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원하지 않아서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딸아이는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반려동물을 궁리했을 것이다.
그중에 햄스터가 있었다. 그때부터 매일 매시간 졸라대기 시작했다.
"햄스터 키우게 해 줘. 내가 다 관리할게 약속할게~~"
그래서 딸아이는 햄스터를 키우기 시작했다.
햄스터 음식과 햄스터를 위한 온갖 물품들을 사모으고 햄스터 집도 점점 커져갔다.
이름도 지었다.
너무 잘 먹어 살이 통통하게 쪄서 '햄찌'
그렇게 햄찌는 우리 집 반려동물이 되었다.
이 시절 딸아이가 햄찌를 잘 키우기 위해 읽고 읽고 또 읽어서 닳고 닳은 책이 있다.
<햄스터>: 수의사 김정희가 쓴 햄스터 키울 때 필요한 정보(먹을거리, 살림살이, 생활관리, 감정이해, 놀이 등)가 모두 들어있어 햄스터를 키우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강력추천하는 맛책.
이때 딸아이가 이 책을 수십 번을 정독하고 정독해서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대는 것을 보고,
'아, 이 아이는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뭐든 해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딸아이의 꿈이 갑자기 요리사에서 수의사로 바뀌었다.
(지금은 꿈이 뭔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궁금하다.)
언제쯤이었을까?
어느 날 밤 갑자기 거실 등이 번쩍번쩍하면서 꺼진 적이 있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가 햄찌가 사라졌다고 한다.
탈출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집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톱밥 속에서 차갑게 식어 있는 햄찌를 발견한다.
딸아이가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며 운 것을 처음 봤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 울어대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동물이 죽어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너무 뇌리에 박히기 때문이다.
나는 동물의 눈을 마주치기 어렵다.
무슨 감정인지 헤아릴 수 없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동물을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그동안 햄찌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해서 무심한 듯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근데 떠올랐다. 죽기 며칠 전 나를 보며 열심히 쳇바퀴를 돌던 햄찌가.
그때 나에게 마지막 힘을 짜내 작별인사를 한 게 아니었을까.
거실등이 반짝 거리며 꺼졌을 때, 죽은 햄찌의 영혼이 우리에게 인사를 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쳐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햄찌는 우리 아파트 화단에 묻혔다.
한동안 딸아이는 그곳에 가서 햄찌에게 인사하고 오고, 갑자기 밤에도 잠깐 햄찌가 잘 있는지 보고 오겠다면 화단에 다녀오곤 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햄찌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