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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대만을 침공할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조건

by 삼중전공생

트럼프, '대만의 독립'을 지지 안 하지 않는다(?)


2025년 2월 초, 미국 국무부 웹사이트에서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는 취지에서 서술된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문구는 2022년 5월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서도 한 번 삭제되었다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복원된 전적이 있었습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미국은 이런 식으로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려는 의지를 저지하기 위해 꾸준히 메시지(중국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도발)를 내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중국이 이런 도발에 일일이 반응하며 길길이 날뛸 것 같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중국은 '미국은 언젠가 대만을 포기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요?



중국이 '미국은 대만을 포기한다'고 믿는 이유


한국전쟁 시기,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한 해상 봉쇄선의 개념으로 '섬 사슬 전략(Island chain strategy)'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중국과 소련의 해군이 태평양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동맹국의 해군 기지로 포위한다는 내용입니다.


제1열도선.png https://en.wikipedia.org/wiki/Island_chain_strategy


여기서 등장하는 '제1열도선(First island chain)'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바로 대만입니다. 미국이 대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제1열도선을 기준으로 한 중국에 대한 해상봉쇄는 실현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또 한편 대만의 TSMC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상할 반도체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미국이 TSMC의 생산품과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지위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중국은 이것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다가올 시대의 기술적, 산업적 혁신에서 미국이 앞서갈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현재까지는' 미국이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미국이 대만을 '지켜줄 것 같은' 블러핑을 하면서 대만 내 친독립세력을 '체스말'로 이용해 대만 내에서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 두 가지 이유를 '재평가'하는 날이 온다면, 이 '체스말'은 가볍게 버려질 것이라는 게 기본적인 중국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재평가'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중국의 판단입니다. 미국은 '보조금', '관세' 등의 카드로 TSMC가 미국 내에 공장을 짓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첨단 반도체 칩이 대만에서만 생산된다면, 미국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갖는 대만을 지속적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TSMC의 생산 기술과 설비를 미국이 부분적으로나마 관리할 수 있다면, 대만 본토가 갖는 가치는 상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장 이전 및 건설뿐만 아니라, 미국은 TSMC의 반도체 생산 기술 자체에도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고 영업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미국은 다양한 명분으로 TSMC에게 각종 정보를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정부에 우호적인 TSMC 주식 지분을 활용해서 이사회 구성에 개입하고 이를 통해 첨단 기술에 접근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TSMC에 대한 미국의 이러한 관심 내지는 위협은 충분히 현실가능성이 높거나 이미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 더해서, 중국은 자신의 폭발적인 해군력 증강에 따른 A2/AD(Anti-Access, Area Denial, 반(反) 접근·지역거부)가 점차 실현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 해군의 군함 건조가 수십 년간 정체되는 동안에, 중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조선소와 건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해군이 미 태평양 함대를 능가하는 규모를 갖춘다면, 대만을 포함한 제1열도선을 중국 봉쇄선으로 삼는 지금의 미국의 전략이 현실적으로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국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미국이 대만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모두 상실하게 되면, 대만은 버려질 것이고, 그때 가서 중국은 손쉽게 대만을 장악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 회로입니다. '그 두 가지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이유 때문에 이런 '인내심' 있는 대전략 수립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에 대한 태도가 조울증 환자처럼 오락가락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권위주의 국가입니다. 통치자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정권의 생명이 민주주의 국가보다 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는 '그날'이 도래하기를 기다릴 수 있는 겁니다.




미국은 정말로 대만을 포기할까?


중국도, 미국도, 심지어 대만도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니까 대만을 지켜주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효용 대비 비용'이 더 크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공화당이 집권하고 현실주의 이론가들이 외교 안보 라인에 채워진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정말로 중국의 기대대로 대만을 포기할지는, 미국이 대만의 효용을 얼마나 저평가하는지, 또 지켜주는 비용을 얼마나 고평가 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 국방부 인사인 엘브리지 콜비가 한 말이 중요성을 갖습니다. '미국은 혼자서 중국을 막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맹국과 우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데, '대만은 국방비를 GDP의 10%까지 인상하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은 지정학적 중요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스스로를 지킬 의지나 능력이 없는 나라까지 '미군이 피를 흘려서' 지킬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건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뼈저리게 느낀 교훈으로, 미국은 대만이 '제2의 베트남'이 될 것 같으면 충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희소식이겠는데, 이건 앞서 중국이 생각한 '두 가지 이유' 이전의 문제입니다. 지정학적 중요성이 중요하고 TSMC 같은 레버리지가 있더라도, 대만인들이 도망치거나 안일하게 굴면 미국은 미군을 투입하지 않습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조건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조건은 '미국이 대만을 포기한 것이 명백해질 때'입니다. 그렇기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경우를 살피는 것은, 미국이 어느 경우에 대만을 포기할 것인가, 혹은 최소한 중국이 그렇게 판단하도록 오해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어느 맥락에서 미국이 내게 될 것인가를 살피는 것과 동일한 작업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러한 경우 혹은 맥락은 다음 정도가 있을 법합니다.


① 오해 : 미국이 NATO 또는 주요 동맹국을 포기할 때


미국이 NATO 혹은 그와 동등한 수준의 동맹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런저런 이유로 파병이나 지원을 늦추면 중국은 대만도 미국이 동일한 입장을 취할 개연성이 크다고 오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면 당장 폴란드나 발트 3국이 '지정학적 재앙'에 처하게 됩니다. 트럼프가 어설프게 고립주의 정책을 고수하다 러시아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러시아가 이들을 '괴롭히게' 되었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중국은 충분히 대만 문제에도 이 미국의 태도가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이 양안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② 미국 내부 요인 : 대만이 국방비 증액에 소극적일 때


대만이 국방비 증액을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친중파의 논리에 밀려 차일피일 미루게 되면 미국은 대만이 자국 수호에 대해 진지한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유나 민주주의 연대 같은 가치 외교적 호소가 씨알도 안 먹히는 트럼프 행정부는 더욱 '인내심'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대만 관계가 삐걱대면 중국이 이것을 기회로 생각할 우려가 있습니다. 삐걱대는 와중에도 미국이 겉으로는 여전히 대만을 지킬 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그것을 '립서비스'라고 진지하게 오판하게 만들면 대만 문제의 리스크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③ 대만 수호의 비용 증가 : 제1열도선 내에서 미중 해군력 균형이 깨졌을 때


이건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두 이유' 중 하나가 실현된 경우입니다. 중국 해군이 질적, 양적으로 미 태평양 함대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미국은 대만 수호의 현실적 비용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판단하고 제2열도선으로 중국 봉쇄선을 후퇴시킬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중국 해군이 성장할 동안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벌어질 일입니다.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이나 일본의 조선소에서 미 해군 군함이 건조되기 시작하면 또 방향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를 일입니다. 더구나 중국 해군의 '질'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미 해군에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이 자신의 국방력을 과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③번 요인에 의한 중국의 대만 침공은 실현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④ 대만 수호의 효용 감소 : TSMC의 생산 기술과 설비를 충분히 미국 본토로 이전했을 때


이것도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두 이유' 중 하나가 실현된 경우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이것도 마찬가지로 미국이 기술과 설비를 빼가는 동안에 대만 정부가 놀고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은 현재 반도체 기술 전반에 있어 미국과 전폭적인 연구 협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만 정부가 TSMC의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할 의지가 강력함을 의미합니다. 즉 대만의 친독립파는 막연히 미국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미국이 TSMC에 요구하는 공장, 기술, 인력 등을 내주지 않을 명분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내어준 것보다 더 많은 기술적 혁신을 달성하면 어떨까요? 대만은 그 길을 걷고자 합니다. 이 시도가 성공적 일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하기 위해서는 중국 국가안전부가 꽤 신경 써서 방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


중국은 일단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딱히 비관적으로 본다고 해서 당장 대만을 침공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유로 자신들이 머지않아 대만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대만의 친독립파가 정신이 나가서 핵개발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하지만 근미래에 대만 문제가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악화될 조짐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트럼프의 예측할 수 없는 성향입니다. 강경한 반중 정책과 메시지를 내기 때문에 대만 문제에서도 강경할 것 같지만, 강경하고 싶은 것과 강경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자신이 NATO나 동맹국을 압박하면서 서방의 연대를 훼손한 틈을 타 중국이 뜻밖의 '모험'을 감수하면 미국은 제법 곤란한 딜레마를 강요받을 수도 있습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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