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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불러낸 첫사랑의 기억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13

by 시절청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가사와 멜로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노래들은 늘 그 시절의 추억을 조용히 불러올 뿐만 아니라, 잊고 있던 감정까지 하나씩 흔들어 놓는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후회, 그리고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마음까지.

노래는 나에게 추억을 되살리는 작은 타임머신 같은 존재다.


지난주 끝이 난 SBS의 경연프로그램 "우리들의 발라드"를 보다가 또 한 번 멈춰 선 계기가 있었다.

한 참가자의 노래가 흘러나오자마자 오래전 마음 한구석에 묻혀 있던 기억이 다시 깨어났기 때문이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기다리지 말라고 하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어느 날 그대 편질 받는다면 며칠 동안 나는 잠도 못 자겠지, 이런 생각만으로 눈물 떨구네..



군 생활을 막 시작하던 스무 살 초반, 이 노래의 가사는 유난히 깊게 박혔다.

그때의 나는 첫사랑 누나와의 결별 아닌 결별을 겪고 신병교육대에 들어간 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서 사귀었다고 믿었던’ 연애였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누나가 정말 전부였다.


극도로 소심했던 내가 200~300명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이미 밝힌 적이 있다.



정신없이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밤이 되면 누나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편지를 쓰곤 했다.

그 편지들은 결국 단 한 번의 답장도 받지 못했지만...


신병교육을 마치고 휴양소에서 1박 2일의 짧은 휴식을 보내던 날이었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가 1위를 차지했고, 그의 수상소감 중 “저 군대 갑니다" 하며 울먹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젊은 객기로 떠들어댔다.

“야, 이제 우리 쫄따구네.”

“우리 부대로 오면 좋겠다.”

갓 신병교육을 끝냈다는 해방감에, 앞날의 고생은 생각도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후 자대 체험과 후반기 교육을 거치며 동기들의 요청으로 여러 번 부르게 된 노래가 바로 "입영열차 안에서"였다.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고, 어딘가 울컥한 감정을 노래로 달래곤 했다.


후반기 교육 중 첫 외박을 나간 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첫사랑 누나가 일하던 서점이었다.

몸무게가 20kg 이상 빠지고 햇빛에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어서 다른 누나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첫사랑 누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어쩌면 짧았지만 진짜로 가슴 뛰었던 사랑.

돌아보면 웃음도 나고, 여전히 조금은 아린 감정도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김민우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그 누나의 뒷모습과, 그때의 우습고 서툰 나 자신을 함께 떠올리면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기억은 각자의 속도로 남아 있다.

특히 노래에 새겨진 기억들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때의 나, 그때의 사람들, 그때의 감정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가끔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어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프고 서툴렀던 마음까지 포함해, 그것 역시 나를 만든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그렇게, 다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다시 불러오고, 이미 흘러간 계절을 다시 걷게 만드는 것 같다.


노래는 잊었다고 믿었던 마음을 다시 흔들고, 어떤 시간을 살아왔는지 조용히 말해준다.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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