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은 프레이밍에 능숙하다.
p.310~322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손자는 정보전의 중요상을 강조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의 사정을 깊숙이 알아야 하며, 이러한 정보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내가 첩자를 보내는 것과 적의 내부자를 통해 정보를 캐내는 것을 포함한다. 아군에 도움이 되어줄 확실한 휴민트(Humint, Human Intelligence)가 있다면, 첨단장비로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보다 수십 배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휴민트의 중요성을 손자의 말을 통해 살펴보자.
… 만일 작위와 봉록과 금전을 아껴서 적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어질지 못한 것의 극치이니 다른 사람의 장수가 될 수 없고, 주군을 보좌하는 것이 될 수 없으며, 승리하는 군주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와 어진 장수가 군대를 움직여 적을 이기고 적보다 공을 이룰 수 있는 까닭은 (그들보다) 먼저 (적진의 상황을) 알았기 때문이다.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에게 기댈 수도 없으며 일의 표면에 의지할 수도 없으며 추축에 시험해 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사람에게서 취해서 적의 상황을 알아내는 것이다. (p.313)
모든 나라들이 그렇듯, 우리나라도 첩보전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이는 적의 상황을 한 시라도 빨리 알아야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자는 이렇듯 첩자들에게 쓰는 비용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일을 진행시키고자 한다면 나도 사람들에게 쓰는 시간과 비용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손자가 말했듯, 내밀하고 깊숙한 내부자 정보는 오로지 사람에게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서는 내부자를 포섭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한번 알 수 있듯, 사람을 사귀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되게 할 수도 있고, 안 되게 할 수도 있다. 나의 우군이 될 수도 있고, 평생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 대목을 통해 손자는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듯하다. 어쩌면 성공과 실패가 여기서 갈리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잘 사고 친밀감을 형성하여 경계심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기밀 정보까지도. 왜냐하면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이다. 사실 옛날에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말을 걸고, 친해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그 사람들이 어질고 현명하다.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그들이 옳고 내가 틀렸다.
한편, 손자는 간첩을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눈다.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이다. 먼저, ‘향간(鄕間)’은 그 고향 사람을 활용하는 것이며, ‘내간(內間)’은 적의 관료를 활용하는 것이고, ‘반간(反間)’은 이중첩자로 적의 간첩을 아군의 첩자로 활용하는 것이며, ‘사간(死間)’은 죽기를 각오하고 적에게 거짓 정보나 역정보를 흘려 적진을 교란하는 간첩이며, ‘생간(生間)’은 살아서 피아(彼我)를 오가며 정보를 전달하는 간첩으로, 사간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손자는 간첩도 사람이므로 잘 대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도 뛰어나지 않으면 간첩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매우 오묘하고 신비롭다. 다음 대목을 보자.
… 그러므로 삼군의 일에 있어서 간첩보다 더 친한 것은 없고 간첩보다 더 두터운 상을 내려야 하는 것은 없으며 일이란 간첩보다 더 비밀스러운 것은 없다. 성현의 지혜가 아니면 간첩을 활용할 수 없다. 어질고 의롭지 않으면 간첩을 부릴 수 없다. 교묘하고 미묘하지 않으면 간첩의 실질을 얻을 수 없다. 미묘하구나, 미묘하구나! 간첩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음이여! (p.317)
모든 것은 사람으로 통한다는 손자의 생각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첩자는 목숨을 걸고 사지로 들어가는 사람이므로 마땅히 그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주어야 하며, 진정으로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첩자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한 길 속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일진대 그 사람이 진심으로 감복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이게 진짜 천하를 얻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어쩌면 진정한 행복과 성취는 돈, 권력, 지위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르며, 나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로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를 위해서는 손자도 말했듯 나부터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 내가 먼저 타인을 감화시켜야 타인도 나를 따르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선불만이 존재하는 거래이며, 세상은 먼저 줘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손자는 다섯 가지 간첩 중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간첩을 제시하는데, 이 대목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다음을 보자.
적인데도 우리 측에 와 있는 간첩은 반드시 찾아내어 기회를 틈타 그를 이용하고 그를 유도하여 적국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반간(反間)'을 얻어서 활용할 수 있다. 이들 때문에 적의 내부 사정을 알게 되므로 ’향간(鄕間)‘과 ’내간(內間)‘도 얻어서 부릴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적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되므로 ’사간(死間)‘은 거짓된 일들을 만들어 적에게 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적의 상황을 알 수 있게 되므로 ’생간(生間)‘은 기일을 정해 보고할 수 있도록 한다. 다섯 유형의 간첩에 관한 일은 군주라면 반드시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아는 데 있어서 반드시 ’반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반간‘은 융숭한 대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p.321)
적의 첩자를 이중첩자로 만들 수 있으면, 그로부터 모든 내부자 간첩(향간, 내간)을 얻을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거짓 정보를 마음대로 흘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에 반간계(反間計)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중첩자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살려서 보낸다고 해도 확실하게 우리 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이는 편이 훨씬 쉽고 안전하다. 그러나 적의 첩자를 감동시켜 진짜 우리 첩자로 만들 수 있다면, 상황은 반전된다. 그는 아군이 보낸 그 어떤 간첩보다 확실한 정보원이 된다. 적에게 확실하게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유튜브 쇼츠에서 어떤 배우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내 편으로 만드는 것, 그게 진짜 재밌는 거다.”라는 말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적의 첩자를 이중첩자로 만드는 지혜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에서 매우 현명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인간관계의 지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해를 가하지는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적일수록 더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나 보다. 매우 오묘한 진리이다. 물론 정말 어렵다. 사람은 무릇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과만 있고 싶어 하고,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게 편하니까. 하지만 손자의 저 말을 통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뛰어난 사람들은 이런 프레임 전환에 능하다. 부정적인 상황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서 그것을 극복한다. 멘털 갑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프레임 전환에 능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