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더욱 필요하고 중요해질 능력. 아마 가장 오래 살아남을 능력.
p.94~102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손자의 전쟁론은 한 마디로 ‘이겨놓고 싸운다. 싸우기 전에 이기는 것이 최고다.’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쟁은 당시뿐만 아니라 전(前)과 후(後) 모두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쟁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속전속결과 비전투 전쟁(외교, 심리전 등)을 실제 전쟁만큼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적조차도 온전하게 보존한 상태로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했는데, 이는 적을 초토화한 후의 승리는 결국 막대한 복구 비용을 치러야 하므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현실주의적 관점은 병력의 수에 따라 싸우는 법을 달리 설명한 데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것은 적과 최소한 엇비슷해야 싸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싸움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전력 비교를 바탕으로만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그 외에 대의명분 같은 것들은 절대로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정반대의 전쟁들도 많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명량 해전,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 등이 있었다. 모두 병력과 장비의 절대 열세 속에서 이뤄낸 쾌거로, 전쟁은 단순히 물리적 요소들로만 결정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만일 위 세 전쟁을 이끈 리더들이 객관적인 조건들만 생각했다면 감히 전쟁에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자는 그러라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전쟁도, 인생도 그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 없다.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죽창을 들고 일본군의 기관총에 맞서 싸운 우금치의 의병들을 보면 손자는 뭐라고 말할까? 이렇듯 어떤 주장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과 비판을 덧붙여 수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마 위 전쟁의 세 장수들도 같은 생각으로 본인들만의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조의 사례가 나오는데, 그는 손자가 병력 수에 따라 싸우는 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주석을 달았다. 이를테면 손자는 적보다 10배 많은 병력을 보유했다면 적을 포위하라고 했지만, 조조는 그건 병력의 수만 차이가 났을 때이고 장수의 역량, 장비의 수준, 사기의 정도에 따라 5배 정도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조조는 이렇게 손자의 관점도 비판적으로, 자신만의 경험과 관점을 덧붙여 수용하는 능력이 있기에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리더는 사람을 믿고 쓰며 그에 따른 책임만 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손자는 군주가 전쟁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전쟁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논공행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가려내는 능력과 그 사람을 믿고 쓰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또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리더도 사람이고, 그가 부리는 아랫사람들도 모두 사람이다.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리더가 아랫사람을 믿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하면 아랫사람들의 신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나 같아도 나에게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는 상사는 싫다. 적당히 믿고 맡겨주는 사람이 좋다. 리더는 본인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본인은 무오류라는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은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 본 책에 나온 『한비자』 「이병」 편은 자기 직분의 범위를 알고 그에 충실한 것과 사실만을 말하고 언행일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신의성실한 사람이다. 여기에 역자의 견해를 덧붙이면 현실감각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랫사람들이 도당(徒黨)을 꾸리지 않고 작당 모의를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 현대사에서 하나회가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매우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리더는 적합한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골라 믿고 쓰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아랫사람들이 패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리더는 용인술(用人術)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