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말하는, 현명하게 사는 법.
p.292~309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전쟁에 신중하고, 전쟁을 하더라도 최대한 손실 없이, 심지어 상대방의 손실조차 최소화하며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하는 손자이지만, 강력한 공격 수단의 사용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화공(火攻)이다. 다음 대목을 보면, 손자는 수공(水攻)보다는 화공이 더 강력한 공격이라고 본 것 같다. 오늘날로 하자면 핵무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최종병기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불로써 공격을 지원하면 (그 효과는) 분명하고 물로써 공격을 지원하면 (그 효과는) 강력하다. 수공(水攻)은 (적을) 끊어버릴 수 있지만, (적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p.297)
이렇게 강력한 화공의 방법을 손자는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각각 화인(火人), 화적(火積), 화치(火輜), 화고(火庫), 화대(火隊)이다. 먼저, ‘화인(火人)’은 적의 인명과 군마를 모두 태워버리는 것이다. 인명에는 군인과 민간인 모두를 포함한다. 즉, 모든 생명체를 불살라 버린다는 뜻이다. 매우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공격이다. ‘화적(火積)’은 적의 식량과 건초 등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화치(火輜)’는 적의 모든 군수물자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화고(火庫)’는 적의 무기 창고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화대(火隊)’는 적의 후방부대를 불로 공격하거나 양식을 수송하는 땅굴에 연기를 피워 공격하는 것을 일컫는다. 화인을 제외한 나머지 방법들은 우리도 역사에서 익숙하게 봤던 것들이다.
아마도 손자는 이 다섯 가지 방법 중에서 화인을 가장 보수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상대방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나서 빈 땅을 얻는다 해도 실효성이 크기 않기 때문이다. 현대 전쟁에서도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고, 민간인은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국제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전후 복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 국제법의 논리를 기원전 손자가 이미 제시했으며 그의 인간 중심 사상과 실용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서는 강력한 화공도 불사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적이고 냉혹한 모습도 엿보인다. 전쟁은 기본적으로 내가 이기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민간인을 죽여서라도 적의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는, 매우 무서운 관점으로 손자는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그 정도로 전쟁은 장난이 아니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고,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날 지도자들, 특히 전쟁과 강한 군사력을 선호하는 지도자들과 그의 지지자들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 정도로 전쟁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손자이기에 그는 속전속결을 강조했고, 필요하다면 화공을, 그중에서도 적의 모든 생명들을 다 죽더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군주와 장수는 전쟁에 대해 아주 냉정하고 엄중하며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며, 개인의 감정이나 명분에 의해 전쟁을 단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다음을 보자.
무릇 전쟁에서 승리하고 공격하여 취하고도 그 공을 다스리지 못하면(얻는 이익이 없으면) 불길하다. 이것을 이름하여 비류(費留), 즉 ‘물자를 낭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이 점을 염려하고 뛰어난 장수는 이것을 온전하게 다스린다. 이로움이 없으면 동원하지 말고 얻는 것이 없으면 용병하지 말며 위급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군주 된 자는 노엽다고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된 자는 화가 난다고 전쟁에 임해서도 안 된다. 이익에 들어맞으면 움직이고, 이익에 들어맞지 않으면 멈춘다. 노여웠다가 다시 기뻐할 수도 있고 화가 났다가 다시 즐거울 수는 있지만, 망한 나라는 다시 존재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소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전쟁에 신중하고 훌륭한 장수는 전쟁을 경계해야 한다. 이는 나라를 온전하게 하고 군대를 온전하게 하는 이치이다. (p.299)
훌륭한 군주와 장수는 모름지기 이성에 의하여 철저하게 계산된 의사결정만을 해야 한다는 손자의 이 가르침은 나에게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감정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교훈으로 다가왔다. 즉, 어떤 결정을 할 때 감정을 앞세우면 반드시 후과가 있으므로, 감정을 분리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잘 진행되고 있던 일을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돌연 중단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 한다거나, 나 또는 타인과의 약속을 감정에 의해서 어기는 등의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욱해서, 충동적으로,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등 떠밀려서 결정하지 말고 감정은 감정이고 일은 일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손자가 말한 것처럼, ‘노여웠다가 다시 기뻐할 수도 있고, 화가 났다가 다시 즐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감정은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고, 순간적이라는 것을. 하지만 대부분 그 순간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내 안에서 감정과 이성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살리고, 사람 목숨을 수할 수 있으며, 내 인생을 구할 수 있다. 인간이 하는 후회 중에 충동적으로,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 저지른 실수가 원인인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생각하면, 감정만 잘 다스릴 수 있어도 삶의 질이 크게 올라가고 인생의 난이도를 많이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인생을 위해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이는 군주는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되며,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로도 귀결된다. 군주는 화가 난다고 전쟁이라는 국가 대사를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전쟁보다는 작은 업무에도 이를 반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리더는 정말 많이 참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고독한 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에 대해 한비(韓非)는, 군주는 자신의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월(越)왕 구천(勾踐)이 용맹함을 좋아하자 백성들 가운데에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고, 초(楚)나라 영왕(榮王)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하자 도성 안에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제나라 환공(桓公)이 남자를 질투하고 여색을 매우 밝히자 수조(竪刁)라는 자는 스스로 거세해 후궁들을 관리하는 내시가 됐고, 환공이 진기한 맛을 즐겨 찾자 역아(易牙)는 자기의 맏자식을 쪄서 진상했다. 연(燕)나라 왕인 자쾌(子噲)가 어진 사람을 좋아하자 자지(子之)는 나라를 물려주어도 받지 않을 것처럼 거짓을 부렸다. 그러므로 군주가 어떤 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작은 일이라도 군주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감추고, 군주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능력이 없어도 있는 척 꾸미며, 군주가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면 신하들은 자신을 꾸미는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자지는 자신이 어진 것처럼 꾸며서 군주의 지위를 빼앗았고, 수조와 역아는 군주의 기호를 이용해 군주의 권력을 침범했던 것이다. 그 결과 자쾌는 전란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고, 환공은 그의 시체가 썩어 구더기가 문 밖으로 기어 나올 때까지도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한비자』, 「이병(二柄)」, p.300)
이 부분은 군주가 자신의 호불호를 드러냈을 때의 말로를 보여준다. 슬프게도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은 자신의 속을 함부로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과, 상대방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환공과 자쾌는 자신의 속을 다 보여줬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반대로 그들의 신하들은 군주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해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또한 군주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잘 구분하여 아첨꾼과 어진 신하들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본인이 아첨꾼들을 멀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리더가 아첨을 좋아하면 아첨꾼들과 입 안의 혀처럼 구는 사람들만 주변에 모이고, 자기 객관화가 잘 되고 합리적이며 본인을 향한 비판에도 열려 있는 개방성을 갖추고 있으면 직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결국 본인이 왕초가 될지, 진짜 리더가 될지는 물론 어떤 조직을 만들 것인가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쾌와 환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모든 것에 열려 있어야 하며, 본인을 향한 비판도 달게 받을 줄 아는 한편, 자신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게 한 후 그것을 정확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