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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

한류를 과대평가하지 말자

by 삼중전공생 Mar 22. 2025

장마당 세대는 목숨을 걸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배급 체계가 붕괴하고 장마당 경제가 돌아가면서, 국가에 의한 배급을 경험한 적이 없는 소위 북한의 MZ 세대, 장마당 세대가 등장했다는 보도가 줄이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한류에 특히 더 잘 노출되는 계층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사실일까요?




탈북민의 증언, '생존자 편향'의 오류에 빠졌다


생존자 편향의 오류는 '성공적으로 통과한 샘플만 분석하고 그렇지 못한 샘플은 간과하는 오류'입니다. 우리가 북한 사회에 대해 전해 듣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탈북민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할 정도로 체제에 불만이 많거나 비슷한 동기가 분명한 사람이라면 그가 보는 시선이 '일반적인 북한 주민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들의 증언이 때로 과장되거나 왜곡되어도 교차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통해서만 바라본 북한 내부의 상황이란 것은 꽤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탈북민들은 북한 내에 한국 콘텐츠가 일상처럼 퍼져있고, 많은 주민들이 통제를 피해서 그것을 즐긴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들은 그 콘텐츠를 보고 '북한 당국에 속았음을 자각'했다거나 '남한 사회를 동경'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정말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북한 체제의 지속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당장 북한 정권은 붕괴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류가 북한에 퍼지기 시작한 지도 10~20년이 지나가는 지금, 어째서 북한 체제는 이렇게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걸까요?




북한 내 한류, 언론은 과장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누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시청하는 동안 3%의 확률로 쏠 수도 있는 영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걸 보겠습니까? 아무리 그 영상이 도파민을 많이 주더라도 마약이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워서 시청을 포기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이라고 다를까요? 더구나 누구의 지인이 그런 영상을 보다가 실제로 고문이나 처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일상적으로 듣거나 실제로 처형 장면을 보는 북한 주민들이라면, 그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 콘텐츠를 즐기는 용감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된다고 봐야 할까요?


그러니 "김정은 두려워한 '악성암'...北 MZ 뒤덮었다" 같은 뉴스 제목들은 대체 현실을 얼마나 자극적으로 과장해서 전파하는 것이겠습니까? 심지어 한류 콘텐츠를 시청한다고 해서 모두 체제에 의문을 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드라마도 다 남한 당국에 의해 조작된 연출이다'라거나 '남한이 잘 사는 게 당장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중동 석유 부국이 이렇게 잘 산다~' 이런 뉴스 보고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 주민 입장에서 여행(?)이나 이민을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남한이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북한 내 한류와 관련된 인터뷰, 통계 등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정말로 진실을 아는 건 북한 내에 정보원을 포섭해서 실상을 은밀하게 전해 듣는 정보사령부나 국정원뿐이겠으나, 그들이 그렇게 얻은 정보를 사회에 풀어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북한에 잠입해서 취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저의 의문은 그저 의문으로만 남겨둬야겠으나, 최근 뉴스들을 보면 그 과장이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 체제가 위기다', '한류의 영향력이 이렇게 뛰어나다' 같은 자극적인 뉴스들을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겠지만, 대북 정책을 결정하는 통일부 장관까지 이래도 될까요?


물론 정말로 한류에 영향을 받아 각성하고 체제에 불만을 품어 실제 행동으로 옮겨 북한 내부에서 저항 운동을 준비하거나, 탈북까지 감행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용감한 사람들은 아무리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늘 있어왔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 시대 때 한국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고, 나치 독일에도, 마오쩌둥 하의 중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늘 존재하는 상수이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체제 위기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한류 확산에 적응해 버린 북한 사회


한류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와중에도 북한 내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한류가 북한 주민들에게 반체제의식을 심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한류가 확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체제는 북한 주민들을 여전히 강압적으로 잘 통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째서 그럴 수 있을까요?


쥐도 너무 궁지에 몰면 고양이를 뭅니다. 혹시 북한 당국이 이 진실을 깨달아서 한류를 '통치 도구화'한 것은 아닐까요? 공식적으로는 억압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적당히 풀어두어 주민들에게 정신적 탈출구를 만들어준 겁니다. 그러다 한류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졌다 싶을 때는 적당히 본보기로 평소 봐두었던 몇 명을 처벌하는 식으로 '극한의 강약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가설은 틀렸습니다.


그건 김정은이 북한 관료들에 내리는 명령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업거나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 행위,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행위, 와인 잔에 와인을 마시는 행위, 여성이 장신구를 여러 개 하는 행위, 성을 '리'가 아닌 '이'로 표기하는 행위 등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을 극히 사소한 일상생활까지 극단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고려하면 북한 내에서 한류는 '잡고 싶어도 못 잡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가도 북한의 하위 행정조직이 부패해서 현장 단속을 엉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초점을 북한 당국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맞춰야 합니다. 북한 당국이 이미 이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음에도, 왜 이들은 '자발적으로' 체제 순응적인 면모를 갖게 된 걸까요? 우리의 진지한 의문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북한 체제 유지의 핵심, 북한 주민의 '체제 친화적 소시민성'


한류의 확산은 통제 실패의 결과이자 공직 사회 부패가 만들어낸 빈틈입니다. 문제는 이 체제의 균열이 치명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김정은의 성공적인 통치술의 결과가 아니라면, 원인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북한 주민들이 '무식하다', '게으르다' 같은 비난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의 그런 체제 순응이 왜 그들에게 최적의 선택지가 되었는지를 따지자는 겁니다.


여기서 저는 과감한 가설을 하나 제시해 봅니다. 북한 주민들이 한류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까닭은, "그럭저럭 살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당장 굶어 죽으나, 체제에 저항하다 죽으나 똑같은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강요받으면, 후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이 이런 극단적인 양자택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란 '냉소와 체념 속에서 소시민적으로 체제에 순응하기' 아니면 '체제에 저항하다 죽기'의 양자택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전자의 순응이 합리적인 까닭은 장마당 경제와 부패한 관료로 인해 최소한의 숨 쉴 틈은 존재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럭저럭 살만한 북한 경제가 주민들에게 체제 전복 외에 또 다른 선택지를 만들었고, 그 선택지 속에서 그들은 냉소와 체념으로 비정치화할 '여유'를 얻은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도 그렇듯이, 인간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북한 체제가 끔찍하긴 하지만 그것이 목숨을 건 체제 전복 시도까지 하도록 이들을 내몰지 않았기에, 이들은 탁월한 적응력을 발휘해 자발적으로 '체제 친화적 소시민성'을 배양한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말입니다. 한류가 체제 위기의 신호탄이 아니라 그저 인기 있는 문화상품으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왜 북한은 살만한가?


그건 누구나 지적하듯이 중국 때문입니다. 중국은 UN의 대북제재에 불구하고 북한과의 밀무역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북한은 연료, 식량, 의약품, 생활필수품 등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것을 방치하고 있는 이유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게 북한은 후원하고 싶은 멋진 나라는 아니지만, 무너지면 곤란한 나라입니다. 북한 체제 붕괴 시 벌어질지도 모르는 대규모 난민 유입, 주한미군 북상 등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죽지는 않되, 강해지지는 않게' 살려만 두는 겁니다.


흔히 중국이 북한을 지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놓고' 그런 적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서 '대놓고'라는 건 중국이 아프리카 독재자들에게 하듯이 '대통령궁'을 지어주거나, 수십 조짜리 사회기반시설을 지어주거나, 계좌에 직통으로 돈을 바로 쏴주는 걸 말합니다. 대북제재 때문 아니냐고요? 국제 사회에서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UN 대북제재도 무력화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북제재가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그냥 북한이 꼴 보기 싫어서 이 정도까지는 안 해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이 무너지면 지정학적으로 가장 곤란할 나라라는 건 변함이 없고 그것이 중국이 북한과 무역을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자신의 '밀무역 방치'가 북한 체제를 존속시키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물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체제가 유지되는 건 아닙니다. 결국 체제 유지에 중요한 건 주민들의 '협조(?)'입니다.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물자는 이 주민들의 '협조', 즉 '체제 친화적 소시민성'을 배양하고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체제에 반기를 들만큼은 아닌 정도로는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국이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비법이었던 것입니다.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북한 체제가 유지되는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 동시에 무너뜨릴 방법도 알아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① 북-중 접경지역 밀무역을 차단한다 : 북한 체제 유지의 근간인 주민들의 심리 구조 붕괴


② 김정은 정권이 북한 주민들을 더욱 '궁지'로 몰게 만든다 : 북한 주민들의 체제 순응 비용 증대


③ 장마당 시장 경제를 극심히 교란시켜 회복불능으로 만든다 : 북한 주민들의 체제 순응 편익 감소


④ 김정은 정권이 반체제 인사를 약하게 처벌하게 한다 : 북한 주민들의 체제 저항 비용 감소


⑤ 북한 주민들에게 체제 붕괴 후 번영을 약속한다 : 북한 주민들의 체제 저항 편익 증대



이 중에서 ②번은 김정은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내버려 둡시다. ③번은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한국이 공작을 시도해도 중국이 개입해서 해결해 줄 가능성이 큽니다. ④번과 ⑤번은 당장 방법이 없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입니다. 그럼 결국 남은 방법은 ①번뿐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체제 순응 비용을 극단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②번과 구조적으로 동일하지만, 다른 차원의 접근입니다.


아니,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이 그렇게나 곤란할 텐데 중국이 대북 밀무역을 중단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북한이 먼저 차단하게 만들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 북-중 무역이 전면 차단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북한 내 경제는 극심히 어려워졌고, 당사자에게는 불행이겠으나 탈북을 결심할 만큼 반체제 의식이 확고한 사람들이 북한에 잔류하게 만드는 효과도 낳았습니다. 코로나19 같은 범지국적 '팬데믹'이 앞으로 또 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그런 팬데믹 같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한국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가도록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론


북한 내에 한류가 퍼져서, 그걸로 어느 날 북한 주민들이 갑자기 각성해서 대규모 반체제 시위가 일어나는 건 단적으로 말해서 불가능합니다. 한국 언론들이 무책임한 낙관주의를 퍼뜨리고 있는 겁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사고방식이나 일상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진지하게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고 싶은 사람은, 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환경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대북전단이나 쌀 페트병 등은 그런 의미에서 전혀 근본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농담을 다소 섞어서, 북한 국가보위성의 암살 위협을 감수할 생각이 있다면 북-중 접경지역 밀무역을 필사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제 분석의 결론입니다.




참고 문헌


이규창, 최규빈, 김태원, 남승현, (2025), 북한인권 증진을 위한 국제사회 활동 분석과 추진과제,

https://www.kinu.or.kr/main/module/report/index.do?category=44&nav_code=mai1674786094


김석진, (2020), 대북제재가 북한의 시장과 사경제에 미치는 영향, KDI 북한경제리뷰, 70-79.

https://m.kdi.re.kr/file/download?atch_no=a%2FSth7QtgeRjd0KNtb6ukw%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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