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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 무엇이 문제일까

by 삼중전공생

현재 상황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원장이 전 국민에게 일괄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정책위원회의 장이지만 사실 정책전문성은 없는 인물입니다. 전북대 법학과 운동권 출신으로 이후 문재인과 박원순 곁에서 정무비서관 역할을 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말실수처럼 보이는 이재명의 '엔비디아 국부펀드' 발언을 실제로 실현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그 이전에는 '1가구 1주택'을 명문화하는 주거기본법을 발의한 전적도 있습니다. 후자 같은 경우 다주택자에게 부동산을 강제 매각시키는 법안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렇게 오해될 수 있게 법안 문언을 작성한 것을 보건대 입안할 정책을 진지하게 따져보는 스타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 국민 대상 지원금은 진성준 위원장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현재 공개적으로 언급되는 일은 잘 없지만 한때 '기본소득'이 이재명의 트레이드 마크로서 한창 언급될 때부터 이러한 전 국민 대상 일괄 지원금은 존재했었던 아이디어였고,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비슷한 취지의 지원금을 공약하기도 했었으니 말입니다. 대선 기간 중에 이재명이 '우클릭'으로 중도 확장을 했다고는 하지만, 전 국민 대상 지원금 아이디어는 민주당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언급된 '민생지원금'은 지난 코로나 시기 때 있었던 문재인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과는 다른 형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성준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지원금이 지역화폐 형태로 발급된다면 사용기한과 사용처가 한정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축이나 부채 상환 등이 아니라 생활비로 사용되어 지역경제의 소비를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의 본 목적에 더 부합하는 방식으로 지원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진성준 위원장은 재정여력에 따라 할인율만큼 지원하는 방식도 고려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는 가령 10만원어치를 소비하는 경우에 소비자는 9만원만 부담하고 1만원은 상품권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방식이면 즉각적인 소비 폭발 효과는 다소 적더라도 비교적 장기간 동안 소비를 증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정책적 목표에 따라 합리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문제는 없나?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일괄 지급하는 '민생지원금'이 부작용이 없었다면 이미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민생지원금'을 뿌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그러고 있지 않는 까닭은 '민생지원금'의 부작용이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내 생활이 어렵고 수중에 돈이 없는 까닭은 내가 그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현재 돈을 벌 수 있는 역량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싶다면, 남에게서 돈을 빌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은 언젠가 갚아야 할 돈입니다. 그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만약 돈을 빌릴 당시부터 내가 빌린 돈을 이용해서 빚을 갚고도 남을 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계획을 짠다면 베스트일 것입니다. 이런 계획을 갖고 돈을 빌린다면 이건 '좋은 부채'입니다.


하지만 돈을 빌려서 식비, 생활비, 공과금 등으로 소모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마트 초밥 대신 오마카세를 먹었다고 해서 내가 부가가치를 창출할 역량이 증대된 것은 아닙니다. 즉 자산을 늘려주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소비로 빚을 소모해 버린다면 이는 '나쁜 부채'가 됩니다. 현재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돈을 더 잘 벌 것도 아닌데, 현재 생활이 어렵다는 명목으로 미래의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중동의 석유부국도 아니고 세수가 남아도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그럼 이건 좋은 부채일까요, 나쁜 부채일까요? 당장 나에게 25만원의 꽁돈이 생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정부에서는 이 돈을 소상공인, 자영업자 업장 등에 가서 소비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러면 나는 이걸 나의 노동생산성이나 자본생산성을 증대하는 데 사용할까요, 아니면 식비 등 생활비로 단순하게 소모해 버릴까요?


'민생지원금'은 분명히 소비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것이 단발성인 데다 '나쁜 부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AI 반도체 칩을 개발하기 위해 국가가 대규모 R&D 예산을 편성하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지원할 용도로 국채를 발행한다면, 한국 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부채로서 차후에 이를 통해 빚도 갚고 미래세대도 이득을 볼 테니 반대할 이유가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세대가 단순히 배달시켜 먹고 호캉스 갈 용도로 부채를 발행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용이 현저히 적을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해 무책임한 짓이 될 것입니다.




결론


결국 청년들 앞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기성세대들이 생활비로 펑펑 쓰다 죽는 것, 그게 '민생지원금'의 정체입니다. 그러니 정상적인 의식을 가진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라면 '민생지원금' 따위의 아이디어를 내세우지도 공약하지도 않는 것이고, 전 세계의 대부분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런 비교적 상식적인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 이 대한민국의 이재명과 민주당만이 다른 소리를 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청년이 아니라서, 아기가 아니라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서 '민생지원금'에 찬성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이기적일지언정 합리적이기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무책임한 '민생지원금' 지지자 보다도 더욱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이재명입니다. 이재명은 호텔경제학 같은 저질 부두 경제학으로 '민생지원금'이 마치 한국 경제의 대안이기라도 한 듯 사람들을 선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건 '민생지원금' 지지자들의 미래세대에 대한 도덕적 부채감까지도 털어버릴 수 있게 만드는, 이 정책에 관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끔찍한 프로파간다입니다.


경제학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동등한 1표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잘 모르는 시민들을 선동해서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을 구국의 수단으로 왜곡하고 대선 후보자 토론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대며 자신의 지지자로 삼는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포퓰리즘은 적어도 자신은 권력을 잡게 해 줄 순 있지만, 모든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포퓰리스트가 되면 나라는 망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반대하는 양심 있는 정치인들 간의 신사협정을 당당히 위반하고 정권을 잡은 잘못은 분명히 지적받아야 합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들을 위할 생각이 있다면 단 한 번의 소비 폭발이 아니라, 이들이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돕거나 여의치 않다면 사업을 대체할 다른 생계수단을 마련해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즉 우선 대규모 저리 대출과 세제 감면·유예로 급한 불을 끄고, 남은 재원은 은퇴자들이 치킨집이나 편의점 개업 등에 몰릴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한국의 자영업 시장 구조를 개혁하는데 투입하면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성준 위원장이 언급한 20조원 규모의 추경이라면 마음먹기에 따라 그러한 정책 목표를 지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저도 새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민주당의 무게감 있는 인사 입에서 지원금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확정된 건 없습니다. 정권 초입부터 실망하게 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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