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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탈북 06화

# 6 신의주

by 한성태

내가 열여섯 살로 군대에 갈 때 역까지 울면서 바래다주던 누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9년 후 대학 다닐 때 한번 룡천에 가본 적이 있었고, 6년 만인 1997년에 누나를 찾아가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1983년 남한에서는 6.25. 때 헤어진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이 그렇게 눈물겨웠다고 들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 나라에서 살면서도 부모 형제를 마음대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 땅에서는 여행증명서 발급이 어려워 부모가 사망을 했어도 서로가 알 수도 없고, 편지를 써도 몇 달이 걸려야 겨우 도착한다.


누나네 집에 들어서니 온 식구가 맨발로 뛰어나와 눈물의 상봉,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밤새 누나는 엄마 소식, 형, 조카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세상을 한탄했다.




어려운 건 누나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룡천에서 신의주까지 25km를 자전거를 타고 물건을 실어다 팔아서 쌀 몇 kg, 밀가루 몇 되씩 장서를 해서 하루하루 힘들게 네 가족이 먹고살았다. 살기 힘든 세상 욕을 하고 한탄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일찍 누나와 함께 가지고 온 약초를 싣고 자전거를 타고 신의주 장마당을 향해 출발했다.

룡천에서 신의주로 가는 길에 ‘백산 다리’가 있다. 강 너비는 15m 정도 되는데 바다에서 물이 들어오면 강 깊이가 5m 정도 된다. 이 다리는 신의주와 외부 세계를 갈라놓는 국경선이다.


이곳에서 보위부 요원들이 걸어가는 사람이나 자동차 등 일체 유동 인원을 모조리 단속한다. 신의주로 장사를 가기 위해 그 강을 넘어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국경에서 100리(40km) 밖에 사는 사람은 ‘국경 출입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룡천은 국경에서 25km 되니 신분증과 함께 구체적인 신의주 출입명분과 인민반장, 보위부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나는 누나가 동네 같은 성씨 사람의 신분증을 빌려서 동네에 사는 형제로 위장하여 백산 다리를 통과하였다.

그날 신의주에 가서 약초를 팔아 밀가루 20kg, 옥수수 10kg, 쌀 5kg을 벌어 다시 누나네 집으로 돌아왔다. 신의주에서 나올 때는 물건만 검열할 뿐 신분 단속은 하지 않는다.


집에서 떠나 기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오는데 9일이 걸렸는데, 이제 다시 돌아가는 길은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나는 그다음 날 짐을 챙겨 누나와 누나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열차에 올랐다. 이것이 누나와 마지막 이별이었고 그때로부터 24년이 흘렀다.




고생고생하면서 닷새가 걸려 겨우 집에 도착하였다.


북한에서는 일단 집을 떠나면 생사가 갈라진다.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우선 먹을 것을 많이 챙겨야 한다.

기차 속도가 겨우 시속 40km~50km인 데다가 전기가 끊어지면 기차는 산골 역에 멈춰 서서 2~3일 꼼짝도 안 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주먹밥 아니면 쌀을 메고 가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일단 기차가 서면 밤이 되면 암흑 세상이고, 낮에는 여름이면 찜질방, 겨울이면 냉장고가 된다. 그럴 때 기차를 탄 군인들은 여러 명이 같이 가기 때문에 주변 마을 민가에 쌀을 가져가서 밥을 해 오지만, 일반 사람들은 떠나올 때 준비해 온 도시락이 떨어지면 굶어 죽기 일쑤이다.

창문 옆 식탁에 도시락을 놓으면 밖에 꽃제비들이 어느새 훔쳐 가는지 눈 깜빡할 새에 없어진다.


기차에서 5일 정도 머물다 보면 기차 밖으로 죽은 사람 시체들이 끌려나가는 걸 보게 된다. 그야말로 믿기 힘든 아비규환이다.


낮에는 사람들이 너무 답답해서 기차 주변에 내려가 있기도 하는데, 기관차가 ‘빵~’하고 기적이라도 울리면 내려왔던 사람들은 기차가 떠나는 줄 알고 폭격에 대피하는 사람들처럼 부랴부랴 기차에 올라탄다.

그것이 재미있는지 이따금씩 기관차는 이 소동을 일으킨다.


나는 그나마 집 떠난 지 보름이 걸려 도착하였다. 이곳 남한 같으면 하루면 갔다 올 거리를 보름이나 걸려 다녀왔던 것을 생각하니 지금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직도 신의주에서 가져온 밀가루로 ‘덴뿌라(밀가루 튀김빵)’를 만들어주느라 온 동네 퍼지던 기름 냄새와 아들이 맛있게 먹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24년 전 그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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