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배우는 인간관계와 리더십의 원리
p.280~291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손자는 군대를 지휘할 때 고도의 밀행성을 강조했다. 심지어 병졸들도 모르게 말이다. 다음을 보자.
군대를 지휘하는 일은 고요하고 드러내지 않으며, 엄정하고 조리가 있어야 한다. 사졸의 눈과 귀를 어리석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장군의 작전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며, 그 계획을 바꾸고 그 계략을 변경함에 병사들로 하여금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그 머무는 곳을 바꾸고 그 행군로를 우회하여 병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게 한다. (p.280)
한 마디로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인데, 이 부분은 의문이 든다. 물론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작전 수행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통 부재로 인해 더 큰 참극을 빚은 사례들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일본군 지휘부의 의사소통 문제로 미국의 참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장군들에게 전략적 목표와 철수 계획을 명확히 전달되지 않고, 병참 보급 계획도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급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와 프랑스군의 사기 저하로 실패했다. 이 외에도 의사소통 부재로 인해 비극을 맞은 사례들을 더 찾아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원활한 소통과 개방적 조직 문화로 실수를 줄이고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손자의 이 지침은 완전히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단기에 신속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만 유효하고, 그 외에는 개방성과 충분한 소통이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손자와 이 부분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다.
한편, 손자는 장수는 병사들을 대할 때 마치 장기짝이나 체스 피스처럼 대하라고 했다. 그래서 필요하면 그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음을 보자.
장수가 병사들과 함께 결전을 벌이고자 한다면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처럼 한다. 장수가 병사들과 제후(적)의 땅에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마치 쇠노를 격발하는 것처럼 하고, 배를 불사르고 솥단지를 깨뜨려버려 마치 무리지은 양을 몰고 가듯 (저쪽으로) 몰아갔다가 이쪽으로 몰면서 아무도 그 방향을 알지 못하게 한다. 삼군의 무리를 모아서 그들을 험준한 지역에 투입시키니 이것이 장군의 일을 일컫는 것이다. (p.280)
…그들을 망할 땅에 집어넣은 이후에 생존하게 된다. 그들을 죽을 땅에 빠지게 한 이후에 살아나게 된다. 무릇 군중은 해로움에 빠진 연후에 능히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 (p.285~286)
물론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도 있듯,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본인이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극약처방으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법이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신중하게 사용되어야 할 방법인 것 같다. 모두가 궁지에 몰린다고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자포자기하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인생을 끝낼 수도 있다. 손자는 이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까? 그리고 그에 대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은 어쩌면 이런 사회적 압박 때문이 아닐까? 한국 사회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궁지에 몰아넣고 어떻게든 살아오라고, 못 살면 넌 낙오자 혹은 실패자라며 쉽게 낙인을 찍지는 않는가? 우리 사회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때로는 극약처방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물에 빠진 사람은 구해주고, 나락에 빠진 사람은 힘을 모아 구해주는 문화를 먼저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해 손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 손자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연관된 것들까지 포괄해야 한다. 다음을 보자.
이 때문에 제후들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미리 외교를 펼칠 수 없으며 산림, 험준한 지역, 늪지대 등과 같은 지형을 알지 못하는 자는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 향도(鄕導;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안내자)를 활용하지 않는 자는 지형의 이로움을 얻을 수 없다. (p.285)
이순신도 전쟁 준비 시 항상 챙겼던 것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불러 해류와 조류의 변화와 지형지물에 대해 상세히 파악한 것이었다. 리더는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섬세함과 꼼꼼함이 요구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리더들이 부족한 것 같고, 사람들도 이런 리더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사람과의 소통 능력이 더 중요해질 현대 사회에서 섬세함과 꼼꼼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좋은 조직은 시스템과 원칙이 잘 정립되어 있고,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돌아간다. 또한 확실한 상벌체계도 구비되어 있다. 좋은 조직에 대해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전군)을 통제함에 있어 일(事)로써 하고 말로써 고하지 않는다. 그들을 통제함에 있어 이익으로써 하지, 해로움으로써 고하지 않는다. (p.285)
조직 경영을 할 때 리더는 정확한 지시와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해야지 대충 설명하고 알아서 하기를 바라거나, 기한을 명시하지 않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적당히 알아서 때우거나, 본인의 편의를 위해 불합리한 부분을 계속 유지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벌이나 통제(또는 규제) 보다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훨씬 좋다는 말은 오늘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참고할 만하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은 리더의 영민함, 약삭빠름, 교묘함으로 연결된다. 손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용병하는 일은 적의 의도를 삼가며 상세히 고찰하고 적과 나란히 하여 한 방향으로 다가가 천 리를 가서 장수를 죽인다. 이를 일컬어 ‘교묘하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전이 임박한 날은 관문을 봉쇄하고 부절(符節)을 끊어버리며 그 사신이 통할 수 없도록 만든다. … 적이 아끼는 곳을 중요시하여 아무도 모르게 결전할 날을 기약하고 묵묵히 적에게 가서 결전을 치른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마치 처녀처럼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적군들이 문을 열면 나중에는 도망가는 토끼와 같아 적군이 항거할 수 없게 된다. (p.287)
적에게 맞춰주는 듯하면서 교묘하게 뒤통수를 치는 한편, 전쟁에 임박해서는 사신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할 만큼 치밀하고, 처녀처럼 조용히 움직이다가 도망가는 토끼와 같이 날래게 적을 공략하라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나는 철저하게 감추고 상대방을 드러내게 하여 상대방을 공략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 삶의 지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상대방이 자기를 마음껏 드러내게 두어라. 나의 패는 철저히 감추고 상대방의 패는 확실히 본 후 그에 대응하라.’라는 것이다. 항상 솔직한 게 좋은 게 아니다. 공자가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다’라고 했듯, 언제나 솔직하고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강해진다. 사람은 솔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꾸민 사람을 좋아하고, 설령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럴듯한 말,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솔직하게 좋다고 말은 하지만. 인간은 참 모순적이어서 신기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많이 들어야 하는지, 왜 상대방을 잘 관찰해야 하는지, 왜 말조심을 해야 하는지, 왜 외모를 잘 가꿔야 하는지 등 인간관계의 여러 지침들이 잘 이해된다. 손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종합하면, 리더는 항상 철두철미해야 하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하므로 섬세함과 꼼꼼함이 요구된다. 그리고 의사결정은 신속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하며, 대응은 치밀해야 하고 행동은 빨라야 한다. 구성원들과 너무 친해서도, 너무 소원해서도 안 되며 항상 중간자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다. 이때 지시는 정확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조직은 규칙과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또한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다 드러내서는 안 되며, 항상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맞춰주면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 이게 사람 관리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