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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보험 설계, 두 세계를 넘나들며

암을 이겨낸 피아니스트의 새로운 도전

by 해피뮤즈 Mar 05. 2025

오늘은 보험설계사로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암과의 긴 싸움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일어났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서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약간 긴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암을 이겨낸 나에게 무슨 일이 두렵겠는가. 모든 것을 빠르게 흡수해서 능숙한 보험설계사가 되겠다는 야심 찬 다짐을 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피아니스트가 갑자기 웬 보험을?이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는 보험에 관심도 없었고 보험설계사의 안 좋은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었어서 불확실한 나의 미래에 대비를 잘하지 못했었다. 돌아보니 아주 최소한의 보장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4월에 불현듯 유방암이라는 불청객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조직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내원하라는 병원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서야 문득 내가 어떤 보험이 들어져 있는지 궁금했다.


암진단받기 2주 전에 예전에 평생교육원에서 레슨 했던 성인 제자분을 만났다. 4~5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 제자분은 하시던 일을 바꿔서 세심하게 고객 관리를 잘하는 너무나 멋진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계셨다. 그분을 보면서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보험설계사의 안 좋은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참 신기한 게 조직 검사 결과 들으러 병원으로 가는 길에 복잡한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분이 바로 그 제자분이었다. 내가 고객도 아닌데 내가 가입한 보험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면서 어떠한 순서로 어떻게 하나씩 하면 되는지 알려주셨다. 암진단을 받은 후에도 계속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방사선치료까지 잘 마치고 회복의 단계에서 이제 무언가에 다시 에너지를 쏟고 싶었다. 그러던 중 보험설계사라는 길을 제시해 준 제자분의 권고가 있었고 배우고 싶은 열망에 권고를 받아들여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내가 현실과 참으로 동떨어진 세계 속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살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보험업에서 사용되는 단어들과 인용되는 원칙과 법률 용어들이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져서 단번에 익혀지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2005년에 취득했으니 거의 20년 만에 공부와 시험을 경험한 셈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한 번에 시험에 패스할 수 있었다. 합격증 나오고 며칠 후에는 보험설계사 코드가 나왔다. 보험설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서 2~3주 후에 정말 보험설계사가 되다니 초스피드로 열린 새로운 진로가 나를 설레게 한다.


인생은 참 신기하다. 암 진단을 받았던 그날,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치료의 고통, 불확실한 미래, 그 모든 고통의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구를 되뇌며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는 동안 내 몸을 짓누르는 고통은 가벼워지고 옅어져 갔다. 작년에 몸과 마음 여러 가지로 바닥을 찍었으니 앞으로는 비상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백세 시대, 아니 앞으로는 백이십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 오십에 새로운 일에 도전함이 늦은 것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나 대비를 못한 상태에서 큰 일을 마주했어서 내 주변에 다른 이들은 대비를 잘하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서 보험설계사의 길로 들어섰다. 피아노 건반과 함께 설계 서류도 함께 만지게 될 손과 예술융합수업 강사로서의 내 목소리로 이제는 고객에게 보험 상품도 설명하게 될 나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서로 전혀 다른 세계를 병행한다는 것은 설레는 도전인 것 같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나, 예술융합수업 강사로서의 나.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제 보험설계사라는 새로운 정체성도 더하게 되었다. 여러 역할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상하게(?) 두렵지는 않다.
첫 연주회 전날의 그 설렘. 첫 수업을 앞둔 그 떨림.
그 감정들이 오늘 아침 다시 찾아왔다. 많은 것들을 새로이 시작하게 되는 3월 초에 나의 인생에도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시작되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하는 일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암을 이겨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이 선물인데,
새로운 직업까지 선물로 받은 느낌이다. 살아있다는 것. 일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예술과 숫자, 감성과 논리. 얼핏 다른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은 같은 곳으로 모아지는 게 아닐까. 피아노로 위로하는 그 마음으로 예술로 영감을 주는 그 열정으로 이제는 미래의 안전을 설계하는 일도 함께 하게 되었다. 다양한 역할 속에서 더 풍요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 같다. 보험 설계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오늘 새로운 시작에 가슴이 뛴다. 암을 이겨낸 강인함으로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의 이 첫걸음이 나를 또 어떤 아름다운 여정으로 이끌지 기대하며 나아간다.


#보험설계하는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김혜영

#새로운길 #새로운도전

반 고흐 [파란 화병의 꽃] 1887  반 고흐 [파란 화병의 꽃] 1887  

이번 예당에서 열린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에서 본 이 멋진 작품으로 새로운 길을 내딛는 나에게 선물한다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찍은 사진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찍은 사진

몽마르뜨 뮤지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마치 나의 새로운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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