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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는 불꽃, 겹쳐지는 마음

위안과 걱정, 모순을 끌어안고 사는 우리의 시대

by 그냥 하윤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넘기다 멈춰 섰다. 영상 속 장면은 1호선 지하철 안, 승객들이 창가에 바짝 붙어 불꽃축제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객실 안의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창문 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 뒤 객실 안의 형광등이 꺼졌다. 기관사가 바깥 풍경이 더 잘 보이도록 잠시 불을 내려준 것이다. 갑작스레 깜깜해진 객실 안은 곧 환호성으로 번졌다. 차창 너머 불꽃은 한층 또렷하게 드러났고, 그 빛이 창을 타고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의 어깨와 뒷모습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짧은 클립이었지만, 그 풍경은 화면 너머로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어둠과 빛, 환호와 진동이 한순간 겹쳐지며 객실을 통째로 바꿔놓는 장면.


이 장면이 낯설지 않았던 건, 나 역시 같은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 창을 바라보던 순간


2년 전 가을, 고척돔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오는 지하철. 경기는 졌고, 마음은 괜히 무거웠다. 지하철 안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말수가 적고 무표정한 얼굴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고요를 가르듯, 한강다리를 건너는 순간 창밖이 불꽃으로 가득 수 놓였다. 그제야 나는 이날이 여의도 불꽃축제 날이었음을 상기했다.


하루 종일 각자의 일상에 치이며 지하철에 몸을 싣던 사람들이, 그날만큼은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 불꽃이 터지자 무표정하던 얼굴들이 한순간 환해졌고, 객실 안에는 감탄 소리와 함께 묘한 일체감이 흘렀다.


나 역시 그 순간만큼은 낮에 봤던 경기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허무함이 잠시 밀려났고, 대신 알 수 없는 충만함 같은 게 그 자리를 채웠다. 하루의 잔여감 위로 덧칠된 짧은 위로처럼.


허무 위로 덧칠된, 짧은 위로의 장면


불꽃들이 잇따라 어둠을 가르며 터지자, 내 마음은 두 갈래로 흔들렸다. “저것들은 결국 미세먼지와 탄소일 뿐이겠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가, 곧바로 “그렇다고 이런 풍경조차 보지 못한다면 숨 막히는 일상만 남지 않을까?” 하는 위안이 뒤따랐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빛과 색, 폭발적인 시각 자극에 매혹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화려한 궤적이 허공에 남을 때, 어딘가에는 또 다른 흔적이 쌓여간다는 사실을. 연기와 재, 공기 중에 흩어지는 미세한 입자들. 불꽃은 빛과 소음으로 짧은 환희를 만들어내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무언가가 남는다.


불꽃을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초상 같다.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과, 그 아름다움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앎이 한 프레임 안에 겹쳐진다. 우리는 완벽하게 윤리적일 수 없고, 또 동시에 완전히 무감각할 수도 없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 선택하고, 타협하며 산다.


이런 양가적 감정은 우리가 요즘 사는 시대의 전형적인 풍경 같다. 기후위기의식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작은 위로 하나라도 붙잡아야 현생을 버틸 수 있으니까.


빛과 재, 환희와 죄책감이 공존하는 밤


2년 전 그날, 지하철 창밖으로 본 불꽃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마음은 아직도 선명하다. 눈이 부셨고, 동시에 복잡했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이다.


나는 이제 이 모순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갈등 자체가 지금을 사는 우리의 방식이니까. 위로와 걱정, 죄책감과 위안이 동시에 존재하는 시대.


불꽃은 금세 흩어지지만, 그 상반된 마음의 잔향은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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