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그리고 아무 연락도 오지 않은 채,
그날은 지나갔다.
준혁은 다음 날도
루틴대로 움직였다
런닝, 주식, 미팅, 운동, 코인.
늘 하던 일상 그대로였지만—
머릿속엔 온통 그녀뿐이었다.
특히, 커피숍에서
그녀가 타투 이야기를 꺼냈던 순간.
자신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두 번째 메시지까지.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타들어 갔다.
한편,
그날 지수는 집까지 걸어왔다.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날은,
지수의 생일이었다.
지수는 그날 그 남자는 준혁은 내가 타투이스트는 취미라는 말을 듣고 나선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수의 이야기]
지수는 평범한 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가정이었다.
고3, 수능을 마치고
생일을 맞은 날.
부모님은 딸의 수고를 칭찬하고
성인이 되는 생일을 축하하려
생일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고 이후,
지수에게는 20억이 넘는 보험금이 남았다.
생전 아빠는 늘 말하던,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야지.”
정말 혹시 모르는 일이 일어났다.
생전 아빠의 말의 결과는 20억 이였다.
대학교엔 합격했지만
지수는 가지 않았다.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부모님을 그리워했다.
그리움은
무력함이 되고,
무력함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집 밖 공원에 나간 날.
벤치에 앉아있던 지수의 다리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
그리고,
또 다른 나비 하나가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 순간,
지수는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비가 되어 나에게 오신 거다.”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다음 날,
아무 계획도 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걷다 문득
도자기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체험 수업에 참여했다.
흙을 손에 쥐고
천천히 빚어가는 과정.
모든 잡생각이 사라지고
손끝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듯했다.
그날 이후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지수는 작은 공방을 열었다.
수업을 하고,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어느 날,
공방에 나비가 또 날아들었다.
그날 이후,
좋은 일이 잇따랐다.
지수는 그 기억을
몸에 남기고 싶어
그 나비와 똑같은 모습을
타투로 새겼다.
타투를 처음 접한 건,
그날이었다.
타투를 마치고 나오려던 찰나,
한 남학생이
울면서 들어왔다.
“괴롭힘 당했다면서… 몸에 이상한 낙서 타투가 생겼다고…”
그리고 그 아이는 어머니 사진을 꺼냈다.
“이걸로 그려주실 수 있나요?…”
타투이스트는 그 낙서를
어머니의 얼굴로 바꿔주었다.
지수는 그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상처를 감싸는 예술.
그게 바로 타투였다.
그날 이후,
지수는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다른 3년이 흘렀다.
공방과 함께
타투 작업실도 겸하고 있었다.
그녀의 공간엔
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픔을 새기고,
그리움을 덮고,
기억을 기록하는 사람들.
지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밤.
타투가 늦게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골목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누구세요?”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전화번호가 아닌
자기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다니.
그 남자.
그 순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며칠 후,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다시 그 남자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정확히 기억났다.
‘누구세요’라고 했던 그 남자.
그날,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주말 전까지
그녀는 평소처럼
공방과 타투 작업에 집중했다.
토요일.
점심 무렵.
또다시 공방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그 순간,
지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사람…
나에게 행운의 남자인 걸까.”
사실,
지수는 부모님이 떠난 이후
남자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감정을 열어주는 도자기,
남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타투.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는 충분한 위로였다.
사랑이란 감정에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그날—
무언가 달랐다.
거울을 보니
자신이 낯설면서
심각해 보이는 거지였다.
그래서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손질하고,
새 옷을 사 입고,
향수를 샀다.
레스토랑에 도착해
계단을 오르는데
또 한 마리의 나비가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지수는,
그게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