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2. 주린 배로 십이(二)조를

by 김지민

2024년 12월 18일 >>>


2017년쯤의 일로 기억된다. 광주(廣州) 진새골 “사랑의 집”에 싸게 세 들어 살 때다. 일요일마다 교회 헌금봉투를 놓고 딸막거리는 아내를 보다가 하루는 내가 말했다.

“여보, 내 월급이 얼마 안 되니 10%도 얼마 안 되잖아. 그러니까 매달 한꺼번에 십일조(十一租) 딱 떼서 내고 그냥 이자뿌라(잊어버려라). 여기 이렇게 좋은 집에 사는 것만 해도 어디고?”

가계의 모든 입출을 비롯, 전권을 손에 쥔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반격에 나섰다.

“전기세, LP가스, 핸드폰, 인터넷,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자동차할부금, 경조사비...... 차 떼고 포 떼고 뭐 떼고 겨우 남는 몇 푼이 우리 두 사람 식비예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십일조 내면, 우리는 굶어 죽어요!”

내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굶어 죽으면 그거 순교(殉敎) 아이가?”

아내가 펄쩍뛰었다.

“순교는 당신이나 하세요! 나는 순교하기 싫어요! 오래 살고 싶어요!”


내가 사람이 싱거워 말의 절반이 농담인데, 그걸 잘 알면서도 아내는 어쩜 그렇게 늘 진짜처럼 발끈하는지 참 신기하다. 그 주제가 “돈”일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그게 재밌어서 나는 더더욱 자꾸 농담을 하고, 그래서 영영 농담을 못 끊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순교하든 장수하든, 가난한 중에 하는 십일조는 “현명한” 투자다. 신약성경에도 보면, 자기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를 예수께서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구약성경도, 극심한 가뭄과 기근 중에 한 끼 양식밖에 안 남은 어느 과부가 “나보다 남을 먼저” 먹인 선행(善行)을 소개하고 있다. 소량의 곡식 가루와 기름, 그걸로 아들과 마지막 끼니를 해 먹고 나면 그 뒤엔 꼼짝없이 굶어 죽을 처지.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선지자 엘리야가 자기 떡부터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 없이 응한다. 그리곤 해갈(解渴) 때까지 자루와 병에 곡식 가루와 기름이 결코 마르지 않는 "기적"을 상급으로 받는다. 우리집도 아내의 생각이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끼니를 다소 거르면서라도 십이(二)조를 하고 지금쯤 대궐 같은 집에 살 텐데, 하하하......


성경이 매력적인 것은 많은 경우 그 가르침이 이처럼 역설적(逆說的), 비수학적(非數學的)이기 때문이다. 오른뺨 맞고 왼뺨도 맞고, 겉옷 뺏기고 속옷도 주고, 넓은 길 두고 좁은 길로 가고, 내 몸도 버거운데 이웃까지 내 몸처럼 사랑하고, 나는 주리고 남은 먹이고...... 이렇게 사는 건 일일이 손해요 “필망(必亡)”의 바보짓 같은데, 결과는 반대. 결국 그런 “바보들” 앞에 하늘 문이 열린다. 요는, “본능을 거스름”에 복이 있다는 것인데, 내 짧은 경험도 100% 이에 합치하매 나는 더욱 성경을 신뢰한다. “저점매수-고점매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혹(惑)하는 소위 “성공투자” 비법! 하지만 그렇게 해서 크게 성공한 이가 있나 보라. 없다. 그 반대, 비싸서 다들 엄두도 못 낼 때 사서, 잃으면 금방 던지고 벌면 버티는 것. 타고난 인간 성정(性情)으론 지극히 불편한 이 일. 내가 “고점매수-저점매도”라 칭한 바로 이 방법이 진짜다. 나는 처자식 미국 공부도 다 그렇게 해서 시켰고, 누구에게라도 그 방법을 권한다. 신앙도 투자도 똑같다. 세상 반대로 하면 된다. 혹 투자에 미련이 있으시다면 "최고로 인간적인 분"을 찾으시라. 그리곤 맛있는 거 사 드리며 늘 따라다니다가, 그분이 팔 때 사고, 살 때 팔아 보시라. “인간 본성 거꾸로” 행함이 얼마나 득(得)인지, 점점 불룩해지는 당신 지갑이 증명해 줄 것이다.


우리 손자 주안이는 --- 미국 이름 케이시(Casey) --- 하도 늘 웃어서 별명이 “스마일리 보이(smiley boy)”. 그런데 생후 5~6개월부터 몇 달간 자꾸 우유를 토하자 우리 딸이 하루는 걱정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

“엄마, 저렇게 종일 토하면 몸이 괴로울 텐데도 계속 웃는 거 보면, 우리 주안이는 어디 약간 모자라는 거 아이가?”

하하, 큰 고난 중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 우리 주안이. 과연 진짜로 좀 모자라는 아이일까? 아니면 이름 그대로 “주(主) 안”에서 일찍부터 본능을 거슬러 사는 “선택 받은 바보”일까? 여기 나만 아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지난 9월 초는 주안이가 생후 17개월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10주 기한으로 딸/사위를 도와 주러 시카고에 가 있었던 우리 부부는 각자 “머슴살이”에 바빴다. 아내는 이삿짐 정리, 집수리 지휘, 실내장식, 집안 청소, 저녁상 차리기로 종일 눈코 뜰 새 없었다. 나는 나대로 운전, 심부름, 손녀손자 등하교/놀아 주기, 아내 보조 및 회사일까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그날도 나는 저녁을 먹고 주안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갔다. 주안이는 앞을 바라보며 유모차를 탔고, 나는 그걸 밀며 함께 동네의 마트를 구경했다.


주안이가 앨러지(allergy)가 있어 간식은 거의 안 사 주는데, 마침 씨를 다 빼고 정육면체로 먹기 좋게 썰어 놓은 수박이 눈에 띄었다. 윗지름 14cm, 밑지름 12cm, 높이 18cm 정도 제법 큰 투명 용기에 꽉 찬 수박. 어른 셋도 나눠 먹을 꽤 많은 양이었지만, 괜찮기만 하다면 꼭 한번 사 주고 싶었다. 딸에게 전화, OK 사인을 받은 나는 그 통 하나를 집어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는 마트를 나서자마자 뚜껑을 열고 그 통을 주안이의 허벅지 위에 올려 주었다. 이게 웬 떡인가 하며 주안이는 얼른 그 넓은 주둥이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애들이 알아듣든 말든 --- 장차 이중언어 습득에 도움이 되게 --- 모든 말은 한국말로 해 달라는 평소 딸의 부탁대로 내가

“주안이, 할아버지도 하나 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랬더니 이놈이 통을 부여잡고 잽싸게 몸을 반대편으로 홱 돌리며 외치는 소리,

“마인(Mine)!”


주안이는 그때까지 다섯 가지의 간단한 말밖에 못했었다. 엄마, 아빠, 야(yeah, 예), 아웃(out, 밖에 나가요), 업(up, 아기의자에서 꺼내 주세요). 그리고 그날 그 “마인(mine, 내 꺼야)”이 내가 들은 여섯 번째였다. 아침마다 40분을 운전해 가서 8시에 내려 주고, 오후 5시에 다시 가서 데려오는 주안이의 유아원. 떨어뜨려 줄 때마다 너무 애처로워 가슴이 울컥하는데, 거기 한 달 다니면서 배운 첫 말이 놀랍게도 “Mine!”이었던 것이다. 결국 인생이 다 그렇지만, 그 데이케어(day care)도 나름 생존경쟁의 장(場). 그 안에서 자신의 복지와 욕망충족을 위해 열댓 명 다른 애들과 경쟁할 때, 참이든 거짓이든 일단 “Mine!” 해 놓고 보는 것이 가장 “영양가 있는” 전략임은 분명했다.

“야, 이 콩 만한 게! 이 세상에 니 께 어딨어?”

하며 내가 계속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얼굴이 벌개지도록

“마이이이~~~인!”

하고 뒷음을 길게 빼며 필사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혔다. 하하, “들어올 때는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절대로 맘대로 못 나간다” 하는, 외할머니(=아내)의 엄중한 “재물철학”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정녕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 일곱 번째 단어였다. 그러니까 그날 한 시간 남짓 산책 중, 나는 주안이의 여섯, 일곱 번째 단어를 한꺼번에 둘 다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단어는 뜻이 정반대였다. 수박 통을 준 뒤로 한 20분 지났을까, 보니까 그 많던 수박은 그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어쩌나 보려고 다시 내가 하나만 달라고 했더니, 배가 어지간히 부른지 씩 웃으며 한 조각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는 또 한참 앞만 보고 유모차를 모는데, 믿기 어려운 그 “일곱 번째" 단어가 내 귀를 울렸다.

“아--!”

내가 평소에 지 밥 떠먹일 때 --- 입 벌리라고 --- 하는 바로 그 소리였다. 내려다보니 아이가 수박 한 조각을 쥔 오른손을 머리 뒤쪽으로 한껏 내뻗치고 있었다. (실제론 팔이 짧아 귀까지밖에 안 왔지만, 제 딴엔 머리 훨씬 위까지 올렸다 생각했으리라.) 그리곤 한 번 더 “아--!” 하고 종용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받아먹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오른발을 내디뎌 몸을 숙이고는, 장난친다고 지 조막손까지 덥석 물었다가, 수박만 먹고 손은 쏙 빼 주었다. 그러자 재밌는지 또 한 개를 힘껏 들어올리며 “아--!” 하고 또 재촉을 했다. 하나, 또 하나...... 재미가 극에 달한 아이는 연신 “아--!”를 하며 마지막 한 개까지 다 내 입에 넣어 주었고, 결국 흥건히 고인 국물까지 내가 다 들이키자 그 수박잔치가 끝났다.


집에 가서 보니 주안이는 티셔츠, 바지, 기저귀까지 수박물로 온통 목욕을 하고 있었다. 샤워를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옷도 갈아 입히고, 우유도 한 통 물려 주고 했더니, 자장가도 필요 없이 금방 곯아 떨어졌다. “매일 저녁이 오늘만 같았으면......” 하며 신나게 꿈나라를 날아다녔으리라. 그날 저녁 우리 주안이는 딱 “일용(日用)할 양식”만 취하고 나머지는 다 이웃(=할아버지)에게 베풀었다. 엘리야에게 떡을 해 준 그 과부에는 못 미쳐도, 웬만한 우리보다는 훨씬 낫게 행했다. 마인(mine) 다음에 또 마인(mine), 또 마인(mine), 또 마인(mine)...... 평생 마인(mine)밖에 모르는 우리 어른들에게 기저귀 찬 주안이가 “아--!”를 가르쳐 주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했다. 우리 모두 본능을 좀 거슬러 살자. 배고플수록 더 나눠주자. 우리 타고난 성정(性情)으론 깎고, 덜 내고, 못 주고, 걱정하고, 아까워할 수밖에 없지만, 여하튼 그 “본능”의 벽을 넘자. 이를테면 "주린 배로 십이(二)조"를 하자. 흔히 하는 말, “피 같은 돈”. 그런 “피흘림”이 있어야만 이 세상이 변한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끄럽게 생각지 말고 아이한테 배우자.

“아--!”

우리 모두 시간 날 때마다 자꾸 "남의 입에 떠 넣는" 연습을 하자.

keyword
이전 09화16. 있어도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