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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있어도 없는 듯

by 김지민

2024년 10월 25일 >>>


초/중/고교 12년간 나는 딱 이틀 결석했다. 초등 3학년, 책을 보면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비후성비염이라고 해서, 그 수술을 받고 집에서 이틀 쉬었다. 요즘이야 “개근”이란 게 진부한 단어지만 그 시절에는 “12년 개근”이 성실의 표상이었는데, “코” 때문에 나는 그걸 놓쳤다. 중학교 때에는 공을 차다가 누가 내 코에 헤딩을 하는 바람에 코가 비뚤어졌다. 대학교 가서는 방학 때 그 코뼈 교정하느라 또 큰 수술을 받았다. 비뚤어진 것은 바로잡았으나, 위로 약간 굽어진 것은 못 잡았다.


그리고 35년이 흘러 2013년, 그 “코 징크스”가 긴 잠에서 깼다. 광주(廣州) “e-편한”에 세 들어 살 때다. 시내버스 정류장까지가 너무 멀어서 고생하던 중에 마침 “마을버스”가 생겨, 어느 날 우리는 그 차 시간표에 맞춰서 승차했다. “e-편한”이 종점이라 이미 탑승한 열 명쯤이 5분 남은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차가 곧 떠나겠지 하는데 갑자기 한 명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더니, 차 안에 온통 소동이 벌어졌다. “누가 은행을 밟아 터뜨렸다! 누구냐? 어디냐? 이 차는 청소도 안 하느냐?” 운운하며 사람들이 전부 짜증을 부리고, 발을 들어 바닥을 살피고, 코를 막고, 기사를 찾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다 좋은데, 문제는 내 “코”만 멍청하게 “아무 불만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하여 내 평생 스승 되시는 아내에게 여쭤봤다.


“여보, 은행을 밟았다는 게 무슨 말이고?”

“아, 은행은 안 굽고 그냥 생 걸 터뜨리면 원래 냄새가 지독해요. 어휴, 정말 악취가 장난 아니네!”
“아니, 도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말이지?”

“하하, 당신 코에 문제가 있나 보네. 이 냄새가 안 나요?”


그랬다. 나는 아무 냄새도 안 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난리가 났는데 혼자 두리번거리고 있는 “왕따” 상황이 기가 막혔다. 사실 옛날 학교 때의 그런 수난들에 이어, 나는 평생 툭 하면 코가 막혀 고생했는데, 그래도 냄새를 못 맡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과연 언제부터 그렇게 후각이 갔는지는 큰 미스터리였고, 그 뒤로 백마산을 가면 꽃 냄새, 풀 냄새, 솔향기에 감탄하는 아내가 점점 부러워졌다. 나는 아무리 코를 바짝 갖다 붙여도, 아무리 가슴 활짝 들숨을 크게 쉬어도, 항상 향기=제로(zero)였다. 참다 못한 나는 동네 병원을 찾았다.


증세를 얘기하자 작은 방에 가서 앉아 있으라더니, 좀 있다가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왔다. 조그만 병 여러 개가 테이블 위에 탁탁 놓였고, 20cm쯤 되는 가는 나무 막대기들이 눈앞에 왔다갔다했다. 무슨 준비를 하나 보다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다 끝났다”고 했다. “아니, 시작한 게 없는데 뭐가 끝났다는 겁니까?” 그랬더니 그 간호사는, 방금 여덟 가지 냄새를 막대기 끝에 묻혀서 다 테스트했는데, 그 중 하나도 못 맞혔다고 했다. 부지중에 “완전 불합격” 판정이 난 것이었다. “아니, 시작한단 말도 안 해 주고 그러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나는 뭘 하는지도 몰랐다. 다시 해 보자. 그리고 이번엔 천천히 해 보자.” 하고 우겨서 처음부터 다시 해 보았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 들숨 날숨을 길게 반복해 봐도 결과는 매한가지. 나는 “냄새를 못 맡는” 후각장애인이었다.


치료방법이 뭐냐고 묻자, 뚜렷한 방법은 없고 자꾸 이 냄새 저 냄새 열심히 맡아서 코에게 “냄새 훈련”을 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마치 군견/경찰견처럼 온 집, 온 동네, 온 산을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망가진 후각은 점점 망각 속으로 사라졌고, 몇 년이 흘렀다. 우연히 서울 강남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 눈앞의 이비인후과에 들어갔다. 증세를 얘기한즉, 거기는 “좋은 동네”라 그런지 “뚜렷한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받아 나온 처방이 “3주치 스테로이드”. 약국을 찾아 처방전을 내민즉, 자기들은 그처럼 많은 스테로이드는 비치하지 않으니 한 이틀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그거 당장 찢어서 버리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 “웬만한 의사보다 낫다”는 아내의 새 처방, “스테로이드! No!”. 그날 그 길로 내 코는 “냄새 영구 포기”를 선고받았다.


그처럼 완전 바보가 돼 버린 “코”가 최근에 또 한 번 수난에 엮였다. 지난 8월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높다란 그물이 쳐져 있는 양평 우리 동네 골프연습장을 갔다. 누가 하도 골프를 시작하라 해서 아내는 흔쾌히, 나는 마지못해, 두 달째 거기를 다니고 있었다. 한 번 가면 80분 티켓 하나로 둘이서 번갈아가며 치는데, 끝나고 나면 나는 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골프는 몸에 힘을 빼고, 채의 끝이 돌아가는 힘에 자연스럽게 공이 맞아 나가게 해야 한다는데, 나는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얼마나 소질이 없고 힘을 많이 주는지는, 맨 첫날 아내와 코치 선생의 대화가 잘 말해 준다.


“윤프로님, 왜 저만 가르치고 우리 남편은 안 가르쳐 주세요?”

“하하, 땀 쫙 빼면서 운동 한번 실컷 하시라고요.”


그처럼 나는 처음부터 줄곧 “힘 빼는” 것이 안 됐고, 그날도 온몸이며 모자며 티셔츠며 속옷이며 바지 윗부분이 전부 땀에 절인 채 차에 탔다. 시동을 켜고 막 출발하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아휴, 아주 썩는 냄새가 나네. 샤워 좀 자주 하세요. 티셔츠랑 속옷도 바로 바로 갈아 입고!”


여름 날씨에다 원래 땀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데도 냄새가 난다니 매우 의외였다. 게다가 이제 막 흘린 땀이 그렇게 금방 썩는 냄새로 발전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2014년 진새골 온누리교회 부부학교 이후로 이미 “인격” 자체를 포기, 일체의 반대/거절/항변/대꾸/저항 없이 “100% 순종”만 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코”가 안 되니, 설사 항변을 하라 해도 “이게 어디 내 땀냄새냐?” 하는 반론 자체가 성립 불가능했다. 나는 알았다, 미안하다, 하고 조용히 집에 가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사나흘 뒤,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습 끝내고 막 차를 타고 오는데 또 샤워해라, 옷 갈아입어라, 하며 아내가 쓴소리를 했다. 사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렇게 가감 없이 직선적으로 말도 못했겠거니와, 만일 했다면 즉각 내 비호 같은 공격을 필두로 그 좁은 경차 안에 처절한 육박전이 불을 뿜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안 먹힘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30년간 수백 차례의 접전에도 결국 제압이 안 됐다면 가능성은 딱 두 가지.


1. 방법이 잘못됐다.

2. 상대가 너무 강하다.


그것이 1이었든 2였든, 또는 1과 2의 컴비네이션이었든, 나는 이미 2014년에 “무조건 항복!” 하며 아내 앞에 무릎을 꿇은 패자(敗者). 또다시 그날도 즉시 샤워를 하고 새 옷을 입었다.


그리고 이삼일 뒤, 차를 타고 나가던 아내가 뜬금없이 제일 가까운 자동차 정비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진새골에서 양평으로 이사는 갔어도 미국 왔다갔다하느라 주변 파악이 잘 안 됐던 터라 모르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땀을 안 흘렸는데도 냄새가 나네. 그렇다면 차 에어컨의 필터가 오래돼서 나는 냄새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나는 알았다, 좀 있다 오후에 내가 정비소 찾아가서 교체하겠다 했고, 그 뒤로 다시는 똑같은 일이 없었다. 한 달쯤 뒤에 내가 장난 삼아 물었다. “여보, 그때 두 번이나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는데 미안한 거 없나?” 아내가 펄펄 뛰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땀을 거의 안 흘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코가 예민한 사람이다. 차 안에 딱 두 사람밖에 더 있었느냐, 땀 많이 흘리는 사람과 땀 안 흘리는 사람? 그럼, 냄새는 나는데, 그 중에 누가 범인이냐? 당신 아니냐? 나는 하나도 잘못한 거 없다!”


“미안하다”는 단어가 사전에 없는 아내. 따라서 간혹 어쩌다 미안한 일이 생겨도 그걸 수습할 “단어”가 부재하여 끝까지 우기는 아내. 그것이 아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요, 건강하다는 징표요, 또 그녀 최대의 매력이다. 나는 청년 시절,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 불편한 듯”한 요조숙녀를 아내로 맞아 길이길이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었다. 내년이 결혼 40주년, 그새 나는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 불편한 듯한 남편이 됐다. 구김살 한 줄 없는 행복은 아내가 다 누리고 있다. 하하, 인생이란 게 참 뜻대로 잘 안 된다. 아주 “비슷하게는” 됐는데, 주객이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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