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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도로교통법 대 마누라 법(法)

by 김지민

2025년 9월 3일 >>>


나는 운전을 지구상 최고의 선생한테서 배웠다. 중학교 3년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고 지금도 부산 가면 늘 보는, 내 절친이다. 스스론 완벽주의자, 남에겐 “틀림없는” 사람이다. 두터운 신망으로 일찍부터 사업에 성공했고, 전기와 자동차에 대해선 누구보다 빠삭한 친구다. 그가 내게 가르쳐 준 정석(定石) “후진법”은 이러하다.

“차를 빠꾸할 땐, 왼손은 핸들을 잡고, 오른팔은 조수석을 어깨동무하고, 엉덩이를 떼고 완전히 일어서서 몸을 뒤로 틀고, 고개는 운전석 뒷자리 왼편 창 밖이 내다보이도록 끝까지 돌려야 된다.”

언제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최대한 시야를 많이 확보하고 극도로 조심하라는 뜻이다. 사고(事故) 안 내고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동승자가 자기집 소파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 진정 잘 하는 운전이다.”

세상 누가 이런 귀한 가르침들을 주나? 그는 또한, 지극히 몰상식한 어느 운전자를 금정산성에서 온천장까지 20분을 쫓아가 “잘못했다”를 받아내기도 한, 참 특별한 친구다.


그렇게 운전을 배우고 직장생활 좀 하다가 유학을 가서, 공부하며 틈틈이 나도 열 명 넘게 운전을 가르쳐 면허를 따게 해 주었다. 아내, 한국유학생, 중국유학생...... 십수 년 뒤엔 우리 딸도 내가 가르쳐 합격시켰다. 막 공부 끝내고 시카고 선물(先物)회사에 일할 땐, 한국에서 10일간 연수 온 고객을 “속성” 지도, 기념품 삼아 면허증을 따게 해 준 일도 있었다. 우리 회사의 소위 “영업” 차원에서, 캄캄한 새벽도 마다 않고 매일 성심껏 코치해 줬던 것이다. 누구보다 기억에 남는 분은, 시카고에서 같이 경제학 공부를 하셨던 6년 선배님. 하루는 캠퍼스에서 나랑 마주치자 만면에 미소 가득,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와, 진짜데요, 김지민씨! 분명히 없었던 차가 진짜로 어디서 하나 ‘툭 생겨서’ 튀어나오데요!”

후진은 각별히 조심하시라, 어깨동무 후진법을 꼭 지키시라, 초보 시절 후진 때는 없던 차가 유령처럼 번쩍 생겨서도 나온다, 하며 내가 수도 없이 주의시킨 탓이었다.


내가 일평생 가장 오랜 시간 차로 모셨던 분은, 역시 아내다. 어디 내려 드리고 기다린 시간까지 합하면, 하하, 내 인생의 10%는 족히 된다. 이런 VIP가 이왕이면 좀 “쉬운” 분이면 좋은데, 솔직히 그 반대다. “당신 운전이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늘 말은 하지만, “절대적”으론 결코 내 운전에 만족을 못한다. 아내는 어릴 때 버스가 바로 코앞에서 급정거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차를, 특히 큰 차를, 아주 무서워한다. 가령 신호등 없는 길을 건널 땐, 아직 차가 까마득히 저 멀리 오는데도 내 손을 꼬옥 붙잡는다. 큰 트럭일 경우는 잡은 손을 덜덜 떨기도 한다.

“걱정 마라, 괜찮다. 저 정도 거리와 속도면 엎드려서 기어 가도 충분히 건널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수학/논리가 전혀 안 통하는 것이다. 차에 대한 남다른 공포가 “본능”처럼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나가면 귀가할 때까지, 아내는 불평/권고/명령이 끝이 없다. 차의 속도와 무관, 출발 후 500미터쯤엔 으레 떨어지는 첫 지시사항.

“여보, 천천히 가요!”


어디를 가든 아내는 트럭/버스 운행량을 최우선으로 고려, 노선을 정한다. 한국, 미국, 다 한가지다. 특히 시카고는 많은 도로가 관통하는 미국 중부의 중심도시. 어쩌다 잘못 걸리면 온 고속도로가 화물트럭 천지다. 노선 선정에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간혹 부닥치는 일이다. 그러면 아내는 어김없이 겁에 질리고, 나는 즉시 맨 우측 차선으로 옮겨 트럭 한 대를 뒤따라간다. 그나마 그게 최선이다. 그러다 좀 잠잠해지면 눈치를 본다. 이 트럭을 따라내고 이제 휑하니 좀 달려? 괜히 혼나지 말고 그냥 이대로 가? 애매할 때는 가부(可否)를 여쭙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는 내 머릿속 “인간 A.I.”가 모든 요소를 면밀히 분석, 결정을 내린다. 주변 차량들의 수/사이즈/속도, 아내의 기분, 몸 컨디션, 그날 스케쥴..... “추월”로 결정 날 경우는, “적정 추월속도”도 함께 나온다. 너무 빨리 따라내면 “천천히 가자”는 기본 지침에 위배. 너무 느리면 트럭 옆을 달리는 시간이 길어져 곤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단 하나의 숫자가 --- 가령 “시속 62마일” --- 딱 나온다. 테슬라 최고의 A.I. 자율주행 기능도, 40년을 함께 산 내 이 “관록”을 능가할 순 없다.


아내가 화물트럭보다 더 무서워하는 차가 있다. 전자가 단지 육체적 공포의 대상이라면, 후자는 깊은 정신적 공포에 아내를 빠뜨린다. 바로 “비싼” 차다. 할부 국산 스포티지를 최근까지 9년 탔던 아내가, 그 “비싼” 외제차들을 어떻게 다 아는지? 내가 겨우 아는 벤츠나 BMW는 약과, 아내는 그보다 몇 배 비싼 차들도 훤히 꿰뚫고 있다. 그리고 그런 차가 출현하면 --- 행여나 사고 시(時) 물어줘야 될지도 모를 거금 생각에 --- 거의 “경끼(驚氣)”를 한다.

“여보, 저게 그 비싼 ‘람보르기니(Lamborghini)’예요! 빨리 차선 바꾸세요!”

큰 차 아니라고 마음 턱 놓고 달리던 나는, 황급히 차선을 바꾸고 속도를 확 낮춘다. 넓은 길은 차선 두 개를 바꾼다. 귀하신 차, 빨리 먼저 가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원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차도 모두 “탈것”으로만 여겼던 나. 그러나 이젠 많이 깨였다. 못 보던 차 모양, 이름, 로고에는 나도 모르게 눈이 확 뜨이고 정신이 버쩍 든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고급차는 미련 없이 훨훨 떠나보낸다.


아내는 아름답고, 한산하고, 신경 안 쓰이는 길을 좋아한다. 10분, 20분 더 걸려도 항상 그런 길을 선호한다. 또 아내는 신호등 없이 “큰 길로 좌회전”하기를 끔찍이 싫어한다. 그런 길이 나오면 나는 으레 우회전, 한참 가다가 유(U)턴 한다. 편도 1차선이 많은 양평에 이사 와서는, 아내는 이제 "사이드 미러"도 본다. 그리곤 뒤에 오는 차가 너무 붙으면 불평한다. 그럴 땐 나는 사뿐히 길 옆으로 비키고, 충분히 몇 대 보낸 뒤 뒤따라간다. 나는 도로교통법이 정한 규정속도도 꼭 지켜야 한다. 기분 좋게 잘 간다 싶으면 반드시 제지를 당한다. 조수석에 앉으면 나는 대개 자는데, 아내는 눈도 한 번 깜빡 안 한다. 그리고 아무리 조그만 실수도 “반드시” 지적한다. 태권도엔 “측면” 상대 공격법도 있는데, 옛날 성격이 불 같았을 땐 부끄럽게 나는 그런 공격도 서슴없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 그래서 나는 더더욱 아내가 차중에서 하는 어떤 지적/잔소리/짜증도 다 경청하고 인정한다. 그리곤 반드시 미안하다, 부주의했다, 앞으론 조심하겠다 하고 지나간다. 전혀 아무 소리 안 듣는, 딱 하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하하, 아내가 차내 전화통화를 할 때다.


2014년 가을, 우리 교회 부부학교에서 아내가 조원(組員)들 앞에 했던 말을 기억하며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저는 말 한 번 끝까지 해 보는 것이 소원이예요.”

그 행사로 내가 개과천선(改過遷善)한 후, 이제 아내는 모든 말을 끝까지 다 한다. 했던 말 또 해도 되고, 아무 말이라도 새로 또 할 수 있다. 있는 말 없는 말, 아주 양껏 실컷 다 할 수 있다. 집에서도 그렇고, 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차 안에서 아내가 하는 이런저런 지적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새겨들으면 당장 그때, 또는 차후에라도 다 도움이 된다. 많은 경우, 운전자가 미처 못 보고 못 알아차린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도로교통법 훨씬 위에 있는 마누라 법(法). 들을 때마다 귀한 “오늘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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