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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집에 딸 챴~나?”

by 김지민 Feb 21. 2025

2024년 5월 16일 >>> 


“그 집에 딸 챴~나?” 어릴 때 자주 듣던 말이다. 물론 경상도 사투리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향이 그 쪽이라도 어쩌면 못 알아들을 수도 있는, 사뭇 구시대적인 표현이다. 이 순수 경상도 사투리를 0.1초 만에 즉각 알아듣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처음엔 앉아서 그냥 상상만 해 보다가, 점점 너무 궁금해져서 비-경상도 여러 지인께 문자로 질문을 드려 봤다. 뜻을 확실히 아시는 분은 안 계셨고, 겨우 한두 분만 어감상 “그 집 딸 혼기가 찬 것 아니냐?”는 질문 같다고 하셨다. 하하하…… 과연 그럴까?


2016년 6월 어느 밤,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으레 딸의 미국 전화는 아내가 받고 둘이 얘기하다가 끊는데, 그 날은 왠지 나를 바꿔 줬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받았더니 수연이가 아닌 수연이 회사의 직원 사일러스(Silas)였다. 사일러스는 내게 “당신의 딸 Sue와 결혼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자네들은 다 성인인데 내가 허락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나, 당연히 허락한다, 축하한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이미 5년 전에 귀국, 형편상 다시는 미국을 못 가 보고 경기도 광주에서 싸게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오기 전에 수연이 회사에서 두세 번 본 적 있는 그 청년이 우리 사위가 된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두 달 뒤인 8월에 위스칸슨 시댁 10만평 농장의 본채 연못가 큰 뜰에서 거행될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달랑 수연이 웨딩드레스만 준비해서 그 1주일 전에 도착, 양 사돈과 첫 인사를 나누고 좀 떨어진 별채에 숙소를 배정받았다.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방이 고요하고 푸르른 대자연 속에 양떼, 소떼, 그리고 거의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듯한 당나귀 한 마리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웠다. 며칠이 지나 드디어 결혼식 전야, 비스듬히 앉아 있던 나는 마치 무엇에 놀란 듯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영화 같은 걸 보면 결혼식 끝나고 피로연 때 신랑신부 아버지가 각각 마이크 잡고 한 마디씩 하던데…… 아차, 큰일났네, 혹시 모르니 나도 준비 좀 하자!


나는 잽싸게 종이와 펜을 꺼내 소위 “신부측 아버지 축사”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튿날, 미국 각지에서 날아 온 200명 하객의 축하 속에 결혼식이 아름답게 끝을 맺고 저녁에 피로연이 시작됐다. 아니나다를까 사회자의 진두지휘에 따라 마이크가 이리저리 테이블을 옮겨 다니더니 드디어 내 앞에 왔다. 한국말로는 수도 없이 강의, 강연을 해 봤지만, 영어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처럼 먼 걸음들을 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는 지극히 “의례적인” 인사로 나는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 그 결혼식 이후 내내 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됐다고 훗날 전해 들은 --- 매우 “이례적인” 축사에 들어갔다.


우리 사돈댁 농장은 위스칸슨 주의 주도(洲都)인 매디슨(Madison)에서 세 시간이나 차로 더 가는 외진 곳이다. 수연이가 연애시절 사일러스를 따라 그 곳 성당을 한 번 갔는데, 백 년도 더 된 그 성당 안에 동양인은 수연이가 처음이라 했을 정도다. 그처럼 거기는 “동양”이 낯설고 신기해서 그랬는지 결혼식에도 뭔가 “한국적인” 것이 좀 가미됐으면 좋겠다 하는 말이 있었음에도, 결국 그 안(案)은 유야무야됐다고 했다. 예식 순서에도, 예식장 장식에도, 준비하는 음식에도, 그 어디에도 한국적인 것은 없었다. 우리 부부가 가까이 안 살았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결국 수연이, 도근이, 그리고 우리 부부, 이렇게 4인의 한국 사람 얼굴이 그나마 유일하게 “한국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 이 결혼식에 뭔가 한국적인 것(something Korean)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 자, 여러분, 여기 매우 한국적인 것이 있으니 한번 들어 보세요.” 일단 한국적인 것 운운하는 장면에서 한 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남동부 지역에서는 아들 말고 딸의 경우, 절대로 뉘 집 딸 결혼했느냐(get married)고 물어보지 않습니다.” 대신에 “Did they get rid of their daughter?” 하고 물어본다고 했다. 직역하면 “그 집 딸 치웠나?”가 되고, 경상도 사투리로 가면 “그 집에 딸 챴~나?”가 된다. 그 순간 좌중은 온통 폭소와 박수와 휘파람과 환호로 뒤덮였다. 깔깔깔 목을 젖혀 웃다 못해 눈가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몇 초 뜸을 두었다가 나는 말을 이었다. “Yes, I’m here today to get rid of my daughter. Silas, Sue is all yours now! You are the only man on Earth who can handle my daughter.”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제 딸을 치워 버리려고 여기 왔습니다. 그리고 사일러스여, 이제 Sue는 완전히 자네 것일세. 자네는 이 세상에서 내 딸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네. 이렇게 나는 축사를 마쳤고, 피로연은 거기서부터 흥을 더하여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밤 깊어 가는 줄 몰랐다. 작년 말 위스칸슨에 갔을 때 사돈의 친구 한 분이 “나는 그 날의 당신 축사를 아직 기억한다”며 악수를 청해 왔다. “딸 챴~나”가 한국의 경상도 사투리지만 만국공통의 정서를 담은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나이 서른이 되자 약간 걱정되면서 솔직히 좀 빨리 치웠으면 싶었던 우리 딸 수연이, 그렇게 사일러스의 전화 한 통으로 용케 치워 버릴 수 있었던 수연이, 부모는 그렇게 자기를 치워 버렸어도 자기는 결코 부모를 치워 버릴 수 없었던 수연이, 그래서 그 수연이가 지 엄마한테 작년에 사 준 양평 집에서 지금 이 글을 쓴다. 나는 평생에 결국 내 집도 한 칸 마련 못한 무능한 남편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시대가 바뀌어 남자가 독점하던 경제력도 구태의연한 남존여비 사상도 다 힘을 잃었다. 게다가 우리집은 이처럼 딸이 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능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 바, 이러다간 조만간 “그 집에 아들 챴~나?” 소리를 듣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하하……


수연-사일러스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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