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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by 인산

우린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습니다.

유리를 흉내 낸다는 비아냥거림도

일회용품이라고 놀려대는 것도

다 쓰고 나면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도


한 가지 견딜 수 없는 것은

버리면 그만일 것을

아무런 이유 없이

우악스런 손과 발로

몸통을 으깨고 마는 것


생각해 보셨나요?

시리도록 추운 겨울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차를 기꺼이 가슴에 안고

꽁꽁 언 당신의 입김을 녹여주던 그때를

얼음장 두 손으로 우릴 꼭 안아주던 그때를


알 수 없답니다.

따뜻함이 식어버리고

마지막 한 방울이 홀짝하고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에 내던지는 성난 몸짓을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개구리처럼 납작해져

목이 메어 말라버린 종이컵의 상처를


우린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 손끝과 이별하는 순간

흔들리는 눈망울로 아쉬워하며

그저 한번 바라봐주기만 한다면

텅 빈 가슴 다시 채울 날 고대하며

언제든 견딜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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