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
올 가을에 환갑인 나는 아직 집도 한 칸 없다. 물론 집 살 돈도 없다. 그래서 수시로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지만, 숙연한 얼굴로 경청하는 전략이 최상이다. 나의 이 경제적 무능을 잘 아시는 은인들께서 전세를 아주 싸게 주셔서, 감사하게도 살 곳은 있다. 아비의 무능을 또 일찌감치 눈치챈 딸(수연)과 아들(도근)은 각기 고교졸업과 동시에 집을 나가 독립했다. 대학은 둘 다 학자금 융자로 다니다가 중퇴했다. 올해 서른 셋인 딸은 3년 전에 결혼했는데, 우리 부부는 달랑 몸만 가서 식을 치렀다. 기둥뿌리 뽑힌다는 그 무시무시한 “딸 결혼”을 완전공짜로 했다. 4년 반 아래인 아들놈도 목하 연애 중인데, 또다시 달랑 몸만 가는 횡재를 확신하고 있다.
이처럼 인생후반전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행운에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직장이 있다는 것이다. 일만 잘 하면 회사가 존속하는 한 정년이 없는 이 귀한 일터에, 내 직속 상사는 겨우 28세다. 일 년 내내 말 한번 못 붙여 보는 사장님은 그보다 몇 살 더 먹었는데, 바로 상기의 내 딸년이다. 지가 사장 이전에 딸이니 운명적으로 나를 한 번씩 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만나도 말이 없다. 백 명 직원 중에 고위직,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으로 있는 아빠에게 딸이 딱히 할 말이 뭐 있으랴? 나이 육십에 기업을 물려주기는커녕 거꾸로 자식 녹을 먹는 아비는 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래서 지 엄마랑 다 같이 있으면 간혹 한두 마디 할까, 둘만 있으면 우린 애써 허공만 본다. 불편하기만 할 뿐, 피차 도저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십여 년 전에는 딸이 1년간 내 회사의 인턴사원으로 있었던 만큼, 이 기막힌 인생역전을 “재역전”시키는 꿈을 나는 늘 꾼다. “수연이는 내 영원한 라이벌, 나도 머잖아 크게 될 것”이라고 하면, 아내는 여지없이 무자비한 언어폭력을 가한다. “라이벌은 무슨 얼어 죽을...... 걔는 당신 같은 사람 안중에도 없다. 당신은 쨉도 안 된다. 이미 늦었다. 꿈도 꾸지 마라. 당신 능력은 딱, 지금 여기까지!” 이 모든 와중에 아들놈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며, 눈물의 빵 위에 홀로서기를 해 냈다. 아무튼 우리는 일찍부터 부모자식 간에 서로 손 벌리는 일 없는 확고한 독립채산제를 구축했다. 부부간에는 남편이 100% 아내에게 순종함으로 365일 평화만 있는, 매우 희귀한 여존남비제를 택했다.
여기까지가 짧게 줄인 내 60 인생의 현주소이고, 그 긴 얘기는 시간 날 때마다 한 편씩 써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