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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청소년 소설을 읽어요.




초등 고학년부터는 딸아이에게 더 이상 책을 읽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좋은 책을 찾아 읽어두고 추천해 주는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딸아이를 위해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을 찾기 시작했다.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를 찾아보고, 판매량이 높은 신간도서들도 빠짐없이 읽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청소년 소설 왜 이렇게 재밌어?


이제는 딸아이가 읽든 말든 나 스스로 청소년 소설을 찾아 읽는다. 반전과 스릴, 좌절 극복, 재미와 감동이 담뿍 들어있는 이 세계를 나는 이제야 발견했단 말인가? 이제라도 발견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겠지?


나처럼 19금류 별로 안 좋아하고 호러, 스릴러 안 좋아하는 어른에게는 청소년 소설이 딱이다. 딱!


소년소녀 감성이 담뿍 들어있고 우정과 사랑, 부모와의 갈등,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청소년 소설에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영양 듬뿍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마구마구 청소년 소설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들을 나 혼자만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 반 학급문고에도 꽂아두기 시작했다. (내가 고학년 담임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

나는 딸아이에게 청소년 소설을 읽히는 것을 실패했다.


나는 F이지만, 딸아이는 T.

딸아이는 몰랑몰랑하고 감동적인 소설 자체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것.

드라마를 봐도 서정적인 장면에서는 스킵을 누르는 딸아이.

느리고 감동적인 장면에서 여백을 음미하는 나.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 너는 이제 니 갈길 가거라.

나도 내 행복 찾아서 갈 테니.

그렇게 나는 노선을 완전히 변경해 버렸다.


요즘은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고 진짜 재밌고 감동적이라며 기쁘게 읽어주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있어 뿌듯한 나날의 연속이다. 내가 책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쁜 마음으로 좋은 책들을 계속 계속 추천하려고 한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부터는 엄마 주도 책 읽기는 단호하게 그만두어야 한다. 그때부터는 아이와의 거리 두기를 시작해야 하고,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찾도록 해주는 것이 사춘기 엄마의 역할이다.


지는 게 이기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졌다.


이제 책 읽기는 오로지 나의 영역이다.

10년을 책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숨 쉬듯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며 숨 쉰다.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행복해하고 그 행복의 온기를 나누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맛있는 책읽기 초등편'을 마무리하지만,

책엄마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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