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늙어가는 것이 버거운
엄마가 입원을 했다는 카톡을 받았다.
영양실조로 입원을 했는데 당뇨 증상도 조금 보인다고 한다.
최근 몇 달간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어서였다.
입원 소식을 듣고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엄마의 생활 습관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는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
어릴 때 나를 챙겨준 부모의 역할이 성인이 되어 반대로 바뀐다는 것
부모가 큰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가까워지는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멀어지도록
자식이 부모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몸소 깨닫는다.
입원 소식에 슬프기는커녕 약해지는 부모에게 지쳤고, 내 능력의 한계, 답답한 내 삶에 지쳤다.
적자생존이라는 말 혼돈 가득한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전단지라도 뿌려야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정신적 경제적 의지처로 기대려 하지 마세요.
자식이건 부모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같이 있어도 혼자인 듯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세요. 그것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세요. 언제 의지처의 뿌리가 무너질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이니까요."
내 나이 30인데 스스로 먹고사는 일에도 헤매고 있다. 오늘내일이 불안한데 부모를 챙겨야 한다니 도망쳐버리고 싶다. 불안을 일으키고 나에게 부담을 주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패기로 가득한 20대 초반 항상 돈에 우는 소리 하는 부모의 모습이 싫었다. 세상에 무심한 듯 대충 걸친 옷이 창피했다. 삶을 항상 염세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부모의 모습이 참 지겨웠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부모에게 행복을 선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효도하겠다는 의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치 월세 내면 소멸하는 월급에서 나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없음에 분했다. 아리따운 청년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장이 되어 부모를 도와야겠다는 꿈을 안으니 살기가 싫어졌다.
회사를 관두고 월급이 끊길 즈음 얼굴 보러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왜 부담스러웠을까..
능력 없는 자식으로서 도움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이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부모를 부담스러워 외면하는 나를 비춰주기 싫은 거였을까?
부모의 노화가 두렵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부모의 주름살을 보고 고생의 흔적을 느끼며 슬퍼하지만 나에겐 그들의 젊은 시절을 어린 피붙이들에게 희생한 고생을 자식으로서 보상을 해주지 못한 죄책감,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년은 날이 저물수록 불타고 포효해야 하니,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지혜로운 자들은 임종 시에 어둠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언어는 빛 한번 발하지 못했으니
......
딜런 토마스 -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중에서..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