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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모를 것들이 너무 많은데요

by 나머지새벽 Mar 19. 2025

요즘은 쉬는 날이면 자꾸만 그네에 앉게 됩니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면 놀이터로 가요.

그리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친구들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전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열댓 명씩 모여서 지옥탈출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합니다.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떠나면 저는 놀이터 안으로 향합니다. 제가 한 6년 동안 모래를 밟아본 적이 없는데 신발로도 느껴지는 모래의 느낌이 좋더라고요.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 들어요. 그네에 앉아서, 아 무조건 오른쪽 초록색 그네예요. 전 예전에도 초록색에만 앉았었거든요.

빨간색 그네에는 제일 친한 친구가 앉았어요. 아무튼 앉아서 주변을 둘러봐요. 몇 사람들이 가끔 쳐다도 보기는 하던 것 같은데 신경 쓰지는 않아요. 발을 굴려 그네를 띄웁니다. 점점 세게 띄우고요, 어느 정도 높아지면 그때는 일어서요. 일어서서 타면 더 추진력을 얻기 쉽잖아요. 

그때부터는 가끔씩 진짜 뚫어져라 쳐다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제 아버지뻘 돼보이시는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초등학생 친구들을 보는 거랑 비슷하게 쳐다들 보세요. 그렇게 뚫어져라 보시다가 그냥 가십니다. 가실 때 뒷모습을 보면 되게 좀 터덜터덜 가는 것 같아요. 저는 아마 평생 그들이 저를 왜 저렇게 쳐다봤는지 모를 거예요. 아마 그럴 것 같아요. 그래야만 할 것 같을 때가 많아요. 

그네가 추진력을 엄청 얻게 되면 다시 앉아요. 위로 올라갔을 때 재빨리 앉아야 해요. 초등학생 때 그네를 많이 타다 보니까 저절로 배우게 되더라고요. 앉아서 줄을 잡고 다리를 그네의 방향에 맞추어 흔들며 타요. 앞머리가 다 까지는데요, 뭔가 다 벗겨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 앞머리를 들춰내고 원래 보여야 할 이마를 드러내니까요. 처음에는 앞머리를 다시 정돈했는데요, 이제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너무 시원하더라고요. 이마에 살짝 맺힌 땀도 마르는 것 같고 해서 정돈하지 않아요. 

근데 그렇게 신나게 그네를 타다 보면 옆의 빨간색 그네를 보게 돼요. 옆의 그네는 움직일 리가 없죠. 아무도 안 탔는데 어떻게 움직여요. 저는 항상 그네를 타면 옆의 그네도 같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생각이 들면 초록색 그네에서 내려옵니다. 아, 흔들리고 있는 채로요. 

그리고 빨간색 그네를 타요. 똑같은 방법으로 추진력을 얻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바람을 맞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초록색 그네는 멈춰 있더라고요. 그러면 이제 그네에서 내려옵니다. 혼자 두 개의 그네를 동시에 흔들게 할 순 없더라고요. 

그때쯤이면 다시 놀이터에 흥미가 생긴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요. 저는 조용히 그네에서 내려와 저 멀리로 갑니다. 그리고 다시 그 친구들을 바라봐요. 그 친구들이 탄 그네는 양쪽의 그네가 멈추는 일이 없어요. 양쪽 다 거의 360도로 돌 것만 같이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저 멀리 있는 흡연구역으로 가서 혼자서는 절대 피우지 않는,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만 꺼내는 담배를 꺼내 듭니다. 그리고 불을 붙여요.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계속 쳐다보면서요. 쟤네가 타고 있는 그네는 언제 멈출까 생각하지만 아직은 멈추지는 않더라고요. 언젠간 또 멈추기야 하겠죠. 그렇게 보고 있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저녁 시간에 놀이터로 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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