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5일 >>>
아내는 "평생소원이 딱 두 가지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언제 처음 말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수도 없이 자주 말했고, 초지일관 그 순서도 똑같았고, 둘 다 참 특이하다. 1번 “서울말 할 줄 아는 것”, 2번 “노래 잘 부르는 것”이다. 남편 된 나로선 너무 감사한 일 아닌가? 소원은 그냥 소원일 뿐, 따라서 얼마든지 양껏 저지를 수 있는 것. 가령 1번 "뉴욕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 사는 것", 2번 "자가용 비행기 타고 세계일주 하는 것", 뭐 충분히 이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내가 이 소박한 "소원 얘기"를 할 때마다 크게 안도, 늘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마침 때가 왔다. 실직해 있던 내가 딸 회사(brilliant.org)에 취직, 몇 년 일하자 빚도 정리됐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아내가 드디어 소원성취를 결심했고, 서울말학원과 노래학원 등록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때가 2018년 5월. 부푼 가슴으로 결행일만 엿보고 있던 아내의 목에 갑자기 지름 1.5cm 멍울이 불거졌다. 우리는 부랴부랴 학원 대신 병원으로 달려갔고, 검사 결과 갑상선 암이었다. 골똘히 몇몇 옵션들을 검토, 최종적으로 아내는 11월 11일에 한쪽만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남짓, 회복이 순조롭게 되자 "학원" 등록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노래학원은 상대적으로 찾기가 쉬워, 그 장소까지 거의 결정됐다. 막 등록하려던 차에 이번엔 코로나가 왔다. 거기다 몇 달 뒤엔 미국의 딸이 손녀를 낳았다. 그리하여 2021년과 이듬해 일부는 미국 가서 애 봐 주느라 딴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곤 2023년 봄에 손자가 탄생, 우리는 또 한 번의 "육아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 모든 노역(奴役)이 다 끝난 것이 지난 5월. 은근히 셋째를 논하는 딸에게 아내는 "이제 늙어서 애는 더 못 봐 준다"며 단호히 육아 "졸업"을 선언했다. 그래 요즘은 또다시 "학원" 얘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하, 평생소원은 역시 평생 가는가 보다.
아내의 1번 소원에 대해선 내게 약간의 긴장감도 없지 않다. 가령
"여보, 배 안 고픕니꺼? 요 앞에 나가서 한 그릇 먹고 오입시더."
하던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가 어느 날
"자기야, 배고프지? 우리 요기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 응?"
한다고 상상해 보라. 기가 막힐 일 아닌가? 쭈볏쭈볏 뒷머리만 긁고 있지 대답이 선뜻 나오겠는가? 어쨌든 아내가 서울말을 하면, 꼭 처음 보는 사람 같이 억수로 어색할 것 같다. 항상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해 다닐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름 비책(祕策)은 있다. 열심히 연습, 서울말엔 나도 "서울말"로 하는 것이다.
"머, 나가자꼬? 그래, 알았다."
할 것을, 엄지손가락 힘차게 들어 보이며 그보다 백배 살갑게
"응, 자기, 굿 아이디어네?"
하는 것이다. 최대한 고상하게 살고파하는 소원, "1번". 그렇게라도 내가 일조해야지, 마음먹고 있다.
아내의 소원 2번은, 사실 꽤 오래 전부터 "몸을 풀고" 있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나는 2017년에 한동안 양다리에 깁스를 했다. 촌놈이 스키장에 따라가 스키를 배우던 중, 양다리가 있는 대로 쭉 벌어지며 양 무릎 안쪽 인대가 찢어진 것이었다. 사고 순간엔 모든 것이 슬로우모션. "뿌~욱! 뿌~욱!" 한 쪽씩 천천히 차례로, 그러나 놀랍도록 또렷이 들리던 소름 끼치는 그 소리...... 결국 나는 하루 입원한 뒤 몇 달을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러자 아내가 "이참에 노래 연습이나 해야지" 하며, 강변테크노마트에 가서 노래방 기기 일체를 사 왔다. 노래가사와 그 배경의 세계절경 비디오를 띄워 줄 빔프로젝터(beam projector)도 중고로 함께 사 왔다. 사운드는 우리집 기존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했다. 얼마 뒤엔 가로 330cm, 세로 250cm 스크린도 한 쪽 벽에 장치, 말아서 올렸다 내렸다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전세 살았던 사랑의 집 "실로암" 건물은 깊고 조용한 산 속에 위치한 데다 완벽한 방음의 2중 창호. 게다가 그 큰 스크린도 풀(full)로 펼칠 수 있는 5m의 높은 천고. 가라오케에 그만큼 이상적인 장소는 이 세상에 또 없었다.
참 신기한 일 아닌가? 평소 유행가를 듣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기뻐도 생전 노래 한 가락 흥얼거리는 법이 없는 아내. 더구나 교회 행사의 일환으로 마이크 잡을 일이 생기면, 아예 교회를 안 간다 할 정도로 그런 걸 질색하는 아내. 그런데 어떻게 마이크에 대고 “노래 잘 부르는 것”이 평생소원이 됐을까? 아무튼 아내는 기계 사서 몇 배로 본전 뽑았다 할 정도로 충실히 노래를 불렀다. 일시적 불구에다, 환갑 다 되도록 내 집 장만도 못한 무능한 남편. 그런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노래 끊기기 전에 부지런히 새 노래 예약, 노래마다 박자 맞춰 손뼉, 노래 끝날 때마다 환호/열광, 그리고 열에 한 번 정도는 나도 한 곡 하는 것이었다. 무릎 깁스 풀고 나서는, 곡에 따라선 벌떡 일어나 신나게 율동도 제공했다. "평생소원 풀이" 치고는, 하하, 최고로 싸게 먹히는 것이었다. 아내는 한 번 발동 걸리면 보통 서너 시간, 최장 기록은 6시간. 언젠가 하루는, 열은 아직 덜 식었는데 몸이 피곤한지, 맨 끝 두세 곡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부르기도 했다. 아내가 지쳐야 끝났다. 내가 먼저 "그만하자"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매사에 돈 관계는 일체 내가 모르지만, 그때 그 모든 게 총 8, 90만원 들지 않았을까 짐작은 한다. 그런데 그 장치가 많은 일을 했다. 40가구 정도 되는 우리 교인들 중에 실로암 노래방을 안 거쳐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떤 집들은 아주 여러 번 애용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셨던 7순의 주방 권사님은, 어느 날 혼자 오셔서 양희은의 “작은 연못”을 필두로 열 곡이나 부르고 가셨다. 마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신 듯했다. 가라오케는 생전 처음이라 하시던 다른 권사님은, 김상희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을 부르셨다. 희귀 곡목 선택으론 단연 1위였다. 사이가 안 좋은 부부들도, "야, 이거 정말 힐링 된다!" 하며 일단 휴전하고 실컷 노래만 부르다 가기도 했다. 2019년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예배 마치고, 애들까지 다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특선영화도 상영했다. 영화 끝나고는 저녁 해서 같이 먹고, 약속이나 한 듯 집집마다 두세 곡씩 부르고 갔다. 교회 안에 전세를 살면서 찬송가는 안 부르고 유행가만 불러 늘 죄송했다. 그 장치엔 찬송가가 없기도 했지만, "영성"을 대신한 "감성" 모임이라고 스스로 변명하며 지나갔다.
가라오케 덕에 아내의 노래 솜씨가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이제 박자와 음정은 안 틀린다. 성량은 다소 부족하나, 타고난 목소리가 청아하여 학원 가서 테크닉만 좀 배우면 금방 극복될 것이다. 1번은 몰라도 적어도 2번은 머잖아 "소원성취"를 선언할 것으로 본다. 이왕이면 1번도 아내의 평생 바람대로 꼭 성취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소원이 딱 하나밖에 없다. 처자식, 사위, 손녀손자 모두 하루빨리 예수 믿는 것이다. 아내도 자손들을 위해, 내 것과 동일한 소원 "3번" 하나를 추가해 주면 정말 좋겠다. 하룻밤 짧게 끝나는 흥(興)이 아닌 영원한 흥이 있다면, 그 어찌 혼자만 품을 일이리오? 목숨을 주어도 안 아까운 사랑하는 자손들에게 그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으리오? 6시간 노래하면 거의 100곡. 그 많은 곡들을 찾고 예약하고 장단 맞춰도 내가 지치지 않음은, 그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 똑똑한 내 아내가
"아!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하는 기적의 그날이 곧 올 것을, 내가 100%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