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같이 붙어있는 땅, 이북.
그래도 내 생에 아름다운 추억이 숨 쉬는 그곳은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며 아버지 어머니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고 구들방 아랫목에서 형제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작은 집이 있던 곳이다.
바느질 바늘을 촛불로 구부려 만든 낚시로 고기를 잡던 집 앞 시냇물, 하얗게 꽃이 핀 배나무 위에서 아침내 노래하던 까치 울음소리.
이런 얘길 하면 누구나 그리운 고향 생각이 나겠는데, 그 고향이 부모, 형제, 자식까지 깡그리 뺏어간 곳이라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시골로 추방되어 우리 가족이 살게 된 <하모니카 주택(여러 채의 집들이 줄줄이 붙어지은 집)>에는 벽마다 고약한 연기 냄새가 배어있다.
저녁에 누우면 쥐들이 머리맡에서는 세계대전을 하듯 찍찍거리고 지붕 위에서는 올림픽을 한다. 밤에 뚫어놓은 쥐구멍을 아침에 메워놓으면 밤에 또 뚫어놓는다. 잡아도 잡아도 또 온다.
벽과 벽 사이로 바깥이 보이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황소바람이다. 옛말에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 소리가 맞다. 창문은 비닐방막을 수숫대로 말아 붙여놓은 짬으로 윙윙 소리와 바람이 같이 들어온다.
바람이 부니 아침밥을 해 먹으려 해도 아궁이로부터 연기가 쓸어 나와서 슬프지 아니해도 아침부터 눈물을 한 바가지 흘러야 한다.
눈이 오면 집 앞 눈을 치우지 못해도 ‘담당 도로구간’의 눈은 치워야 한다. 오지도 않는 장군님 언제 지나갈지 모르니 <모시는 사업>이라며 십리 길 눈을 다 치워야 한다.
집 밖에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좀 치우면 마을회관에선 종이 울린다.
출근 종소리.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소리가 있듯이 그해 겨울은 너무나도 추웠다.
날씨도 추웠지만 마음이 너무나도 추웠던 겨울이었다.
1998년 그해 북한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있고 공장들은 모두 다 숨을 멈추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공장 기계 부속을 뜯어 팔고, 철길의 레일 못까지 뽑아 팔았으며, 구리를 뽑아내기 위해 전선의 전깃줄을 잘라갔고, 변압기의 기름까지 뽑아갔다. 군인들조차 총알까지 팔아먹던 시절이었다.
비료공장은 생산을 멈추었으며 질소 비료는 폭약의 역할을 하였으니 김정일은 그 생산마저 통제했다.
비료가 없으니 농사를 지어도 흉작일 수밖에 없다.
비료생산의 첫 번째 공정이 암모니아 생산이다. 암모니아를 대기 중의 질소로 반응시켜 질소 비료를 만드는데 설비공정이 돌아가지 않으니 질소 비료 대신 액체로 된 암모니아를 협동농장에 공급하였다.
암모니아를 큰 물탱크에 받아와 주전자로 담아 옥수수 밑을 파고 조금씩 붓는 것이 <암모니아 비료 주기>이다.
다음 해 1월, 봄에 쓸 비료로 암모니아를 받아오기 위해 흥남 비료공장으로 출장을 갔다.
집을 떠날 때 태어난 지 한돌이 되어오는 막내 석이가 간간히 기침을 하기에 약을 챙겨주며 아내에게 잘 살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추방되어 간 산골 마을은 운송수단이 소달구지 밖에 없었고 병원까지는 2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당시는 길가에 시체들이 널려 있는 형편이어서 병원 기능도 실제로는 마비된 상태였다. 간부들이나 간신히 병원 치료를 받을까 말까….
출장 간 흥남 비료공장에서 받아와야 하는 암모니아 외에 비료를 조금 훔쳐 팔아 식량을 5kg 정도 벌었다.
그렇게 7일 만에 집에 돌아오니 막내 석이가 급성폐렴에 걸려 거의 정신이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린 녀석이 아파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이불속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녁에 도착해 밤새 아들을 살리려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더는 숨을 쉬지 않았다.
옛말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이 무너지는 것 같고 자식이 죽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바깥이나 다름없이 차디찬 집안에서 아픈 어린애가 어떻게 무사하겠는가?
다음 날 아침 언 땅을 파고 석이를 묻었다. 자식을 땅에 묻는 부모 마음을 누구나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언제 입안을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눈에서는 눈물이 강처럼 흘러내린다.
전쟁도 아닌 평화로운 시기에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그 많은 사람은 모두 다 누군가의 부모였고 자식이었고 사랑하는 아내, 남편이었다.
그 사람들의 눈물을 모두 합치면 대동강과 한강의 물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나라의 임금도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을 진데,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3대가 권력을 세습하려고 자식 같고 부모 같은 자기 백성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김부자의 세습통치 때문이다.
반드시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하며 절대 용서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