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더 레코드
<첫 번째 근무>
미들 타임 근무. 아무 일도 없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내면만 웅성거릴 뿐. 손님이 없는 편이라 비교적 천천히 배울 수 있었다. 시그니처 크림 휘핑을 쳐봤고, 연유 베이스도 만들었다. 휘핑은 역시 농도를 알기가 어려워 두 번 정도 다시 올라와 함께 일하는 D에게 확인을 받았다. 분 단위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도에 따라 농도가 잡히는 시간이 달라서 힘들겠지만 말이다. D가 긴장하는 나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고마울 따름.
3시간만 일해도 느낄 수 있다. 여느 저가프차와는 확연히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물론 지금껏 공식적으로 일하기 전까지 여러 번 막무가내로 바 안에 들어가서 훔쳐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앞치마 입고 직접 일할 때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무척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서로 한 팀을 먹었다.
일하면서 D와 나의 차이점을 느낀다. 나는 역시 뻣뻣하다는 거. 일하면서 나아질까? 사람의 특성인 것 같아서 적어본다. 같은 응대를 해도 나는 조금 더 딱딱하고 FM적인 태도인 것 같은데 D는 무척 부드럽고 따뜻하다. 내가 사람을 좋게 본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좋은 태도이기 때문에 내 눈에도 띄는 것 같다.
정말이지 뭘 한 게 없는데 꽤 피곤하다. 일하는 동안 긴장도가 너무 높아서 힘들었던 것 같다. 손님 응대는 한 번인가, 두 번 했고, 역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혼자 있었다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했을 텐데(아직 안 됨), 같이 있으니까 말끝도 흐리고 더 긴장한다. 마음에 안 드는 모습만 생각나서 곤란하다. 잘한 점은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는 거? 지금 제일 자신 있는 건 호지차 라떼 만들기다. 나머지는 정말 모르겠고, 모를 것 같다.
<두 번째 근무>
역시 긴장도와 스트레스가 너무 높았다. 얼른 1인분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이건 시간(과 노력)이 해결해 주는 수밖에 없어서 잘 버티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일반 카페랑 뭐가 다른 건지 깊게 생각하기 어렵다, 체력이 떨어져서. 카알 시작한 지 너무 오래돼서 초심을 잃은 건지.. 처음은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커피를 처음 내린 건 놀숲이었고, 그다음은 더벤티였는데 놀숲은 아이스티를 왕창 만든 기억이 있고, 커피도 지금 생각하면 좋지 않은 방식으로 내린 것 같다. 더벤티가 제대로 된 카페라면 처음이려나. 사장님이 나 때문에 주말에 나올 정도였으니 지금이면 양호하다고 생각해야겠다. 정말 손도 느리고 실수도 많았던 것 같다. 플라스틱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잘 찌그러들고 있었음) 파우더를 녹인다던가, 배달 치는데 한참이 걸려서 사장님한테 전화가 온다던가 하는 거.
일하면서 침착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많이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북어위크는 여간 쉽지가 않다. 특히 사장님들 있을 때 심장이 요동친다. 안심이 되면서 떨린달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3시간 일하는 건데 너무 길게 느껴져서 큰일이다 싶었다. 내일은 어떻게 5시간에 마감까지 치지?
오늘은 핸드드립을 두 번 내렸다. 두 번 모두 탄자니아 원두였고, 첫 번째엔 D가 유심히 지켜봐 줬지만(안 들어가는 스푼을 원두 봉투에 억지로 넣으려는 시도로 D에게 웃음을 줌) 그다음엔 알아서 잘한 것 같다. 여전히 커피 맛은 잘 모르겠다. 내가 잘 내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설거지를 엄청 많이 했다. 해도 해도 계속 쌓여서 이거 원래 이런 건가…? 싶었다. 오늘은 회전율이 좋은 것 같다. 소금빵도 모두 품절. 북어크림 8잔 분량 휘핑도 쳤다. 오늘은 첫 시도에 성공. 쿠키 반죽은 손님도 밀리고 타이밍도 안 맞아서 함께하지 못했다. 걱정은 되지만 다음 주를 노려봐야지. 오늘은 너무 힘들었다.
위트랑 디카페인 원두 그라인더에 넣는 게 너무 오래 걸린다.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걸까? 스스로 이렇게 답답한데 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핫 호지차도 들어오니까 당황했다. 내가 치지도 않았고. 안 만들어 본 건 계속 당황의 연속인 것 같다. 오래 걸리고 실수를 하더라도 직접 만들어야 손에 조금이라도 익을 것 같아 계속 걱정이 된다. 근심 걱정 가득한 하루.
정말이지 생각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기대치까지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걸까? 더 길게 생각하고 싶진 않아 여기서 끝내야겠다. 마감이 걱정된다. 그냥 다 걱정이 된다.
<세 번째 근무>
이상하리만치 긴장도가 너무 높아서 힘들고 체력도 쉽게 떨어지는 하루였다.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쓰다 보니 건강일지 같은데 분명 커피일지다.
웨이브 그라인더 버튼을 두 번 눌러서 잔뜩 쌓였다. 수습하느라 짧은 시간 동안 진땀을 뺐음.
<네 번째 근무>
처음으로 혼자 마감을 했는데 확실히 힘들었다. 30분 오버해서 근무했다. 라스트오더는 40분인데 45분에 모자 손님이 오셔서 아이스티와 아샷추, 소금빵을 먹고 갈 수 있냐고 하셨다. 예전 일하던 곳 같았으면 안 된다고 했겠지만, 너무 급해 보이기도 하셨고, 마감도 오래 걸릴 것 같아 별 고민 없이 주문을 받았다. 설거지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쌓였다. 혼자서 7시 마감을 어떻게 하지…? 싶은 난이도였다. 모자 손님은 그래도 맛있게 먹고 가셨다. 한 구 마감 안 해두길(못한 거임) 잘한 것 같다. 어찌어찌 마감까지 했는데 뭐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계속 걱정했다. 불 끄고 나오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다. 그래도 필수로 해야 할 건 다 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테이블이 다 찼다. 4일 연속 근무라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앞으로 여기서 소금빵도 하고, 쿠키도 하면서 길게 일할 수 있을까? 사람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 조금 우려가 된다. 일단 지금은 현재에 충실해야겠지?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즐겨야겠다. 이전까지 미리 걱정하기엔 내 걱정주머니가 이미 만석이다.
<다섯 번째 근무>
너무 피곤해서 앉은 채로 좀 졸았던 기억이 있다. D가 마감을 도와줘서 오늘도 간신히 시간을 맞췄다. 끝나고 다 같이 베이글 먹는 시간이 참 좋았다(커피일지 맞나?).