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 출퇴근을 하는 길에는 어느 창고를 지키는 개 한 마리가 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그 개에게 ‘백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분명 흰색이었을 털은 꾀죄죄하게 때가 타 회색빛이 되었지만―. 백구는 쇠 목줄이 채워진 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폭염이 기승을 부리나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목줄이 닿는 한 가장 먼 곳에는 백구가 싸놓은 똥이 열을 이루며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백구는 대체로 아스팔트 땅바닥에 축 눌어붙어 있다가 내 차가 지나가면 벌떡 일어난다. 내 쪽을 처연하게 바라보다 차가 멀어지면 다시 축 늘어진다. 몇 달간 지나다니며 백구를 관찰한 결과, 주인은 백구를 산책시켜 주지도, 함께 놀아주지도 않는 듯 보였다. 세상만사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 공허한 눈빛, 늘 불행하고 외로워 보이는 백구가 나는 점점 안쓰러워졌다. 하여 언젠가부터 간식을 사서 백구를 찾기 시작했다. 간식을 먹는 천진한 백구를 쭈그려 앉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구는 정말 불행할까? 내가 백구를 불행한 개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내가 백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닮아있다고.
이혼 후, 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난감한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내 이혼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일. 친한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나마 난이도 ‘하’였다. 난이도 ‘중’은 가까운 친척이나 가까운 동료였다. 난이도 ‘중’ 정도야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조금의 용기를 내면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난이도 ‘상’이었다. 내 결혼식에 와 주었으나 개인적으로 연락이 뜸해진 지인들, 회사에서 매일같이 마주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섞지 않는 데면데면한 동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전자는 연락하거나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후에 기회가 될 때 알리면 되었지만, 진짜 문제는 후자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직은 직장인이던 때, 타 부서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가 있었다. 내가 앉은 4인 테이블에는 공교롭게도 내 이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A),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사람(B), 내가 결혼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C)이 한 데 섞여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C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과장님은 결혼하셨어요?”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뻔뻔하게 ‘아니요’라고 답하자니 거짓말하는 것 같아 나머지 두 명의 눈치가 보이고, ‘네’ 하자니 그것도 거짓말 같아 A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했었는데요, 이혼했습니다’라고 답하자니 애써 풀어놓은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고, 나는 죄인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아...니, 아니아니...아니..요”라고 어정쩡하게 대답하며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 순간 내 표정이 어땠을지, A와 B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이혼 사실을 굳이 숨기려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듯 대뜸 ‘이혼했어요’라고 말하기 애매한 상황들이 있었다. 원래도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성격인 데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전남편의 수많은 거짓말에 진저리가 나 있던 터라,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내겐 큰 스트레스였다. 때문에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할 때는 혹여 이 대화가 결혼에 대한 주제로 흘러가지는 않을까, 늘 계산해야 했다. 그래서 대화는 점점 조심스러워졌고 대답은 이왕이면 짧게, 애매하게 하게 되었다. 되도록 대화 자체를 피하기도 했다.
아직도 내 지인들 중에는 A, B, C 세 가지 부류가 섞여 있다. 가끔 있는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가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이며, A, B, C가 모두 모이는 결혼식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내 결혼 소식을 알렸던 사람 중 일부에게, 혹은 새로 만나 가까워진 사람들에게 이혼 소식을 알리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합리화했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까 봐,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굳이 묻지 않았으니까. 즉, 상대를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은 나 스스로 이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거나 움츠러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편견 가득한 세상을, 사람을 탓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움찔한 마음이 과연 외부 요인 때문일까, 실은 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백구에게 목줄을 채운 건 주인일까, 나일까.
나에게 목줄을 채운 건 세상일까,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