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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냐? 처세술이냐?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연줄'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by 독자J

p.310~333(끝)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오래전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성공하는데 실력이 중요한가, 정치력(또는 처세술)이라고도 하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기술이 더 중요한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화가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중국 역사상 명장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한신(韓信)의 이야기다. 그의 비참한 말로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사자성어를 유래시켰다.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 고조 6년, 어떤 사람이 편지를 써서 초왕(楚王) 한신이 모반하려 한다는 것을 알렸다. 고제(高帝, 고조 유방)가 이에 여러 장수에게 물으니, 장수들은 군대를 일으켜 빨리 그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고제는 묵묵부답이었다. 또 진평에게 묻자, 그는 여러 가지 질문을 황제에게 던진 후, 계책을 내놓았다. 그 계책은 운몽(雲夢)이라는 지역으로 거짓 순행(巡行)을 나가는 척하여 제후들을 불러 모으면, 한신은 황제가 그저 순행을 좋아하며 개국공신인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순순히 나올 것이고, 그 틈에 한신을 사로잡자는 것이었다. 황제는 건의를 받아들였고, 제후들에게 자신이 친히 행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 한 구석에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한신에게 어떤 사람이 종리매(鍾離昧)의 목을 가지고 가면 황제가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리매는 본래 초나라의 신하로, 한나라가 초나라를 이긴 후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고조는 종리매가 초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듣지 않고 종리매를 숨겨주었다. 또한 한신은 초나라에 부임하여 군대를 대거 육성하고, 초나라를 순행하는 등 역모를 의심할 만한 행동들을 했다. 한신이 종리매에게 찾아가 상의하자 종리매는 한나라가 초나라를 노리지 않는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며, 만일 당신이 나를 넘기려 한다면 나는 죽을 것이지만 당신도 망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목을 찔러 자결했다.
한신이 종리매의 목을 들고 고조를 만나자, 고조는 한신을 체포했다. 한신은 이렇게 한탄했다. “정말 사람들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그러자 황제가 말했다. “당신이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었소.” 한신은 차꼬와 수갑이 채워져 수도 낙양으로 압송되었고, 고조는 그의 직위를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키고, 그가 차지하고 있던 땅은 고조의 친척들에게 나누어줬다. 한신은 이후 고조의 부인에게 사로잡혀 죽고 만다.


한신은 무장으로서는 가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인물이었다. 천재적인 전술 능력과 명철한 판단력으로 압도적인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한신은, 밥을 빌어먹던 비렁뱅이에서 제(齊)와 초(楚) 두 나라의 왕에 봉해지고, 유방에게 전국 통일의 대업을 안겨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히 능력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이 일화에서도 보듯,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사건의 발단은 첩자의 편지인데, 이는 유방이 한신을 오랫동안 주시했다는 의미이다. 한신이 뛰어난 처세술과 정치력의 소유자였다면, 첩자조차도 자신의 편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 애초에 첩자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본질적으로 고조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신은 자신의 능력만 믿고 매우 교만하게 행동했는데, 자신의 주군을 놀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의 배경이 되는 한신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고조와 한신이 어느 날 여러 장수의 능력을 평가하면서 등급을 매겼다. 고조가 한신에게 자신은 얼마나 많은 군대를 이끌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10만 명을 이끌 수 있다고 답했다. 고조가 당신은 어떻냐고 묻자, ‘자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고 답했다. 고조는 다시 웃으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느냐고 물었다. 이때 한신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폐하꼐서는 군대를 이끌 수는 없습니다만 장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께 사로잡힌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주신 바이니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p.236)


그리고 종리매를 대하는 방식도 매우 이상하다. 고조에게 충성할 거라면 처음부터 종리매를 고조에게 넘겨서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든지, 종리매에게 의리를 지키려 한다면 끝까지 숨겨줬어야 했는데 막상 자신이 위험에 처하니 자신에게 귀순한 사람의 목을 베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사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힘들다. 이처럼 한신은 출중한 능력과 달리 처세술과 정치력은 매우 부족한 사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방은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였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실력이 있으면 다 된다는 말을 많이 듣고, 그것이 실제로 통용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한신의 사례를 보면, 실력이 뛰어나면 오히려 시기질투하는 사람들만 많아지고 적만 더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유방의 수하들 중에 한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지휘관들은 거의 없지만, 유방에게 충성하고 유방과 마음을 나눈 사람들은 모두 살아서 영화를 누렸(을 것이)다. 사람들은 실력이 좋은 것보다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그래서 실력보다 줄을 잘 잡아서 성공한다는 것이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란 존재는 알다가도 모를 만큼 복잡하다. 그래서 더 이해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여기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모사(謨士)를 잃어 천하통일의 대업을 망친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초패왕 항우이다. 항우의 능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한신 못지 많은 유능한 지휘관이자 뛰어난 장수이자 군인이었다. 전투 능력도 발군이었으며, 힘도 장사여서 한 고조 유방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의 이간질로 인해 유능한 참모인 범증(范增)을 잃었고, 초한 전쟁에서 패했다. 그 일화를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아버지와 아내도 남겨두고 겨우 도망하여 몇 달 동안 항전했으나 식량이 바닥나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도 오랜 싸움에 지쳐 이를 받아들였으나, 그의 책사 범증이 유방의 절박한 상황을 간파하고 유방을 포위할 것을 건의하여 항우가 받아들였다. 유방은 책사 진평(陳平)에게 방도를 물었고, 그는 초나라의 군신들을 이간질하자고 제안했다. 유방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많은 양의 황금을 진평에게 주었고, 진평은 초나라 군대에 많은 수의 첩자들을 보내 항우의 최측근들이 공이 많음에도 왕으로 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나라와 내통하여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각기 왕이 되고자 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다. 항우는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한나라에 보낸 사신이, 유방이 범증의 사신인 줄 알고 자신을 융숭하게 대접하려 했으나 항우의 사신인 것을 알고 소홀히 대접했다고 보고하자, 그 의심은 더욱 커졌다. 마침내 범증이 유방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항우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증은 항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말을 듣고는 노여워하며 사직했다.


만일 항우가 뜬소문을 믿지 않고 조금 더 신중하게 진위 여부를 판별하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하여 사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중국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소문만으로 자신과 생사를 함께한 참모를 버릴 정도로 항우는 인망이 두텁지 못했고, 사람을 잘 믿지 않았다. 만일 항우가 참모들과 병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첩자가 활동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손자도 아군이 강하게 결속되어 있으면 첩자가 들어올 틈이 없다고 했다. 항우는 오직 그의 압도적인 능력만으로 패왕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나,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고작 4년 10개월에 그쳤으니 말이다. 진평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사는데 얼마나 미숙한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항왕의 사람됨이 사람을 공격하고 아껴 선비들 중에서 청렴하고 지조 있고 예를 좋아하는 자들이 대부분 그에게로 귀순하였습니다. 공을 논하여 봉읍을 내리는 데 있어서 오히려 주저하여 선비들 또한 이 때문에 그에게 기대지 않습니다. (p.328)


항우가 논공행상만 정확하게 했어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적절한 보상도 중요한 법인데, 그는 그의 힘과 카리스마만으로 부하들 위에 군림하기만 했으니 당연히 인재들이 있을 수가 없었다. 항우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차라리 덜 가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손자가 말했듯, 상대방이 확실하게 반응할 만한 것들을 내어주고 나는 나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 나는 대업만 이루면 다른 것들은 상관없다는, 대국적 자세가 항우에게 있었다면 그는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공정 거래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내어줘야 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인생은 등가 교환만이 성립하지 절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수는 없다.


사실 모든 사람이 유방이나 항우나 한신처럼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실력과 처세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사례는 능력 지상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정말 실력‘만’ 있으면 만사형통일까? 그걸로 인생이 편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실력 또는 능력을 너무 떠받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실력은 하나도 없는데 처세‘만’ 가지고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람들이 정말 내 편이 되어줄까? 결국 어느 것 하나를 택하기보다 둘 다 가질 수밖에 없다는, 다소 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모두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하는 타인도, 나 자신도. 모두가 부조리하다. 그렇기에 이 세상도 부조리하다. 일 못하고 자기 역할을 다 못하는 사람도 미움받지만, 일은 잘하는데 지나치게 딱딱하고 매사에 예의만 차리며 항상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사람도 그렇게 환영받지 못한다. 물론 탑으로 갈 정도의,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쌓는 것도 어렵다. 인생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결국 조금 더 분발하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하고, 삶은 고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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