
곁에 있는 남편과 아이에게 비난과 원망을 퍼부을 그 찰나..
그때가 나는 정확히 인지가 되었다.
그래서 그 화와 짜증을 내 곁에 있는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퍼붓고 원망하고 동네방네 얘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수년동안 수입이 없어 내가 가장 노릇을 할 때도,
출근 전 새벽에 일어나
자격증 공부책을 펼칠 때의 차가운 서글픔 속에서도,
생활비가 모자라 카드빚이 넘쳐 숨이 막힐 것 같았을 때도..
남편을, 내 처지를, 원망하면서 주위의 기운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게 맞아 보였다.
그렇게 참아가며 견뎌가며 보내온 시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답이 안 보였던
정지된 내 시간들이기도 했다.
과거의 아픔과 내 삶의 숙제와 마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 그 속에서 나에게 부여된 역할,
그리고 그 역할로 인해 생긴 감정들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유령이자, 그림자이고,
인정해야 하는 나의 또 다른 일부이다.
하지만 그 유령을 숨기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그것이 내 삶에서 다른 형태로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택한 방식은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한 것이었다.
엄마의 감정이 전이되거나,
나의 화가 남편에게 조준이 되는 그 순간,
그것을 단호히 의식하며 내 선을 지켰다.
엄마와의 전화를 줄이고,
나는 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택했다.
가족은 서로를 보살피고 지지하는 존재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내 삶에 증명해보려 했다.
가족의 중심인 엄마로서
나의 기분이, 나의 말투가, 나의 태도가 바뀌니까,
그들 내면의 날씨가 바뀌었다.
나의 기분과 말투와 태도는 실제로는 비바람이 치는 날씨에서도,
내 식구들에게는 따듯하고 포용되는 날씨로 바꿔주는
빛이 된 것이었다.
사랑과 안정은 큰돈과 같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날씨 같은 분위기와 느낌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와 짜증을 기본값으로 두지 않는 것,
실패해도 원망하지 않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감정의 폭풍 속에서도 비난하지 않는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는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다.
참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좋은 의사 전달 방식이 세상에는 많다.
이것이 어릴 때 습득이 되면 좋겠지만
나의 경우 그렇게 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도적으로 배워야 했다.
관계에 지침서가 되는 전문가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시간 날 때마다 읽었고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다.
부모님께 대물림받은 화와 짜증과 원망이
내 대에 다시 물림 되기 전에,
나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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