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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

나만 위해 울기

by 나머지새벽

글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선생은 항상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낯설게 보기. 얼마나 쉬운가.

그저 낯설게 보고 색다른 모습을 떠올리기. 우산을 보며 새를 닮았다고 생각하기, 그런 것 아닌가 했던 기억이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선생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선생은 대단한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더 대단해졌다.

그는 지금까지를 포함해도 내가 여태껏 본 사람들 중 가장 낯설게 보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하나 없는 그림을 보고 울었고. 학을 보며 시 같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낯설게 보기는 사실 낯선 것을 봐도 나를 그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참 오래 울고 싶었다. 이상한 것들에도 좀 울고 싶었다. 내 시가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은 낯설게 본 것만 써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시를 쓰며 우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다. 창녀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며 울던 누나가 참 부러웠다.

비둘기에 적으며 울던 나의 첫 선생이 부러웠다.

매일 엄마에게 적은 편지를 과외에 가져와 울던 형이 부러웠다.

나는 비가 오는 날 울었고, 누군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울었고, 남들이 울면 따라 울었다.

나는 나를 위해 울어준 적이 없었다.


이 브런치북은 나의 첫 연재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낯선 것들로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 사실 이런 마음 다들 가지고들 있잖아요, 하면서.


글을 쓰며 우는 법을 조금이라도 배운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이 책은 우는 법을 더 연마하기 위한 책이었다.

언젠가 나를 위해 우는 것이 사람들을 따라 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의 글들을 마무리했다.


이 글들을 통해 너무나도 비약하지만 한걸음 '도약'까지는 아니더라도 뗼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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