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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건 더위가 아니라 여름의 남은 날들이었다

여름이 끝날 때 진짜 사라지는 것

by 그냥 하윤

9월 초, 여기저기서 "오늘은 가을 하늘 같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사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덥고 끈적한 계절보다는 가을의 차가운 공기를 더 반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 섞여 있던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여름의 끝을 아쉬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 단골 카페에서 여름 한정 메뉴가 곧 끝난다는 안내문을 봤다. 그 음료를 특별히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괜히 허전했다. 이미 몇 번밖에 마시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는, 이제는 앞으로도 마실 수 없다는 점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계절이 끝났다는 건 이런 사소한 장면으로 먼저 다가온다. 계산대 위의 안내문, 장바구니에서 빠져버린 계절 과일, 신발장 안쪽으로 밀려난 샌들. 그것들은 과거를 되돌려주진 않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이 닫혔음을 조용히 알려준다.


지나간 건 기록에 남고 닫힌 건 빛에 스며든다.


덥고 지쳤다 말하면서도 막상 가을이 코앞에 닥치면 허전해지는 건, 이미 지나간 한여름의 태양이 아니라 더는 오지 않을 2025년 여름의 나머지 날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 살지 못한 시간이 조용히 닫히는 기분. 어쩌면 그 감각이 상실의 본질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보다 미래를 더 아쉬워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도 지난 더위가 그리운 게 아니라, 다시는 오지 않을 이번 여름의 남은 날들이 아쉬웠다. 이미 본 꽃잎은 사진 속에 남아 있지만, 내일 피었다가 볼 수 없을 꽃들이 더 큰 허전함을 남긴다.


조금 더 깊은 층위로 내려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떤 관계가 끝날 때, 이미 함께한 시간들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상실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가능했던 미래를 닫아버리는 일이다.


사라지는 건 더위가 아니라 오지 않을 날들.


우리는 종종 과거의 결정을 떠올리며 후회하지만, 정작 오래 남는 건 그때 닫힌 가능성들이다.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면,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그런 상상들은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닫혀버린 미래를 애도하는 일에 가깝다.


상실은 언제나 미래의 삭제다.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진첩 속에, 기억 속에, 이야기 속에. 하지만 미래는 다르다. 가능성은 닫히면 끝이고 다시 불러올 수 없다. 우리가 애도하는 것은 결국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이다. 그렇다면 애도라는 건 과거를 곱씹는 일이 아니라, 닫힌 미래를 떠나보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지나간다는 건 단순한 더위의 종결이 아니다. 아직 살지 못한 여름의 가능성이 접히는 일이다. 계절은 그렇게 우리 앞에서 문을 닫는다. 낮아진 햇살이 창문을 비스듬히 스치고 바람이 한결 선선해진 오후, 여름이 남긴 빈자리를 채우듯 가을은 고요하게 스며든다.


닫힌 자리 위에 가을빛이 물든다. 그 빛 속에서 우리는 상실을 조금 다른 얼굴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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