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일 >>>
우리는 작년에 진새골 “사랑의 집”에서 양평으로 이사 나왔다. 교회의 배려로 8년이나 아주 싸게 전세를 산 뒤에, 딸의 도움으로 조그만 집을 사서 옮겼다. 진새골 바로 전에는 4년간 광주(廣州) “e-편한”에 --- 나는 잘 몰랐어도 --- “월세 반 전세 반” 살았는데, 아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바로 내가 결혼 잘못해서 말년에 고생하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당신 약속대로라면 지금쯤은 사모님 나오신다고 기사가 쫓아와서 차문 열어 줄 나이다.” 그런 불평에 나는 한 번도 대꾸를 못했다. 사업이 망하고 수입이 끊겨 기사는커녕 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들인 “걷기” 습관으로 백마산을 결국 천 번쯤 오르내렸다. 그 덕에 지금도 오래 걷기나 계단 오르기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
자나깨나 걸어서 운동은 많이 됐으나, 추울 때 한 번씩 “대량으로” 장보는 것이 문제였다. 양재동 코스코(CostCo)는 마을버스-좌석버스-시내버스, 이렇게 세 번 타고 두 시간 거리. 겨울이라 입은 옷도 벅찬데, 장(場)은 항상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를 봐 왔다. 땅에 끌고, 등에 메고, 손에 들고, 팔꿈치에 끼우고도 모자라면, 목에 걸고 턱밑에 끼우는 묘기를 부릴 때도 있었다. 온몸 가득 실린 그 무게는 다름아닌 죄(罪)의 무게. 무능한 가장이 “사업실패죄”로 받는 벌(罰)이었다. 그러다가 “e-편한”의 월/전세가 대폭 올라 길바닥에 나앉게 됐는데, 아내가 교회에 사정 말씀을 잘 드려 진새골 그 경치 좋은 곳에 “싼 전세”를 얻었다. 평소 나를 “영양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니, 실로 “영양가”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히 보여 주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는지 진새골로 들어가면서는 차도 할부로 샀다. 당연히 기사는 없었고, 대신에 내가 최상의 서비스로 모셨다.
진새골에서는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까지 줄곧 수요 성경공부를 했다. 우리는 매주 꼬박꼬박 참석하여 머릿수를 채워 드렸는데, 전세금도 싼 데다가 전세기간도 “원하는 때까지” 무기한이라, 마음의 빚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영양가가 없어서인지 아내가 성경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성경공부 때마다 돌아가면서 조금씩 읽거나, 주요 구절 몇 개 찾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그 전에 1회 성경필사 경력이 있어 아내보단 많이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성경책이 아내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는 30년 전, 시카고 유학 끝 무렵에 있었던 대화가 잘 말해 준다.
“다음 주에 또 갈 거 아니예요?”
“그래, 가야지.”
“그런데 그걸 왜 집에 가져가요? 그냥 거기 놔 두지.”
일요일에 교회 갔다가 시장을 보고 집에 도착, 장본 것들을 차에서 내리던 중에 나온 아내의 말이었다. 안 그래도 내릴 짐이 많은데, 읽지도 않을 성경 그냥 트렁크에 던져 두지 왜 꺼내느냐는 볼멘 소리. 아무리 우리가 “날라리 신자”라도 이건 너무 심하다 싶던 그 “충격 발언”을 아내는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했었다. 그리고는 22년 뒤 진새골, 비록 성경공부는 다녀도 아내의 그 자세는 굳건했다.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은 빠짐없이 사서 읽을지언정,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 셀러인 성경에는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던 아내가 어느 수요일 성경공부 시간, 내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뜻하지 않은 죽음, 이해할 수 없는 참사 등을 두고 교인들이 설왕설래하는데, 듣고만 있던 아내가 입을 열었다.
“크리스쳔이 살다가 죽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이 동네 살던 사람, 옆 동네로 이사시킨 것이다. 그걸 못 믿으니까, 마치 삶이 모든 것이고 죽음은 끝인 양 울고불고하는 것이다.”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대답. 그때까지 어떤 책도, 신학자도, 설교자도, 그처럼 쉽고 명쾌한 답을 내게 주지는 못했었다. 전부 모호하고, 앞뒤가 안 맞고,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30점짜리 변명들뿐이었다. 그날 나는 아내의 놀라운 천재성을 엿보았고, 혹여 이 숨은 고수(高手)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할까 그 후로 “성경필사” 운운하는 교만은 일체 삼갔다.
그렇게 8년을 진새골에 살다가, 딸이 집 살 돈을 부쳐 주어 작년 초에 양평으로 왔다. 그리고는 올 4월 어느 좋은 봄날 밤, 가슴 뭉클한 장면 하나가 펼쳐졌다. 나는 마루 소파에, 아내는 안방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얼핏 보니 무슨 두툼한 것이 아내 왼손에 한가득했다. 침대 옆의 갓 씌운 램프가 좀 어둡긴 해도, 내 눈에 분명 그건 성경책이었다. “이제 내 집도 생겼고, 싼 집을 산 덕에 부쳐 온 돈도 남았고, 전세금도 돌려받았고, 10여 년 남편 급여도 좀 모였고......” 아내가 이런 안도감 내지 감사의 염(念)으로 “마침내” 성경을 펼쳐 든 것이 틀림없었다. 더없이 여유롭고 편안한 얼굴. 거기서 손 모으고 눈만 감으면 영락없이 취침 전 기도하는 여인. 모든 주변 여건이나 그날 밤의 그 시각, 분위기, 자세, 표정...... 손에 들린 그것은 “오직” 성경일 수밖에 없었다.
애써 놀라움을 감추며 슬며시 다가간 내 눈에 비친 것은 “오직” 충격! 왼손 엄지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까지 터질 듯 잡혀 있는 두터운 그것은 성경이 아닌 예금통장 뭉치. 그게 다 뭐 하는 거며 어디서 났는지 서른 개는 족히 돼 보였다.
“하하, 여보, 멀리서 보니 꼭 성경책 같데. 남편이 돈도 많이 못 버는데 무슨 통장이 그리 많노?”
“호호, 이 통장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어요. 나한테는 이게 바로 생명이예요.”
참으로 아내다운 솔직함.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남편이 꼬박 7년을 실업자로 있으면서 얻은 아내의 철칙. 돈=생명. 다시는 “돈이 없어 끙끙대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며, 아내는 점검이 다 끝났는지 다시 장롱 깊숙이 그 생명통장들을 모셨다.
하하, 그래도 감사하다. 기나긴 여정, “내겐 이게 바로 생명”이라는 멋진 멘트까지 나왔으니 거의 다 왔다. 기적처럼 어느 날, 그 주어(主語)가 “통장”에서 “성경”으로 바뀌어지리. “죽음”을 깨우쳐 주셨으니 “생명”도 곧 가르쳐 주시리. 트렁크 속 아내의 성경이 침대 옆 램프 아래서 빛을 볼 날이 머지 않았다. 그런 가슴 벅찬 희망이 있음에 오늘 하루가 또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